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10회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저도 호기롭게 출품을 하고 역대급으로 무려 50명이나 선발하는 결과에 약간의 가능성을 믿으며 기다렸지요. 그러나 선정 결과를 보고 나니 그동안 잘 가고 있다고 믿었던 내 글의 좌표에 대해 환상이 와르르 깨어지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제 글은 마치 유효기간을 넘긴 음식처럼 지난 세월의 문학적 성향을 쫓아가고 있었던 거죠. 순수문학에 대한 열정만 있었던 저의 폭넓지 못한 독서나 정보 수렴의 오류로 변화하는 문학 환경을 따라가지 못했던 듯합니다.
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퇴직 후에는 글 쓰는 일에 전념하리라는 나름의 거창한 계획도 있었는데, 독자들의 마음은 어느새 감각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글들을 좇아 멀리 떠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라 시쳇말로 멘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이 뚝 떨어지니 브런치에 발행한 글들이 너무나 초라해 보여 모두 삭제하고 침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잘 아는 시인님으로부터 지역 문화재단에서 선발하는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해서 선정이 되면
그동안 쓴 글들을 한번 정리하고 가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고사했지만 계속적인 설득에 결국 동의하여 응모하고 다행히 운이 좋아 신진작가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출판사와 미팅을 하고 책에 실을 글을 정리하다 보니 치열한 글쓰기를 하지 못했던
게으름이 한눈에 드러났습니다. 겨우 45편의 글을 무려 햇수로 6년 동안이나 썼으니 심혈을 기울여 벽화를 그리는 고전 화가도 아니고 이건 좀 너무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내가 참 게을렀구나.
핑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슨 이유를 들더라도 글에 대한 열정이 부족했음은 부인할 수 없었던 거지요.
한 달간 3번 전체 글을 읽고 수정하고 오탈자를 찾아 어제 드디어 탈고하고 메일로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영원한 퇴고는 없다고 했으니 얼마간 지나면 또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생기겠지만 내가 낳은 글들도 자꾸 보니 이뻐 보이지 않아 미움이 생기기 전에 떠나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책은 아마 10월 말에나 출간이 되고 11월 초 문학축제 기간 중에 수상 행사는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얼마간의 선인세도 준다고 해서 그나마 무언가 작가다운 면모를 갖추는 것 같아 위로가 되네요.
당분간은 책을 출간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 이후는 제 글의 방향성과 역량을 키우는 일에 조용히 집중하려 합니다. 작가님들의 훌륭한 글에 라이킷 하지 못하거나 응원의 글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늘 같은 입장, 같은 마음으로 작가님들의 건필을 응원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