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이년생 꼰대 Sep 22. 2021

입시

 지나고 나니 별것 아니라고 지나기 전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선생님, 과거를 망각한 자기기만이십니다!”     


 우울한 시기에 사진은 실종한다. 작년에 교복 사진 좀 많이 찍어 둘걸 싶다가도, 하긴 그땐 또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었으랴 묻어 덮는 후회다. 학창 시절의 말년을 가장 우울히 보내는 역설이 어찌 별일 아닌가. 하면 수능도 별 난 일이다. 그 전날 집에서 밥을 푸다 눈물을 국물만치 쏟은 것은 지금은 틀리지만 그땐 마땅한 감정인 것이다.

 그런 날을 지나 대학에 합격했다. 그 정회를 글로써 풀려 했으나 봄 오기 전 진작 관둔 일이 되었다. 나에게도 망각이 일어 식탁에서의 울음은 잊고 합격의 흥분만 상기한 채, 지나고 나니 그 시기는 별것 아니더라는 자가당착 감상만 써짐이 선해 애초 한 글자도 떼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었다. 작년 은근 숱하게 들은 말은, 지나고 나면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에 와 휴학한 지금은 십분 이해되는 좋은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때 우린 지나기 전이었다. 그것이 전부였음을. 그러니 다시 한번 지나는 친구를 생각함에도 그런 글은 도무지 전우의 예가 아니요 일말의 지음과 공개 가치가 없는 것이다.     


 벌써 올해 수능도 채 100일이다. 9월 모의평가가 있던 날 절친 L군이 보내온 문자의 첫말은 욕설이었고, 추석 때 쉬는 것은 사치, 국어는 왜 쉽게 나왔냐, 93이 2컷이 말이냐, 끝말로는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 했다. 9월에 점수가 잘 나오면 추석 즈음에 밥 한 끼 하자 계획했지만 그리 호락호락 허가하지 않는 이번 시험이었나 보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라는 말은 재차 심기일전한 자에게도 썩 큰 힘은 아닐 것이다. 군의 이야기를 듣자니, 아침에 머리를 감다 하수구에 꼬인 머리카락 한 뭉치와 세안을 하다 거울에 비친 여드름 만발이 적잖은 스트레스라 한다. 노년기와 사춘기의 동거가 어찌 지난다고 별것 아닌 일이 될까. 그래도 군은 잘 나온 수능 성적표가 곧 약방문(藥方文)이라며 대학이 말끔히 쾌하게 하리라 말했지만 내가 신경이 가는 것은 신체보단 그의 내면 변화인 것이다.      


 가족사를 고백하면 형은 5수 끝에 올해 나와 함께 대학을 갔다. 5번에 모두 힘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돌고 돌아 결국 수능으로 온 형을 보면 하루키가 내가 된다.

 ‘빠져나갈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년에 형은 밥 한 공기를 꽉 채워 먹지 않았다. 배부르면 공부할 때 졸리다, 그것도 슬프지만 분명 ‘장남’과 ‘23’ 두 병졸이 식도를 주리틀었음이 고3인 나한테도 비쳐 보인 것이 더 큰 슬픔이었다. 하지만 슬픔보다 안타까움은 어느새 형의 내면에 자리한 비관이라는 퉁퉁이와 자존감이라는 비실이, 둘의 본체 조종이었으리. 대학에 합격하고 형은 문제집 산적, 컴퓨터용 싸인펜, 녹색 후리스, 슬리퍼 등 재수의 기억을 살리는 물품은 빠르게 정리해나갔다. 하지만 대학에 가 인간관계 맺음에 있어 상대방이 그리 낮추어 생각하지 않을 법도 한데 괜히 자기 검열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면에 아직 사는 그들이구나, 외면과 달리 내면은 쉬이 청소하고 단장해버릴 수는 없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세계적 수준에 맞지 않는 주입식 교육 위주니 하는 것보다 당장에 그 폭력성이 학생의 내면을 정조준함이 나에겐 더 괴물 같은 문제로 다가온다. 창의성 파괴도 내면 파괴 앞에선 감히 저 멀리 둘 문제여야 한다.    

 

 다만 문제가 이뿐이랴. 공교육의 노년기와 사교육의 청년기, 모난 돌에 정 때리는 특목고 폐지, 나아가 정시냐 수시냐 하는 문제도 있으니 공정과 정의를 논하는 정치인의 머리처럼 지끈거려 부득불 비유를 쓴다. 우리의 입시제도는 마치 거미줄 한가운데 묶인 무엇과 같다. 그것을 감싼 여러 문제부터 차근히 뜯어고치지 않고서야 도저히 손댈 수 없다는 것인데 비감은 이는 재학생도 알고 오래된 졸업생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본인만 어찌 빠져나오면 저곳에 분명 괴물의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 거미줄 같은 복잡성에 결국 잠시 돌아본 그 눈을 영영 거두는 것이리. 이는 누구보다 나에게서 처음 목격한 변화였다.

 L군은 이것이 진정 학생을 위한 문이과 통합이냐고 욕했다. 나도 같이 욕했다. 그런데 그 욕에 심이 없고 그처럼 화가 오르지 않은 이유는 앞전의 고백이다.      


 작년 언제 나는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다.

 “쌤, 제가 교육부 장관하면 엄청 잘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허허, 모든 일이 보기엔 그래도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며 한 말씀 덧붙이셨다.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하는 네가 부럽구나.”

이만한 나이가 되니 무언가를 바꾸려는 마음마저 들지 않는다고.      


 불과 1년이 지났지만 나의 가슴은 훅 선생님의 연세가 된 걸까. 이젠 교육부 장관이 되는 상상의 끝은 <교양 없는 송 장관은 자진 사퇴하라!> 제목을 단 청원의 게시로 맺어진다. 그 상상에 현실의 물이 찬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끝끝내 사수하고픈 내 모습이 있다. 그것은 젠가 놀이하듯 내 인생에 있어 고3이라는 시기를 빼버리지 않는 것, 미화원처럼 그 시기를 닦지 않는 것, 그래서 나이가 듦에도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라는 말은 그들에게 하지 않는 내 모습이다. 욕심으론, ‘힘내라’ 없이도 힘을 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늙음이겠으나 당장은 그 말이 떠올라주지 않는다. 더 살아봐야 알까. 더 끈질기게 그 시기를 사실주의 작자처럼 간직해야 그 멋진 말 하나 뱉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 침묵의 응원이야.



이전 14화 문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