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의 꽃 집배원의 하루

by 김종운

제46회 근로자 문학제 수필 부분 동상 입상한 저의 글입니다.

부족하지만 읽어봐 주세요.


아침 7시 50분이면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선다. 조용한 사무실에 불을 켜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집배원들에게 제공되는 제복이다. 윗도리와 아랫도리는 이상이 없는지, 명찰은 똑바로 붙어 있는지, 혹시 어제 일하면서 때는 묻지 않았는지 확인을 한다. 최 일선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집배원은 움직이는 우체국이기 때문이다. 신발을 갈아 신고는 업무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들어간다. 정신을 맑게 할 커피 한잔을 탄 후 하루를 시작할 마음을 가다듬는다. 오토바이 키와 주유카드를 챙겨 PDA를 열어 출근 등록을 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결근이 되기 때문에 월급을 못 받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8시 05분 정도 된다.

그때부터 동료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한다. 아침 인사를 반갑게 나누며, 당직실에서 올라온 석간신문과 어제 배달하고 남은 등기 우편물을 PDA로 등록을 한 후, 특수실에 들어가 보통 등기를 팀별로 분류를 한다. 분류된 등기를 PDA로 배달할 순서대로 등록을 해 놓는다. 대략 30분 정도 소요가 된다. 이것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될 시간이면 집중국에서 출발한 익일 특급등기와 택배, 각종 일간신문이 도착해서 올라온다. 다시 팀별로 구분하면 9시 정도 된다. 아침 시간 오십여 명은 역할 분담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국하기 위해 자기 일에 모두가 열심이다. 그리고 보니 난 여기 통영 우체국에서 일 한지 벌써 25년이 넘어간다. 주 업무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별정직 집배원이다. 들어올 때에는 막내였지만 이제는‘형님’, 혹은‘주무관님’이라고 불린다. 몇몇을 빼고는 대부분 후배들이다.

등기 가방에 익일 특급 등기와 픽업 택배용지를 챙겨 넣고는 지하로 내려와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싣는다. 혹시 국제 특급, 안신택배 등이 있어 우편물을 적재함에 담기가 부족하면 줄을 이용해 오토바이 뒤에다 매단다. 떨어질 우려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잃어버리면 모든 책임은 오롯이 집배원이 져야 한다. 모든 우편물이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그것은 고가인 데다 고객들로부터 민원처리 하기가 피곤하고 고달프다. 민원이 발생하면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 1주일 정도는 후유증에 시달린다. 빨리 잊고 털어 버리는 게 상책이지만 사람인지라 잘 안 된다. 9시 10분 정도에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아무런 사고도 민원도 없이, 귀국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우체국 문을 나선다. 적재함에 실린 모든 우편물 배달이 끝나야 귀국한다. 먼저 배달할 코스는 아파트다. 이곳이 등기, 통상 우편물이 제일 많은 곳이다. 세대수가 많다 보니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11시 전에는 끝내야 다음 코스에서 점심시간을 맞출 수가 있다. 얼굴은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되고 몸에서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쉬고 나면 오후에는 더 뛰어야 된다는 부담감에 생각을 접는다.

점심은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 마을 정자 같은 곳에서 자리를 펴고 먹는데 이곳이 나의 유일한 점심을 해결하는 곳이자 휴식처다. 밥을 먹는 시간은 10분이면 충분하다. 대충 씹어 삼키는 거 같은데 소화가 되는 게 이상하다. 이때까지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몸의 소화 기능이 알아서 해결해 주는 느낌이다. 때론 업무 스트레스로 소화가 안 돼 힘들 때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무난하게 괜찮다.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이 1시간씩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어지지만, 현실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근로기준법은 어쩌면 우리에겐 먼 나라 이야기 일수 있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공무원 집배원들과 동일 노동을 하고 동일 임금을 받는데도 우리는 공무원이 아니다. 진급도 6급까지 제한된다. 이것도 하늘의 별따기, 퇴직 때까지 진급하고 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공무원과 형평성의 차이로 자괴감이 수도 없이 든다. 이러다 보니 자아는 쪼그라들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줄어들고 자신에 대한 인식의 틀마저 흔들리게 된다. 젊은이들은 별정국 집배원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겼다. 신규 자가 없으니 연금까지 문제가 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부당함에 전국적인 모임을 만들어 별정직 집배원이 처한 모순점에 대해 알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 외쳤던 적도 있었다. 경제적 논리에 매몰돼 버린 별정직 집배원 노동자들, 인간의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유를 침묵할 수가 없었다. 이것을 해결해 줄 정치는 선거 때만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우리의 주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제도적, 법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바꾸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믿는다. 선거철이 지나 돌아오는 건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민생이나 비정규직 법안에 늘 밀린다. 별정직 집배원도 공무원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 “이재명 대통령께서 표방하는 대한민국이 잘 살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답게” 별정국 집배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여기에 포함되고 싶다. 이것을 바라는 게 무리한 요구는 아닐 것이다.

