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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윤별경 Nov 17. 2024

차창너머 서울.

방황의 끝은 엄마품속이었다.



대구동부정류장에서

서울로 가는 심야버스를 탔다.

밖에는 어둠이 깔려있었고,

비가 내려 버스창문은

습기로 인해 밖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로등의

불빛만이 차창으로 스쳐 지났다.



옆에 앉은 미숙이가 말을 건넸다.

"걱정하지. 서울 가서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오면 된다!

니는 지금부터 ''.

울 언니니깐 꼭 기억해라.

여기 주민등록등본이다.

서울에 내려서 내가 아는

흥신소로 가면 된다"


그래! 돈 열심히 벌어갖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다.

그래서 다시 인문계고등학교

되는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난 가출을 강행하였다.

오빠도 아프고, 넌 인문계도

못 갔으니 지금 돈 열심히

버는 게 너거집에 도움 되지 않겠나?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일찍이 산업전선에서

일을 였던 동네친구 미숙이의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고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국어와 영어.

내가 잘하지 못했던 수학이나

과학. 생물시간이 많이 줄었고,

부기. 회계. 타자 등 시간이

더 많아진 그 과목들

잘하지 못했던 수학과

과학시간보다 나에겐

더 힘든 시간이었다.


입학한지 몇 달이 지났지만

대구에 있는 인문계진학

포기하여야 했기에 방황의

시간들이고, 재미가없어서

시간만 때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교통사고로 1년만에 퇴원 

오빠가 반가웠지만, 오빠는

후유증이 심하였다.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하면

밤중이라도 응급실을 가야 했기에

우리족들은 오빠 때문에

긴장며 살아야했고,

부모님께서는 오빠의 건강을

챙기느라 막내딸이 학교를

잘 다니는지 관심밖의 일이었다.




미숙이와 이른 새벽에 도착한

서울은, 시골과 달리 분주한

아침의 시작이었다.

흥신소 사무실에 도착하니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사람이

미숙이에게 아는 척을 했다.

곧이어 늙은 아저씨를

사장님이라 소개해주었고,

미숙이는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팀장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나에게 신사동 속옷공장으로

가야된다고 하였다.

미숙인 다른 곳으로 가게

그 곳에서 미숙이랑

헤어지게 되었다.


솔직하게 겁이 났다.

시골 촌아이라고 나를

술집이나, 이상한 곳으로

팔아버리는 건 아닐까?


흥신소 팀장의 차를 타고

가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차하면 도망서 경찰서로

뛰어야지! 생각하며 손을 움켜쥐고

긴장한 채로 차 안에 앉아있었다.


다행 조그마한 가내수공업

공장으로 안내해 주었고

주인부부와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종업원이 있는 곳이었다.

여자속옷 만드는 공장이었다.


주인아주머니와 종업원언니는

미싱일을 하면, 난 뒤에서

포장을 하는 일을 하였다.

숙식은 에서 종업원언니와

같은 방을 쓰며, 먹고자며

일요일도 없이 계속일을 하였다.

밤늦도록 일을 하여

방에 들어오면 피곤하여

자느라 바빴다.


한 달이 지났을까?

그날도 피곤하여

곯아떨어져 잠을 잤다.


꿈이었을까? 생시였을까?


몽롱한 상태에서 어나니

하얀 안갯속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예쁜 한복을 입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였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울고 계셨다.


일어나 보니 베개

눈물이 흥건히 배어 있었고,

나의 시골 나의 엄마에게

가야만 했다. 사장님 부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

떠나겠노라 말씀을 드렸다.


사장님 부부는 한 달 일한 돈과

고속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시며

차비까지 넉넉히 주셨다.


집으로 돌아오자

오빠에게 처음으로 크게혼났으며,

엄마에게 처음으로 회초리로

종아리로 두들겨맞았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껴앉고 우셨다.

"너를 잃어버린줄 알고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이놈의 가시나

한번만 더 엄마속을 썩이면

진짜루 너 쫒아 낼끼다.!"




"경아"

"경아"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니 하얀 수건을 

머리에 덮어쓰고, 흙먼지

투성인 채인 엄마가 뛰어왔다.

이웃집 양파밭에 하루일당

받고 일을 해주신 날이었다.

그때의 난 4살이었다.

(4살인지 정확히 기억을 못 했지만,

나중에 엄마에게 물으니

내가 4살이었다고 하셨다.)


"엄마!"

해맑게 웃으며, 나비를 쫓아가다

뒤돌아서서 엄마를 향해 달렸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이놈의 지배. 밭 위에 가만

있으라고 했더니  멀리까지

? 가자! 점심 먹자"

엄마손을 잡고 걸어양파밭

능선에 앉하얀 스텐도시락에 

김치와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엄마는 나의입넣어주셨다.


6월 더운 바람이 부는날.

양파밭 언덕배기에 앉아

토끼풀들을 뜯어

반지모양 만들어 끼다가

시계를 만들어 끼다가

지겨우면 버리고, 새로 만들어

끼기도 하였다.



혼자서 소꼽놀이 하면서 놀다가

깔아놓은 멍석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엄만 어린 내가

총총걸음으로 어디 가고 없는지

애타는 음으로 일하면서

몇 차례나 쳐다보았을 것이다.


엄마는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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