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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이년생 꼰대 Aug 06. 2021

군마도

 눈 깜빡임 아껴 클릭한 수고로 취소표를 구해 고故 이건희 기증품전에 갔다. 장소는 광화문 돌담과 눈싸움 하는 국립현대미술관. 회장의 명성에 더해, 코로나 일구라 사전예약제요, 회차당 단 30명만 수용키에 진즉 먼 한 달 치까지 매진된 터였다. 취소표를 기다릴 땐 그 가당치 않은 수 30에 대해 이는 공익의 문화적 피해일 쏘다! 영판 우씨우씨댔지만 정작 1/30인이 되어보니 마치 야밤에 철통 보안 뚫고 잠입한 도둑의 심정인 양, 이 널따란 전시를 한적히 점유해 참 좋구나! 퍽 만족해한 것은 교양 없는 자에 걸맞은 막된 심보였으리라.      


 그 형벌로 그 자는 불감식안(不鑑識眼)을 가졌다. 색 대비니 명암이니 수직 구도니 하는 것들은 작품에서 전혀 캐치 못하는 아둔한 쌍안이여! 때문에 회장의 평생 수집욕이 담긴 작품이라니 수지 타산적으로 생각하면 절로 박수가 쳐짐도 분명했으나 한편으론 속 깊은 곳부터 목소리 하나가 치밀어옴도 무시할 수 없는 증이었으니.

 “너 정말 저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냐? 솔직히 별로잖아. 나한테만 말해봐. 우리가 남도 아니고 왜 말을 못 해.”

 “야야 무식하면 닥치고 저분들 따라 박수나 쳐.”

 “어어 너 지금 나 부정하냐? 내 목소리도 너야 임마!”

애써 제어해 보지만 자꾸만 이성을 찌르는 고놈 목소리를 끝내 나는 직관으로 불러주기로 하였다.      


 그러자 그 직관이란 갈수록 방자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상범의 <무릉도원>, 백남순의 <낙원>, 이중섭의 <황소>와 같은 그야말로 명작! 명작! 명작!을 앞에 두고 미술이라 함은 고3 적 담임의 과목이 그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접점만 떠올리지 않나 액자의 대소만으로 크면 “이야 좋네!” 작으면 “쓰흡 별로!” 같은 평만 내릴 뿐이었다.

 이런 내가 정녕 이 엄숙한 30인에 들 자격인가? 나는 낭비야. 폐 끼치지 말고 조용히 나가자. 그때였다. 절레 젓는 고개와 함께 코너를 돌자 길목을 가로막고 나타난 여섯의 군마가 아닌가! 나는 그 거대 문지기들에게 또다시 그새를 잊은 실수를 내 저지르고 말았다.

 “호우! 이건 존나 큰 걸!”     


 작품이 벽에 걸렸기보다 오히려 벽이 그것에 걸린 꼴이었다. 김기창의 1955년 작 <군마도>는 그렇게나 IMAX 스크린이었다. 비단 크기로만 스크린은 아니었다. 그 앞에 서 있자니 정적에서 페이드인으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와 “WHEE—E—E” 울음이 첫째요, 다른 정적은 동적이 돼 그들은 본래 잡아둠이 불가능하였다는 듯 질주해 그림에서 사라지고 부양한 모래와 연기만 그 자리에 그려져 보임이 둘째였다. 그림을 재생시키는 힘, 그것은 단어화되어 ‘역동성’이라고 작품 언저리 검은 해설에 적혀있었다.

 그렇담 저 말들의 역동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그들의 흔들림과 기어코 넘어짐에서 수태한다. 서 있음은 분명 안정이지만 가장 정적이리. 하면 중앙에 엉덩방아 찧는 저 말의 등근육 좀 보라! 에일리언 유충이 복부를 찢고 나올 때 배우가 보여준 뒤틀림만큼이나 가히 역동적이다. 저리 몸 던져 넘어지는 말에 누가 감히 동정을 쏘랴!      


 고목은 흔들리지 않지만 거목은 흔들린다. 강연에서 줘 들은 문장 하나를 저 여백에 손톱으로 꾹꾹 눌러 적고픈 충동이 변태하지 못함은 이제 본 큰 다행이었지 싶다. 나는 작품과의 거리를 늘였다 줄였다 하며 오래간 그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은 스크린에서 이젠 또 거울이었다.

