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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윤별경 Oct 20. 2024

막내 업고 튀어!

술이 들어간다.쭉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꺼야?



엄마는 여럿자식을 낳았나,

오빠 아래 홍역으로 먼저 보낸

5살 된 아들도 있었으며,

작은언니 아래로 두 번의

임신 지만,

자연유산 되다고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땐 

마는 이미 노산이었다.

모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젖동냥하러 다녔고, 미음으로

먹이고 달래고 엄마랑같이 나를

목욕시킨 사람은 7살이 된

작은언니다.


닌 안쓰러움이었는지

나를 업고 키우기 시작했다.

갓난쟁이를 놔두고

틈틈이 한복주문이 들어와

열심히 만들수 있는 것도,

이웃집 농사일을 하러 다니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도

작은언니에게 나를 맡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언니는

나의 2번째 엄마이다.

나를 먹이고, 재우고

항상 내 옆에 있어주었.


홍수가 나서 온 동네 사람들이

지대가 높은 종철이 집으로

가야 된다며 소리를 지를 때, 

엄마와 큰언중요한 물건을

지만, 작은언니는

5살이었던 나를 제일 먼저 업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캄캄한 어둠을 헤치며

피난을 기도 했었다.


강에서 수영하다 허우적

거리는 나를 살려주었고,

7살 때 볼거리(이하선염)로

아파하고 있을 때

언닌 학교에 가지 않고 며칠 동안

내 옆에서 간호해 주었다.


친구들과 장난치다 다리에서

굴러 떨어져 코뼈가 부러질때도

언니가 달려와서 병원으로

업고 달렸으며, 친구들과

싸워서 울고있으면 친구를

혼내준 사람도 언니였다.

언제나 어디서나 언니는

항상 나의곁을 지켜주었다.


언니가 나 때문에 놀라서

크게 울었던 일이 있었다.




국민학교1학년. 

여름방학즈음 토요일

하교를 하여 목어귀를

들어올 때 7살 된 앞집의 성화가 

나를 불렀다.

"울  막걸리 만들어

장독마다 한가득있다.

우리 함 묵어볼래?"



앞집할머니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뭐든 뚝딱뚝딱. 거친 손으로

만드는 음식은 기가 막히게

맛났었다.

손으로 직접 밀어서 만든

손국 김치. 막걸리로

들에게 적은 돈을 받고

파셨고, 농부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주셨다.


끄덕이는 나에게 성화는

장독에서 막걸리를 한 주전자

떠와서 성화동생 성미랑

셋이 먹기 시작했다.

5살 된 성미는 맛이 이상하였는지

이상 먹지 않았고

성화와 난 부어라 마

퍼 먹기 시작하였다.


얼큰하게 취가 올라오자,

성화는 우리 매는 이거 입고

춤도 추더라 하며 한복윗저고리

둘이서 입으며 노래부르며

춤을 추었던 기억까지가 다였다.


작은언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자

찾으러 다니다 앞집에서

웃으며 난리 치는 소리를 듣고

와보니 가관이었다고 했다.


술이 취해 얼굴이 빨갛고

한복을 입고 앞집 마당에서

춤을 추며 히죽 웃는 나를 보며

"이노무 가시나 미칫나?

얼마나 쳐 먹은 기고?"

손바닥으로 나를 후려

시작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놀란 언니는 나를 들쳐

뛰기 시작했다.

10분 거리에 있는

박약국아재집

뛰어가며 언닌 엉엉울었다.

"갱아. 죽으면 안 된다.

언니가 잘못했다. 죽지 마라"


이 범벅된 언니는

박약국아재집에 들어섰고,

아재 보는 순간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아재요!  우리 이 살려 주이소"

널브러진 나를 보며 아재도 놀라서

"야가 와 이카노?쪼깨난게

술 먹었나? 얼마나 묵었?"


"몰라예. 한 장독 먹은 거 같심더.

죽으면 안 되는데. 살려주이소.

내가 머라카면서 때렸더

이래 정신 나갔어."


아재는 박약국아지매에게

동치미 한 사발 먹이게 하고

침을 놓기시작했다.

엄마와 큰언니가 놀라서

달려고, 작은언니는 엄마에게

야단을 맞아야 했다.


아재는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재울테니

집으로 가 있으라며

우리집식구들을 보내셨다.


작은언닌 그날 밤새도록

울었다고 하였다.

본인이 화가나서 때려서

내가 정신없이 쓰러졌다

자책을 하였다.엄마는

저 가시나가  술 처먹어서 

그런거니 걱정마라 

달래었지만 언니가 너무나

서럽게 울어서, 엄마


우리가 너무 가난해서

내가 너거들 집에서

돌봐야되는데 내가 너거들

못 돌봐서 이런일 생다.


그날 마와 언니 둘은

통곡을 하며 우는 밤이었다.


정작 술이 취한 나는

나를 이뻐라하는 박약국

집에서 잘 자, 그 다음날까지

아침밥과 한약까지 먹으며

잘 지내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막걸리 금지령'

지만, 성인이 되었던 

막걸리가 아닌 소주를 

마시고 다녔었다.


지금의 난 어떤 술도

마시지 않는다.

숙제를 일찌감치 다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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