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가슴 먹먹함

by 김종운

올해는 설이 이렇게 왔다.

멀리 있는 지인이 설이라고 곶감을 보내왔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해 입안에 침이 고인다.


초등학교 시절 설 명절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설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통영에 가서 장을 봐오셨다.


그때만 해도 교회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집은 제사를 지냈는데 없는 살림에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이자 우리의 아버지 제우는 지내야 된다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웃 친척들에게서 돈을 빌려 생선이며 각종 나물 등등 제사에 쓰이는 물건들을 구입해 오셨다.


그중에서도 내 기억에 가장 남아있는 음식은 단연코 곶감이었다. 하얀 가루가 묻은 곶감은 달면서 감칠맛 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사 온 곶감은 최 저급의 상품이었다. 그런데도 제사를 지내고 나면 형님들의 눈치에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형님들이 먼저 찜하면 우리들은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형님들의 횡포를 알기에 몰래 숨겨 두고는 형님들 없을 때 우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매년 설 명절만 다가오면 곶감 먹을 생각에 몇 날 며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 번은 설인데도 곶감이 없었다. 난 투정을 부리며 왜 곶감이 없냐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시장에 곶감 장수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 해도 그랬다. 그다음 해는 비가 와서 곶감 장수가 다 떠내려갔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절망적이고 서운한지 곶감 장수들에게 원망을 돌렸다. 그때 내가 받은 상처보다는 어린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돈이 없어 사 오지 못했다,라는 말은 못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 자식들을 설득시켜야 했던 현실이 참으로 참혹했을 것이다. 오늘은 설 앞날이다.


나와 아내는 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두 딸은 집에서 설음식을 한다고 카톡으로 실시간 상황 보고를 보낸다. 음식들이 제법 그럴싸하게 먹음직해 보인다.


이제는 자기들이 알아서 아내를 대신해 나물, 육전, 새우튀김, 소고기 갈비 등의 음식들을 맛깔스럽게 만들어 낸다. 대견스럽고 믿음과 신뢰가 가는 자식들로 성장해 준 딸들에게 고마움과 감사함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가게에 가지고 와 먹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어머니가 살아계셔 이런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온갖 고생만 다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어머니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살아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한 시대를 가늠케 할 만큼 강렬한 존재가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어머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지만 내 어머니만큼 위대한 존재는 없는 거 같다.


좋은 것을 먹고 아름다운 장면을 대하면서 역설적으로 처연한 설움을 느끼는 가슴 먹먹함...

설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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