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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이년생 꼰대 Sep 02. 2021

홍대병

 생각나는 칼럼이다.

 “좋은 음악을 많이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독자 물음에

글쓴이 음악평론가가 답하길

 “남들이 좋다는 음악은 한 번씩 다 들어보십쇼”

한다.           

     

 Aha! 모먼트요, 언즉시야라, 정말, 좋은 게 좋다.

 이를 시간 들여 처음 깨친 때는 고2 여름방학이다. 너희는 이 시점부로 사실상 고3이다! 담임의 땅땅땅 선고는 외려 나를 초3으로 돌렸다. 스미는 압박에 독서실 대신 방구석, 학구열 대신 노트북 열기, 학습지 대신 명작 리스트를 구해 <대부>, <이터널 선샤인>, <델마와 루이스>, <올드보이>, <박하사탕>, <타짜> 등등 53편의 영화를 주야로 보며 헛된 8월이었다.          

 뭇사람이 좋다는 명작을 선뜻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는 좋지 못한 성적 유지로 잔뜩 취약한 자존감에 표독스러운 병 하나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좋다는 것엔 변변찮은 이유도 없이 굳이 “No!”라고 답하는 ‘홍대병’ 혹은 반골, 또는 두 발로 걷는 청개구리일까. 다수와 동떨어져 그리도 나는 특별하다며 자위하는 증이 한창이었기에 뭇사람이 증명한 그 명작들에서도 볼까 말까 무척 휘청이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이 증만 겨우 억누르고 재생해 인트로 몇 분만 꾸욱 꾸욱 참으면 하나같이 불식간 나를 무아경에 이끌어 엔딩에선 탄복을 금치 못해 앞전의 증은 잊고 작품의 후유증만 새로 앓는 것이었다. 이 의심과 탄복을 53번 반복하니 개학식 때 내 가슴 한아름 품은 깨달음은, 명작은 명작이라는 것.     


 뭇사람을 매료한 큐피드 화살이 나의 취향을 비낄 리 없다. 까다롭길 자부하는 나 같은 환자의 취향까지 다 셈하여 그 마음을 관통하도록 제작했기에 얻은 유명(有名)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이론으론 알면서도 남들이 좋다 함을 편히 받들 여유란 2년이 지나도 여전히 온전하기 어려운 마음씨여라. 53번의 메스질에 불구하고 그때 병의 종양을 도리지 못한 듯, 오늘도 대중에게 이름난 책을 신문이고 소문이고 전해 들으면 우선 ‘그깟 유행’으로 치우기 일쑤다. 한 가지 호전된 점은 이 병 걸린 내가 이젠 환자라는 병식이겠다. 정신은 그 유명의 책을 거부할망정 육체는 책장에 손을 뻗어 기어코 빌려오고 마는 심(心)과 동(動)의 부조화를 이제는 감내하련다. 집에 돌아와 읽으면 몇 날이 지나 역시 좋은 게 좋다며 비로소 일심동체로 그것에 현황될 것이 경험을 보아 명명백백하기에 그렇다. 또 그런 날이면 친구에게 어서 추천하지 않고는 잠도 오지 않는 내 모습과 그때 친구의 반응도 예상할 수 있다.

 “에이, 너 줏대 없이 그런 베스트셀러에 휘둘리면 안 돼.”     


 같은 병동 환자끼리 싸워 뭣 하겠는가. 외로움으로 괜히 읽을 책 좀 추천해달라 청했다가 받은 답변에 꼭 읽으리라 예의껏 약속 뒤 무시한 책이 나부터 몇 권인가. 그러니 줏대 운운하는 친구의 반응은 괘념치 않으나 이런 우리니 요즘은 좋은 것을 겪어도 혼자의 속에 담아 푹 익히는 버릇이 들었다. 추천을 주긴 쉽지만 그것을 받고 실천함은 얼마나 어려움을!—보란 듯이 이겨내 이른 시일 내에 그것을 읽고 추천해 줘 고맙다며 연락을 주는 친구 또한 왕왕 있는 것이다. 퍽 한가해 그랬겠는가. 그저 그 친구의 높은 신의인 것이다.

 “남들이 좋다는 음악은 한 번씩 다 들어보십쇼.”

평론가의 저의는,

 첫째 군말하지 말고 닥치고 들으시라,

 둘째 당신도 그런 신의 높은 친구가 제발 되어보시라,

는 것이다.


 노력을 함에, 필경 그것은 추천자를 생각함보다 자신을 위함이 큼을 안다. 인스타그램에서 선배가 ‘밤에 이어폰 끼고 듣기 좋은 노래’라며 <Superstar Sh*t>이란 팝을 추천하길래 덜컥 부조화 증이 일었지만 3분을 버티니 요즘의 자주 듣는 노래가 되었다.

 좋은 영화, 좋은 책, 좋은 노래 하나를 앎은 무색 일상에 떨구는 색소 한 방울일까. 삶을 다채롭게 하는 소소한 법은 남들이 좋다는 건 한 번씩 보고, 읽고, 듣는 과감성이다. 그 성격 붙여 20살, 이 병을 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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