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by 미스준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멀리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시내에서, 시 외곽에서 운 없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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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내는 일상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일상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나에게 주어지는 이 하루를 특별한 이슈없이 평온하게 보내는 것이 얼마나 많은 조건들이 들어맞았을 때 가능한 것인지 안다.


일하고 들어와 잠이 든 엄마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어본 적이 여러번이다. 숨을 쉬는지 확인.

엄마가 갑자기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다면 미성년자인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조금 있으면 성인이니까 일단은 혼자 생활은 할 수 있겠지만 돈을 벌려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나? 대학을 못가게 되면 일하러 공장을 다녀야하나, 지금 사는 집을 팔고 월세로 옮겨야 하나 등등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물론 엄마는 지금까지도 건재하시다. 아마도 어린 나에게 엄마는 내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모든 것이었을 것이다.


자식에게 부모가 그런 존재일텐데, 내가 만약 사라진다면 내 아이는 어떻게 되는걸까.

많이 아팠던 몇년 전엔 아이가 미성년이었다.

진단을 받는 날로 집에 돌아와 보험수급자를 수정하고, 예금내역을 정리했다. 조금 남아있던 대출금도 갚버렸다. 아이에게 빚을 넘길 순 없다는 신념으로. 그 순간을 추억으로 돌이켜보면 웃기지만, 그때 난 진지했다.

나라는 존재 하나로 아이의 일상이 무너지는 걸 그냥 놔두고 겪게 할 수는 없었다.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처럼, 어려서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는 그 틀 안에 갇혀 얼마나 비루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상할 수 있었고, 내 아이에게는 키다리아저씨가 등장할 리가 없지 않은가.

18, 19살의 미성년 아이는 퇴직한 직장인과 다름없이 무능력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미성년은 해낼 수 없을 거라는 걸 몰라서 무능하고, 퇴직자는 해낼 수 없을 거라는 걸 너무 알아서 무기력하다.

내가 무너지면, 아이의 평온한 일상, 제 침대에서 일어나 차려준 밥을 먹고, 다 정리되어 있는 쓰레기를 버리고, 잘 빨아 넣어놓은 빨래를 잘 개고,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추우면 보일러를 켜서 온실같이 적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집에서 통신료 걱정없이 유튜브를 보다가 스스륵 잠이 드는 이 일상이 어느 하나 본인의 능력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하겠지.


나의 일상은 어떤가.

생각지도 못한 질병을 진단받고 나니, 치료를 위해 휴직을 해야했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복직을 해야했다. 일에 그전처럼 집중할 수 없었기에 동료와 상사에게 양해를 구해야했고, 만약 상태가 지속적으로 더 나빠진다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생계는 어떻게? 방법이 없는데.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는 제 나이에 대학에 못갈 것이고,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던 늙은 부모는 나라가 책임져주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일상을 잘 버텼다.

내가 누리는 일상은 이제껏 내가 노력한 결과였고, 그 뒤에는 내가 맘껏 노력할 수 있게 지켜준 부모의 정성 때문에 가능했다.

난 운이 좋았다.


종종 실의에 빠진 아이에게 말한다.

"너의 일상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거야. 부모인 나와 조부모의 정성을 너에게 가득 채워두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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