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순채
산양식당은 언제나 손님들이 붐빈다. 앉을자리가 부족해 웨이팅(Waiting)을 해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요즘은 소문이 나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러 올 정도다. 맛깔스러운 쇠고기 수육과 국밥, 통영 전통 비빔밥은 인기 만점으로 평가받는다. 한번 먹어본 사람은 다시 안 오고는 못 배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할 수 있다. 잘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유지해 왔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당연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맛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을 대하는 마음 씀씀이나 태도에서 벌써 다른 식당과는 다르다.
언젠가 글에서 언급했듯이 내 전부를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가 있다고 했었다. 아픔을 안고 있었지만 전혀 표 내지 않고 살아낸 친구다.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언저리쯤 되었을까. 누나 집에서 하숙을 했지만 매형이라는 사람은 밤만 되면 술이라는 힘을 빌려 누나를 구박하고 학대하는 광경들이 싫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술로 인해 눈물로 보낸 날이 헤아릴 수없이 많았건만 중학교를 왔어도 그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쌩쌩 거리는 바람을 맞아가며 향한 곳이 교회였다. 교회 문을 열고 앉아 기도를 드리는 순간 숨길 수 없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눈을 떴을 때 한 친구가 무슨 큰 잘못을 한 아이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유리창처럼 깨진 은밀한 내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내 은밀한 비밀 밖에 서 있던 친구는 날 보고 자기 집에 가서 자고 가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내 집 같이 친구 집을 드나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도 큰 어머니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시절을 지나 얄밉도록 그런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잊어버렸다. 어제는 축축한 기억이 추억이 되어 찾아왔다. 다름이 아니라 그때 자기 집에 가서 자고 가라고 손을 내민 친구의 큰 어머니 가게에 일이 있어 찾았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어느새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멀리와 있음을 느꼈다. 매번 뵙고 인사를 드리곤 했지만 어제는 더욱 그렇게 보였다. 잠시 시간이 주어져 지난날 살아온 애환을 들었다. 그때는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 앞만 보고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친구도 내가 바라본 시선보다 더 큰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친구의 큰 어머니는 국밥집을 하셨다. 철없고 눈치 없는 친구는 허기지고 먹성 좋은 녀석들을 데리고 가는 날이면 스페셜 국밥을 내어 주셨다. 눈치를 볼까 봐 오히려 더 친근감 있고 다정하게 대해 주셨다. 누군가에게 품을 만들어 주는 일은 싶지 않다. 이윤을 생각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넉넉한 마음으로 내어 준 국밥은 나에게는 생명의 양식이었다. 큰 어머니께서는 그때가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 때였고 아픈 시기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따뜻하게 품어주고 내어준 덕분으로, 저 역시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내 기억에 오래도록 잊지 못할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