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커뮤니티시설이 크다. 임차인모집 때 법이 정한 것보다 훨씬 크게 커뮤니티시설을 조성했다는 걸 마케팅 포인트로 삼을 정도였다. 협동조합 형태에 공동체를 지향하는 아파트니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필요하다. 철학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바른 선택이다. 그런데 이 커뮤니티시설을 이용할 공동체 구성원에 반려동물은 빠져있다. 커뮤니티 메이커라고해서 설계단계부터 공간의 활용방법과 규칙을 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
그 근거는 누구나 짐작할 만한 것들이다. 개물림 사고를 비롯한 안전문제, 실내공간의 대소변 관리, 개, 고양이털에 의한 알러지 환자 배려 등이다. 동의할 수 있는 근거들이다. 하지만 이 결정을 내릴 때, 반려동물을 기르는 세대의 의사와 전문가의 조언, 가족의 의미에 반려동물이 포함된다는 시대적 변화, 주민 중 실제 알러지 환자의 숫자와 그들의 이용시설과 빈도까지 고려해 결정했는지는 의문이다. 아마 그 정도의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이해는 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라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고, 정해야 할 것들은 많았을 테니까. 커뮤니티 메이커로 활동했던 사람 중엔 반려동물, 특히 개를 키우는 세대도 거의 없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개를 기르지 않았다면 비슷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입주 후 커뮤니티 센터에 반려동물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결정은 무척 아쉬웠지만,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광의의) 정치활동에서 참여하지 않아 놓고, 내 필요나 요구를 알아서 반영하지 않았다고 문제 삼는 건 ‘땡깡’이라고 생각해서다.
입주 후 정말로 그곳에 살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적지 않은 반려인이 이 규칙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커뮤니티시설을 상시적으로 반려동물에게 개방할 필요는 없다. 개나 고양이가 헬스장에 갈 일은 없지 않겠나. 하지만 반려견 산책교육을 마을체육관에서 하려고 할 때는? 반려견과 산책 중 이웃과 마을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싶어지면? 소나기가 쏟아져서 반려견과 커뮤니티센터의 통로를 이용해 집에 가고 싶을 때는? 반려인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입주 초는 바깥 기온이 낮을 때라 반려견과 함께 이용할 실내 공간 더 절실했다.
멍냥토크회 초기에 회원들이 개별적으로 조합 측에 마을카페에 반려동물 동반허용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용도 대동소이했다. 마을카페만 동반을 허용해 달라고. 필요하면 규칙을 만들어 달라고. 개모차, 캔넬을 이용할 시 허락하거나, 카페 내에 특정 존을 지정해서 거기에만 머무르게 하거나 정도였다. 대부분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추후 논의해 보겠다 (근데 당장은 안 된다!)’ 정도였다.
현재는 흐지부지되었지만 입주 초에 커뮤니티센터운영위원회, 줄여서 ‘CM운영위’가 매달 한 번씩 조합 사무국 주최로 열렸었다. 운영위원회의 멤버는 마을 내 동아리 회장이다. 합리적인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운동 관련 동아리들이 체육관을 주로 사용했고, 목공동아리가 공방을, 밴드동아리가 합주실을 규칙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특정 공간과 특정 비품을 사용하는 동아리들이 공간 관리주체가 되는 게 여러모로 합당해 보였다. 커뮤니티 공간을 사용하지 않는 동아리라도 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람은 마을일에 관심을 가질 확률이 높다. 따라서 동아리 회장들의 의견을 듣고 커뮤니티센터를 운영하는 게 좋겠다고 당시의 사무국은 판단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 CM운영위에서 마을카페의 반려동물 동반에 관해 건의했다. 당시 임시로 사무국장과 CM센터장을 맡고있던 SI는 조합 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 때 회의장의 동아리 회장들 중에는 카페에 반려동물 동반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내 제안으로 상황을 알고서 놀란 사람도 있었다. 날이 안 좋을 땐 강아지 동반 모임은 어디서 하냐고? 몇 분은 살짝 언성을 높이며 당장 허용할 방법을 찾으라고 해서 내가 조급하게 가지 말자고 발언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22년도 4-5월경이었다.
당시에도 복합 대형 쇼핑몰인 스타필드에선 반려견 동반이 가능했다. 지금은 수많은 상업공간이 반려견의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반려견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사회전반으로 퍼졌기 때문이리라. 외국처럼 국립공원 동반입장도 곧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한번 만들어진 규칙, 그것도 뭔가를 금하는 규칙은 무르는 게 쉽지 않다. 사무국장 SI가 이사회 회의안건으로 올려 논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단번에 해결되진 않으리라 여겼다. 주거공동체를 목표로 내건 조합이니, 여러 차례의 회의와 간담회를 거쳐 겨우겨우 합의에 이를 것이고, 거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다 싶었다.
나는 무엇이든 공개하자 주의라서 운영위 회의에서 있었던 일, 추후 진행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들을 회원들에게 최대한 그대로 전달했다. 다들 기대에 부풀었다. 장마와 무더위가 올 때즈음엔 쾌적한 마을카페에서 강아지들 데리고 만날 수 있겠지!? 캔넬이나 개모차가 필요하다면 동아리에서 기부를 받거나 회비로 구매해서 마을카페에 기증할까? 이런 김칫국을 마시며 결과를 기다렸다. 흥미롭게도 고양이를 키우는 회원들은 미묘하게 톤이 달랐다. 그래서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강아지 보호자 회원들은 간절히 원했다.
이 소원은 2년이 흐른 지금 24년도 4월에 어떻게 되었을까? 예외적 상황이 한번 있었지만, 커뮤니티 내 어떠한 공간도 반려동물 동반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사회에 정식 안건으로 올라가거나, 회의록에 한 줄의 기록조차 남은 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이 2년간에는 그야말로 격정의 드라마가 가득하다. 공동체에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역동적인지, 인간이 얼마나 정치적인 존재인지를 몸소 겪은 2년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멍냥토크회의 여러 활동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다음에 이어서 해보겠다.
나는 아직도 우리 강아지와 마을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는 꿈을 꾼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희망해서는 안 될 불온한 소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마 반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금지된 채로 고착된 현재 상황을 바꿀만한 관심이 없을 뿐이리라.
참고할 게 있다면 우리와 똑같은 형태의 ‘선배’ 사회적협동조합 민간임대아파트의 마을카페에는 눈치껏 배려를 전제로 반려견을 동반해 카페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선배마을도, 내가 사는 이 아파트도 정관이나 규약, 규칙 어디에도 커뮤니티 센터 내 반려견 동반 금지를 명시한 적이 없다. 그저 각각의 조합이 그렇게 한쪽은 적당히 허용하고, 한쪽은 철저히 금지하면서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