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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윤별경 Nov 03. 2024

방물장수와 엄마.

그리고 5일장!



스산한 겨울저녁.

시골의 어둠이 빠른 시간으로 

내려앉고, 직. 찌직 

빨간색이 많이 바래진

라디오에8시를 알리는

효과음제멋대로 들렸다.


매섭도록 휘몰아치는

겨울바람 방문까지 

덜컹덜컹 소리를 내었다.


뚫린 창호지로 바람이 들어와

천장에 간신히 매달린

형광등이 떨어질 것 같아

뚫어지게 쳐다보며 걱정하였다.


한복을 만드는 엄마옆에서

언니가 삶아놓은 고구마를

먹으며, 큰언니가 가르쳐준

한글을 따라 습장에 한 글자씩

꾹꾹 쓰고 있는 6살의 나였다.

덜컹덜컹거리는 대문사이로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계세요?"


엄만 누구냐고 물으며

잘 열리지 않는 방문을

끼익 소리 내며 간신히 열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서있는

나이 지긋한 아줌마였다.


본인은 방물장사이며,

이 동네 물건을 팔고 가려

어두워졌으며, 집으 

터미널에 갔으나 버스는

오지 않았고, 마을은 이미 불 꺼진

집이 많았다고 하였다.

걷다가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에 마당에

들어섰다고 하였다.


괜찮다면 하룻밤 재워줄 수

있냐고 하였고, 엄만 추운 날이라

들어오시라고 했다.


저녁밥챙겨준 엄마는

보따리 속의 물건

신기해하였고,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 집 형편에 돈이 없었지

어린 나의 눈 엄마는

무척이나 사고 싶은 눈치였다.



보따리장수 아줌마와 엄마는

늦은 밤까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때의 엄마는 40대 초반.

그 아주머니 50이 넘은

나이라고 하셨다.


아주머닌 20살 되기 전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으나,

5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친정으로 쫓겨났고,

친정에서도 이미 시집갔으니

시댁에 가서 싹싹 빌고 그 집의

귀신 되라며 쫓겨 나왔다고 했다.


이미 다른 여자가 며느리로

들어와 있는 시댁에, 가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다

방물장수 한지 30년이

어간다고 하였다.


오빠는 타지에 있어서

오빠방은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쓰고 있었고, 날밤 난 엄마와

그 아줌마 같이 자게 되었다.


엄마는 동동 구루무와 동백기름.

언니들과  예쁜 핀들과 브로치와

모자등을 고 싶어 하였다.


돈이 없었던 엄마는

우리가 사고 싶은 것은

못 사게 하였지만,

아주머닌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액세서리들을 주셨다.

그 아주머닌 조금의 돈을 받고,

따뜻한 봄에 다시 들리겠다고

하시며 아침 일찍 떠나셨다.



그다음 해 봄.

벚꽃이 흐드리지게 흩날리던 날.

방물장수 아줌마는 우리 집에

오셨고, 엄만 돈을 갚았

스킨. 로션. 콜드크림까지

돈을 주고 사셨다.


그 이후로 그 아주머니는

다른 곳으로 다니셨는지

오시지 않으셨지만, 엄만

그분이 건강히 잘 다니시는지

궁금해하시기도 하였다.




엄마의 유일한 취미는

장날이 되면 쇼핑하기였다.

5일장 서는 날이면

나는 시장 갈 때까지

엄마옆에 딱 붙어있었다.

칭얼칭얼 거리는 나를

달래는 방법이 시장에 데려가서

맛있는 간식거리를 사주셨기

때문이다.


장에 가보면 구경거리가 많았고,

먹을 것들이 넘쳐났다.

모둠전이나, 꽈배기, 맛있는

빵들과 핫도그. 따근따근한 만두


더운 여름에는 느티나무아래

나무의자에 앉아 우뭇가사리를

먹었고, 추운 겨울에는 어묵과

따뜻한 국물을 먹는 재미였었다.


국민학교 1학년 겨울음.

그날도 엄마 따라 5일장에 가고

있었다. 김장준비를 해야 하는 엄만 생멸치젓갈을 사서 집에서

끓일 준비를 하고, 새우육젓도 

사야 한다며 휴가 나온 아버지와

장에 가자고 하셨다.



장 어귀에 들어선 엄마를 보며

반가워하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보따리장수 아주머니셨다.

여기는 웬일이시냐며

반가워하는 엄마에게,


나이가 있어서 여기저기

 니기가 힘이 들어가 

이곳이 너무 좋아서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게

되었다네. 우리 집으로 놀러 가세.


우리는 아주머니 따라

시장에서 멀지 않은

가게로 가게 되었고,

가게 안에는  화장품과 속옷.

여러 가지 옷들을 팔고 계셨다.

엄마와 아주머닌

그동안의 일들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셨다.


그 후로 엄마는 아주머니와

언니. 동생으로 친하게 지내셨고,

우린 이모라고 부르게 되었다.


친정식구들에게도 외면받은

그 이모는 우리 자매들을

이뻐하셨다.

예쁜 물건이 있으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고,

엄마는 맛있는 음식들을 들어

이모에게 자주 대접하셨다.


중학교 2학년.

칠순을 앞 그 이모는

위암으로 돌아다.

형제자매와도 연을 끊고

살았지만 행히 마지막 인사는

형제분들이 모셔서

쓸쓸하지는 않았다.


외로웠던 그 이모의 삶에,

동생이 되어주었던 엄마와


언니가 없었던 엄마에게,

따뜻한 언니가 되어주었던

방물장수였던 이모.

두 분의 우정이 의 마음속에

따스함으로 남아있다.


하늘나라에서도 언니동생으로

잘 지내고 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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