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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

by 강승구

익산역은 호남선과 전라선이 갈라지는 교통의 중심이자, 호남 전역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KTX와 일반 열차가 교차하는 이곳은 익산의 상징이자 잠재력의 집약체다. 그러나 정작 역세권은 도시의 활력과 동떨어진 채 낙후된 모습에 머물러 있다.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실질적인 전략 없이 외형만 바뀌었지, 시민의 삶과는 괴리된 채로 남아 있다.


문화의 거리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약 6년간 총 6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도시재생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 예산은 주로 조형물과 벽화, 공방 조성, 간판 정비 등 물리적 공간 개선에 집중되었고, 시민 참여를 끌어낼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에는 거의 닿지 못했다. 주민들과 예술가, 상인이 함께 만드는 상시 프로그램은 없었고, 간헐적인 이벤트만이 반복되었다. 그 결과, 시민들은 이 거리를 ‘볼거리는 있으나 살 이유는 없는 곳’이라 말한다. 구조는 남았지만, 온기는 사라진 거리. ‘문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후 매년 꾸준히 예산이 투입되었고, 2024년에도 익산시는 문화의 거리 활성화를 위해 약 10억 원의 사업계획을 세웠지만, 실제 확보된 예산은 4억 원에 그쳤다. 이마저도 대부분이 벽화 보수, LED 조명 설치, 디자인 간판 정비 등 시설 보완에 치중됐고, 정작 거리의 문화를 살아 숨 쉬게 할 주민 주도 프로그램에는 거의 닿지 못했다. 콘텐츠는 여전히 단절되어 있고, 생활과의 접점은 느슨하기만 하다. 돈은 들었지만 삶은 멈춰 있는 거리, 시민의 체감은 여전히 낮다.


한편, 익산의 구도심은 고령 인구가 밀집해 있고, 홀몸 어르신과 빈곤층이 많은 지역이다. 건강생활지원센터나 자활센터가 일정한 역할을 하고는 있으나, 서비스는 흩어져 있고 연계도 부족하다. 복지시설이 ‘있는 것’과 ‘삶을 바꾸는 것’은 다르다. 도시 정책은 종종 시설의 숫자에 만족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고립되고 있다.


문제는 구도심이 도시 정책의 중심에서도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영등동과 모현동 같은 신도시는 아파트 단지와 문화시설이 들어서며 발전하는 반면, 익산역 주변은 낡은 건물과 줄어든 상권 속에서 뒤처지고 있다. 교통의 중심에 살면서도 의료, 일자리, 문화 인프라 어디 하나 가까이에서 누리기 어렵다. 삶은 중심에 있으나, 행정은 변두리에 방치된 것이다.


이제는 보여주기식 도시 정책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의 도시 설계를 시작해야 할 때다. 그 출발점은 ‘문화의 거리’를 다시 숨 쉬게 하는 일일 수 있다. 겉모습만 바꾸는 데 그치는 예산 집행에서 벗어나, 주민이 주도하는 돌봄과 문화 프로그램, 청년 예술인과 어르신이 함께하는 소모임, 일상에 꼭 필요한 생활 인프라를 촘촘히 연결하는 데 예산을 써야 한다. 근처 아파트 주민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 워킹맘·노인·1인 가구가 편하게 모이고 교류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세대 간 협업의 가능성이다. 청년 세대의 창의성과 디지털 감각, 기성세대의 경험과 지역에 대한 애정이 함께 어우러질 때 도시 재생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혁신의 기회가 된다. 문화 프로그램이나 마을 기록 활동, 지역 장인과 청년 창작자의 협업은 익산의 구도심을 되살리는 생명줄이 될 수 있다. 청년이 주도하고 어르신이 조력하는 방식이든, 반대로 어르신의 삶을 청년이 재해석하는 방식이든, 상호 존중과 협력이 깃든 관계는 도시의 온도를 높이고 지속 가능성을 키운다.


예술 동아리 유치도 하나의 방법이다. 청소년, 청년, 퇴직한 장년층이 함께하는 연극, 사진, 글쓰기, 음악, 서각 동호회 모임 등을 통해 공간은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이런 동아리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세대가 함께 배우고 나누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작지만 강한 공동체다. 구도심의 유휴 공간을 적극 활용하고, 활동이 거리로 확장될 수 있도록 돕는 행정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도심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중심이지만, 그 삶을 지탱할 행정과 정책은 그 자리를 비운 채 방치되고 있다. 도시는 결국 사람이 완성한다. 복지, 문화, 주거,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활 중심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멀리 있지 않다. “누구를 위해 정책을 만드는가.” 이 질문에 진심으로 답하는 순간, 익산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가 함께 도시의 진짜 미래를 그려갈 수 있다.


2025년 7월 소통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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