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젊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by 김종운

어제는 날씨가 좋아 산에 올랐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 도, 쌀랑쌀랑 부는 바람도, 초록의 푸르름과 더불어 기분이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환희였다.

작은 섬들 넘어 보이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까마득한 옛날 옛적 어릴 때 생각들이 떠올랐다.


햇살이 소나기처럼 내리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빨래를 하셨다.

겨울에 입었던 옷가지와 이불들을 모두 끄집어내 일 년에 행사라도 치루 듯 손으로 일일이 빨래를 해 빨래 줄에 촘촘히 너셨다.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워 샘에서 물을 길어 나르기도 하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동동 걷고는 고무대야 통에 들어가 노래를 불러가며 밟아서 땟물을 빼곤 했다.


자식들은 많았지만 형님들은 외지로 나가고, 누나들은 시집가고 없고, 하나 있는 여동생은 어리고 어머니를 도울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나마 어머니라도 같이 하는 날은 다행이다. 밭으로, 바다로 일하러 나가시는 날에는 내 몫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세탁기도 없었고, 슈퍼타이 같은 세제는 꿈도 꿀 수 없던 시대였다. 오로지 사분이라는 빨래 비누가 전부였다. 그것도 찬물에는 거품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한 번은 형님들이 배 갔다가 두어 달 만에 오면서 그동안 입었던 빨래 감들을 가지고 오셨다.

어머니는 일하러 나가시면서 빨래를 부탁했다. 담긴 옷들이 보기만 해도 너무 많았다. 말이 부탁이지 꼭 했어야 했다.

옷은 물을 먹어 무겁고, 비누를 아무리 문질러도 거품은 안 나오고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린 나이에 너무 버거웠다. 왜 내가 이런 일를 해야 하지. 다른 애들처럼 놀고 싶고, 어머니와 누나가 빨래하고 집안 청소하는 집의 애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어머니는 넷째 형님과 내가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딸 둘은 다 시집가고 혼자의 힘으로 나머지 자식들과 더불어 살아내야 했기에 얼마나 힘들어 그런 말씀을 했을까? 지금이야 이해가 간다.

가난하고 어릴 때 힘든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나 영사실에서 필름이 돌아가듯 촤르르륵 스쳐 지나간다.

그때는 이해 못 했고 보이지도 않았던 풍경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위대하고 대단한 어머니!! 어린 나이에는 내가 제일 힘들었고 중요했다.


두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어머니의 마음과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겠다. 그땐 왜 어머니의 소중함과 가치를 몰랐을까? 소중한 것일수록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나도 어머니와 같은 나이가 되어간다. 과연 내 자식들에게 이런 감정과 느낌을 얘기하면 알 수가 있을까? 저들도 내 나이가 되어야 알겠지.. 강요한다고 가르친다고 깨닫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가슴으로, 몸으로 느끼며 깨달음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부모의 도리겠지.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산 밑 어느 집 마당 빨래 줄에 걸린 빨래들이 한줄기 바람에 춤을 추듯 나붓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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