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란 착한 행인이다.
어찌 또 쓰랴, 누워 푸우 한숨을 불다가도 구족쇄 같은 그 몸을 일으켜 어찌 책상까지 끌어와 몇 시간이고 나앉아있으면, 구걸에 몇 푼 동전 던져주듯 기꺼이 몇 문장은 얻는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란 냉철한 검문관이다.
작은 욕심에, 부러 없는 것을 종이에 올리려 하면 썩 눈치를 채 더는 문장길을 내주지 않고 턱 멈춰 서는 것이다.
가진 것을 써야지 싶다. 먼저는 상허의 뜻대로 자기풍부일 것이다.
자기풍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얼마나 매력적이랴!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밤낮 며칠을 대화로 새 볼 유흥일까. 그 자에겐 삶 자체가 문장 저장소라 글쓰기가 그저 뽑아 적는 재미일 테지만 나의 빈곤한 가슴엔 절망이 온다. 이상의 말대로 절망은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하는 글쓰기라.
“좋은 글을 쓰려면 잘 살아야 돼요.”
고교 시절 소강당에서 대통령의 글쓰기를 강의하던 그분을 떠올린다.
“자기 문체를 얻으려면 우째 하나요?”
나는 또 하루키를 떠올린다.
“일단 묵묵히 사는 수밖에요.”
문장은 내 삶의 사관.
자기풍부를 앞서 도달해 낸 이태준, 이상, 강원국, 하루키의 일이관지(一以貫之). 빈곤한 스물내기 가슴을 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