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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ul 07. 2024

내가 부동산 공부를 하는 이유

딴짓하는 직장인



2024년 4월, 4년간 살고 있던 전셋집의 계약이 끝났다. 서초구에 있는 15년 된 오래된 빌라. 계단 없는 5층에 장판은 얼룩덜룩했지만, 생애 첫 분리형 원룸인 데다 넓은 테라스가 있어 옥탑의 로망을 실현시켜 준 집이기도 했다. 조금 더 살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쌓여가는 물건들과 먼지들, 새로 바뀐 집주인과의 트러블에 골치가 아팠다. 이제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계약 종료 3개월 전,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낸 후 본격적으로 부동산에 집을 보러 다녔다. 직방도, 다방도 있지만 이전에도 그랬듯, 직접 부동산에 발품을 팔아가며 집을 알아볼 요량이었다. 첫 후보지는 성수역. 팝업스토어의 성지이자 맛집도 많은 곳이라 새로운 에너지를 느끼기에 제격인 것 같았다.





하지만 번화가는 대부분 팝업스토어 전문 부동산만 있을 뿐이고, 주거 지역은 곧 재개발을 앞둔 터라 대부분의 집이 심각할 정도로 관리가 안돼 있었다. 게다가 원하는 조건은 전세 2억에 투룸. 대부분의 부동산은 전세도 없는데 조건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성수를 포기하고 지도 어플을 켜니, 바로 옆 구의역이 눈에 들어왔다. 주거 지역이 꽤 많아 보여 구의역 쪽 부동산을 돌기 시작했다. 역시나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성수에 비해서는 덜 부정적인 분위기였다. 몇 개의 부동산과 집을 보던 중, 적극적으로 계속 연락을 주시던 삼성부동산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삼촌, 여기 엄청 싸게 나온 빌라 급매가 있는데, 조카 주려다 삼촌한테 전화했어.





얼른 달려가 매물을 보니, 원하던 투룸에 엘리베이터도 있는 나름 신축 빌라. 임대사업자를 하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가지고 있는 매물 여러 개를 묶어서 빠르게 팔고 있다는 공동 중개 부동산 사장님. 갭 5천만 원에, 매매가가 주변 시세보다는 5천만 원 싼 매물이었다. 하지만 세입자가 내년까지 계약되어 있어 당장 입주가 불가능하고 빌라는 매매가가 잘 안 오른다던데. 뭔가 명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어서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그냥 나는 살 집이 필요할 뿐이었는데...


갭투자로 빌라를 사고. 세입자가 나갈 때까지는 월세집에 살다가, 세입자가 나가면 내가 살다가 시세차익을 받고 팔거나, 더 높은 금액으로 전세를 놓고는 그 차액으로 내 집을 찾고. 뭔가 심플한 일을 돌아 돌아가야만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매물이 적정 가격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느꼈다. 부동산을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고.




원래는 2억짜리 전세를 찾았는데, 보다 보니 2억 3천, 2억 5천, 2억에 10만 원 등등 점점 가격은 올라가기만 했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중 다행히 1억 7천만 원에 투룸인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당장에 계약을 하려고 부동산에 계약 의사를 전달하고 계약일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이 집이 다가구인데, 근저당이랑 선순위를 보니까 좀 위험해요.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다가구는 대충 알겠는데, 근저당은 뭐고, 선순위는 또 뭔지. 게다가 매일 퇴근 후 부동산을 돌고, 주말 오전도 반납하며 몇 십 개의 매물을 본 터라 이제 슬슬 집 보기도 지쳐가던 참이었다. 세대별로 구분이 되지 않고 전체 건물이 한 개로 묶여 있는 매물이 다가구인데, 건물을 담보로 빌린 돈이 혹시나 경매로 넘어가면 선순위 기준으로 돈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는 거라는 네이버의 친절한 설명. 결국 이 매물도 수포로 돌아가고, 부동산 공부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계약 종료가 한 달 조금 남았을 무렵. 방법을 바꿔 직방과 네이버 부동산, 다방 등을 샅샅이 뒤지고 위치도 사당역, 서울대입구역, 잠실새내역 등 2호선 라인을 전방위로 보고 있었다. 송파 쪽 매물을 보기로 약속하고 방문했는데 이사 일정이 맞지 않아 근처에 있는 부동산을 돌게 됐다. 그러다 대박부동산을 만나게 됐다.


