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젓&어머니

소중함

by 김종운

저녁 밥상 한가운데 굴젓이 놓였다. 겨울이 시작되고 봄이 오기 전까지 고향 바닷가에는 굴이 지천이다. 흔히 돌 굴이라고 하는데 어민들이 양식하는 굴이 아니라, 돌이나 바위에 붙어 자생하는 자연산 굴이다. 크기가 양식한 굴보다 작지만 맛과 영양이 풍부해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기에는 충분하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인 내가 좋아하는 굴젓을 만들기 위해 매서운 바람을 맞아가며 굴을 따 오셨다. 날씨도 추운 데다가 바람까지 불면 손도 시릴뿐 아니라, 내려다보고 굴을 따면 눈물이 비 오듯 흐르는 모습이 안쓰러워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내 살아있을 때니 해 주지, 죽고 나면 해 주고 싶어도 못 해 준다.”라며 기어코 바닷가로 가신다.

그렇게 딴 굴을 여러 번 물로 씻어내고 숟가락으로 긁은 무를 같이 항아리에 담는다. 연탄불이 있는 부뚜막에 하루 정도 익힌 후 밥상에 한 접시 내면 그 맛이 천하제일이었다. 따뜻한 밥에 굴젓을 올릴 때부터 군침이 돌아 걷잡을 수 없이 입맛이 돈다. 굴젓 하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을 정도로 금방 밥 한 그릇을 비운다.


어머니께 이런 맛을 내는 비법은 뭐냐고 여쭌 적이 있다. 어머니는 전부터 내어 온 맛이기 때문에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어머니만의 독특한 굴젓이 만들어지는 게 신기했다. 어느 날 굴젓을 만드는 과정을 관찰한 적 있다. 혹시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내가 직접 배워 만들어 먹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먼저 항아리에 굴과 무를 6대 4 정도의 비율로 넣고 연탄불이 있는 부뚜막에 하룻밤을 두셨다. 적당한 온도와 굴젓 항아리를 두는 시간이 어느 정도 맞아야 감칠맛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살펴보니 부뚜막 연탄불 열기에 의해 삭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숙성하는 동안 굴에 무의 시원한 맛이 배 새콤하고 달큼한 특유의 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뜨뜻한 부뚜막에서 너무 오래 방치를 하면 낭패를 보는데 너무 익어서 맛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굴젓 담그는 과정을 눈으로 익히며, 훗날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을 상상을 한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만든 굴젓 맛이 나올지 걱정도 되면서 말이다.


지금도 식당에 갔을 때 반찬으로 굴젓이 나오면 꼭 추가하여 먹는 습관이 있다. 굴젓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굴젓이 생각 나서다. 물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그 맛은 아니지만, 아들을 위해 찬바람을 맞으며 굴을 따시고, 정성스럽게 만드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더듬어 보고 추억함이다.

''나 죽고 나면 먹고 싶어도 못 먹는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뇌리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는다.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눈앞에 있기보다 등 뒤에 있듯,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별거 아니라고 했든 것, 당연하게 누렸든 것들이 이제는 추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을 뜨겁게 남아있는 장면들이 있기에 더욱 소중하다. 삶은 상실의 여정일 수밖에 없지만 그 상실의 슬픔 속에서 행복을 만날 수 있다니, 생은 밤낮없이 흘러가도 아름다운 이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매 년 이맘때가 되면 혀끝으로 전해지는 맛을 잊지 못해 언제나 그때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세월이 가고 시간이 지나면 입맛도 변하고 사라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니 이상하다. 깊은 여운이 감도는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잊으려 할수록 입 안 가득 생생하게 달라붙은 맛이다. 떼어 낼 수 없이 명치끝에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작지만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것들을 언뜻언뜻 만나니 가슴이 한없이 미어질 듯 사무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서걱서걱 거리는 그리움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사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굴젓을 기억하며 그 시절을 놓칠까 봐 꾹꾹 쓸어 담는다.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음을 알지만, 그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따스한 온기가 있고 힘이 생긴다. 어느덧 내 나이도 등산에 비유하면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나이 들어가는 중이고 어머니를 닮아가는 중이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인생은 이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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