 3월, 대학에 입학했지만 열정은 그달을 넘지 못하고 그곳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그래도 4월은 첫 시험이라는 울렁임이라도 가졌지만 6월엔 그마저 익숙해진 터라 실로 회의와 우울 간 줄다리기였다. 그 점에서 공부란 나와의 싸움이란 말도 고3 지나 자못 이해가 되더라는 것.

 “대학이 다가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그자나.”

고교 시절 초로의 백발 독일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언젠가 깨달으리라 예상은 했건만 그것이 1학년 1학기일 줄이야.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시기를 당겼으리라. 우선, 역병의 창궐로 캠퍼스는 폴리스라인 없는 봉쇄나 다름없어 첫 학기를 몽땅 방구석에서 노트북과의 대면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블루라이트에 절여진 나의 눈은 권태였다. 거기에 교양 교수의 첫마디가 시기를 가속했다.

 “신입생인데 국문과 학생이네요? 요즘 같은 시기에... 어렵다는 건 잘 알았을 텐데요.”

교수는 무엇이 어렵다는 것인진 침묵에 묻었지만 그것이 내 어려운 미래를 예견함은 20살의 눈치로도 제법 캐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니체의 외침을 들은 독실한 신앙자의 심정으로—국문과는 죽었다!—그것을 머리에서 도통 지워버릴 수 없게 되었다.     


 그예 이런 연유가 독일어 선생님의 말씀을 이르게 깨닫도록 하였고 기어코 나를 어머니에게 괴성까지 지르는 불효자로 변모시키고 말았다.

 “방구석에서 교수 강의만 듣다간 내 인생 망할 거 같다고! 교수가 내 인생 책임져줘? 그렇다고 엄마가 내 인생 책임져줘?”

 “남들은 열씨미 공부해 빨리 취업할 생각이라던데 이눔은 남들 다 뺑— 뛸 때 휴학한다고 지럴을 해 지럴을!”

이리 모자간 정겨운 괴성으로 맞은 여름방학이란 갈대가 겪을 미래의 심정—.

 휴학하고 모든 힘을 다해 글을 쓰고 모든 운을 걸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자. 수상해서 책을 내! 복학해! 그 교수에게 가! 내 미래를 불운히 점친! 야, 너무 도박이야. 뭐래, 초 치지 마. 스윙스가 말했어. 백퍼센트 이성적이면 아무것도 못 해. 확률계산만 하고 있지. 야, 그런데 있잖아, 나는 작가처럼 매일 글 쓸 자신이 없어. 나도 이런 말 하기 싫다. 내 글이 세상에 읽힐 가치는 있고? 고등학교 때 친구가 시 써서 상 탈 때 난 수필로 상도 못 탔잖아. 그러고 친구에게 말했지. 역시 시인! 상 탈 줄 알았어, 축하해. 풋, 정작 나도 상 탈 줄 알았는데. 넌 또 그 얘기를 왜 하니. 김이나 말이 맞아. 도전하되 무모하지 말라. 직장 다니면서 작사했잖아. 이깟 글은 학교 다니면서도 써. 야. 응. 그런데 나도 있잖아, 그러고 개강하면 뭣이 두려워 그때 휴학하지 않은 나를 무척 원망할 거야. 두려우면 어때? 그걸 즐기는 거야! 하, 또 그 래퍼냐? 프로젝트에 떨어지면 한 학기만 날려서 뒤처졌다는 생각에 괴로울 너 미래는 안 보여? 씨, 그럼 어쩔까. 누구 말을 들어. 내가 알아? 네가 알지. 애초 너나 나나 스윙스도 김이나도 아닌걸. 그건 맞아. 차라리 수수께끼 같은 우리잖아.

    

 오늘 전시에 들 때만 해도 낙관과 비관이 고리에 고리를 무는 사슬에 옭매였던 나는 지금 이 <군마도> 앞에 서서 그 사슬을 절단한다. 그리고 떨어진 무수한 고리에서 제일 단단한 낙관의 고리 하나만 움킨 채 집으로 돌아가다.     


 흔들리자! 흔들리자! 몸 던져 흔들리자!

 넘어지자! 넘어지자! 몸 던져 넘어지자!

 몸 던져 넘어지는 자에 누가 동정을 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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