벽에는 대박컨설팅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센 언니 같은 두 분이 앉아 있던 그곳. 뭔가 잘 못 들어왔나 싶은 그때 20년 넘게 이곳에서 부동산을 했다는 사장님이 몇 군데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여기 대박이에요, 혹시 그 2억 전세 지금 나갔어요?" 전화를 끊고는 이 지역은 2억으로 투룸은 택도 없다며, 그래도 매물 찾아서 조만간 연락을 주겠다며 연락처를 남기라고 한다. 여타 부동산과는 뭔가 묘하게 다른 느낌을 받으며 발길을 돌렸다.



대박이에요~

 

갑자기 뜬 팝업 알림. 스팸인가 싶었는데, 얼마 전 들른 대박 부동산 사장님의 연락이었다. 추천 매물을 확인하고 날짜를 잡아 함께 돌았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원하는 조건에 비해 좀 비싸거나, 아니면 방이 한 개이거나 했지만, 최대한 내 상황을 고려해 고민해 주는 모습에, 다른 부동산에 비해서 신뢰가 많이 갔다. 그 후로도 몇 번 약속을 잡고 함께 집을 보던 중에, 사장님이 갑자기 의외의 말을 꺼냈다.



혹시 OO김밥 알아요? 저 거기 CEO였어요.


허풍 있는 사장님이 많은지라, 또 그런가 싶었는데 인터넷에 인터뷰 기사가 떡하니 있었다. 알바에서 시작해 CEO가 된 젊은 대표. 이제는 부동산 투자를 제대로 해보기 위해 친언니가 하는 부동산에서 일하며 바닥부터 배우고 있다고 했다. 사업을 하던 분이어서인지 연락 방법부터 고객에게 부담 주지 않는 화법까지, 많은 것이 달랐던 이유가 있었다.



저는 한 번도 전세 살아본 적 없어요.
왜 그 큰 기회비용을 다른 사람한테 맡겨요?



전셋집을 구하는 고객에게, 게다가 중개수수료도 더 낮을 월세방도 알아보라는 조언을 하는 사장님. 그 후로 다른 부동산을 돌면서도 그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시기, 계약을 유력하게 고민하던 회사 근처의 2억짜리 전셋집이 있었는데, 현 세입자가 이사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는 통보를 해와 결국 무산이 됐다.



돌아다닌 지역만도 수십 군데, 방문한 부동산은 수 십 개, 직접 본 매물만도 백 개 가까이. 게다가 몇몇 매물은 은행도 돌아다니며 전세까지 알아본 터였다. 이제 이사도 한 달 남은 시점이라 더 이상 원하는 조건만도 고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던 그때, 부동산 사장님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라, 월세집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원래 구하던 조건은 전세 2억. 월세로 치환하면 100만 원짜리 월세를 구할 수 있었다. 100만 원은 부담스러우니 보증금을 적절히 넣어 1억에 50만 원, 7,000만 원에 35만 원 등 여러 조건을 고민하며 월세방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지역도 2호선과 분당선 라인을 전체적으로 넓혀서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찾은 지금의 집. 태어나 처음으로 온 지역, 왕십리였다. 아주 낡은 구옥의 옥탑방. 하지만 투룸에다가 내부가 꽤 깔끔하게 수리된 곳이었다. 게다가 보증금 5,000에 월세 40이라는, 매우 저렴한 조건이었다. 40만 원이라는 월세가 부담이긴 했지만, 보증금 차액으로 생긴 금액을 굴려 부담을 좀 줄이면 괜찮을 것 같았다.



2024년 4월,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전세자금 대출을 갚고, 보증금도 내고 남은 8,000만 원. 이 돈을 잘 굴려서 월세 부담도 덜고, 더 나아가 부동산 시세차익도 노려볼 참이었다. 



나는 그렇게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퇴근 후와 주말, 부동산 클래스와 임장을 다니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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