오후배달이 시작된다. 이때도 마찬가지다. 오토바이에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속도를 낸다. ‘이러다 쓰러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다음 코스에 도착하면 오후 2시가 조금 넘는다. 그 코스부터 마지막 코스까지 다 하면 오후 3시 정도가 된다. 마지막은 작은 아파트에 들어간다. 통상과 등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20분 정도 걸린다. 여기가 끝나면 하루 배달할 물량을 다 한 셈이다. 만약 동료 1명이 휴가나 결근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결원자의 자리를 팀원들이 나누어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더 걸린다. 얼마 전에도 동료 한 명이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팀원들이 몇 달을 고생했다. 집배원 대부분이 파김치가 되어 오늘도 무사하게 보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귀국을 한다. 재배달, 보관, 반송 등기 우편물이 몇 통인지, 오토바이 키로 수와 주유량은 얼마나 넣었는지, 그날 배달한 우편물 수량을 우편물류 시스템에 일일이 기록을 한다. 이것을 남기지 않으면 일을 하고도 안 한 게 되고 나중에 시스템에서 바로 잡으려고 하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옆자리에 있는 영훈이가 지치고 피곤한 몸을 깨울 믹스커피 한잔을 내민다. 둘이서 노동요를 들으며 다음날 배달할 일반 통상 우편물을 구분한다. 구분하면서 오늘 일은 어땠는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서로에게 묻는다. “영훈아, 나 오늘 부딪쳐 피멍이 들었다”며 다친 곳을 보여준다, 영훈이는 “형님, 저도 오늘 여기 다쳤어요.”하며 상처를 내민다. 반대편에 있는 진수는 오래전 다리 수술을 했다. 다리를 절면서 일을 한지 꽤 오래됐는데도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상처들은 계속 생기고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우편물은 주소만 봐도 손이 자동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처럼 초스피드로 움직인다. 이렇게 구분된 우편물은 광주리에 차곡차곡 쌓는다. 구분을 마치고 탈의실에 옷을 갈아입으며 5시 30분, 퇴근 등록하면 이렇게 나의 하루 집배 노동은 끝이 난다.

밀도 있게 하루를 보낸 거 같은데 돌아보면 남들도 나처럼 사는지 의문이 생기고, 이리 사는 게 맞는지 회의도 들기도 한다. 지금 이 나이에 갈 데도 없으니 이만한 것도 다행이라, 감사하게 받아들이지만 선택지가 이거밖에 없어 떠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싶은 생각도 든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 어쩌다 난 이곳에 오랜 기간 정박해 있는지, 나와 다른 시간대를 사는 이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 내린 돛을 올려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스치지만 막상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지만, 기를 쓰고 앞만 보고 달리는 기관차와 같은 일상이라, 여유도 재미도 없고 비루해진다는 느낌이다. 지금은 택배도 없고 업무량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쁘다.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집배 업무는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고,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지 모른다. 조심하고 주의한다고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직업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년에 20명 이상의 집배원이 과로사나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집배원은 우체국의 꽃이다. 꽃이 지쳐 힘들어하고 있다. 우리를 우정 가족이라 말한다. 각종 요금 고지서가 폭주하고 직원 유고라도 있는 날이면 화장실도 못 가고 점심도 빵과 우유로 해결한다. 너무 바쁘면 굶는 날도 있다. 외부 고객만 고객이 아니라, 내부 고객도 고객이다. 내부 고객이 지치고 힘들면 서비스는 무너진다. 경제 논리가 모든 걸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공공서비스를 담당하는 곳조차 경제적인 논리를 적용한다는 게 맞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런 사정인데도 인원이 남아돈다는 논리는 어디에서 오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두려움과 낯섦을 안고 엊그제 이 일을 시작한 것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나의 청춘을 이곳에서 보냈다. 지난 시간 돌이켜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12톤 차와 부딪쳐 죽을 고비도 두 번 정도 있었고, 빗길에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몇 주를 입원도 했었다. 여름에는 비바람과 더위로, 겨울에는 강추위와 싸워 견뎌야 했다. 가정보다는 직장이 먼저였고, 배달이 우선이었다. 아내가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아도 병원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사고로 죽어가는 어르신도 살린 적도 있었고, 몇 백만 원이 든 지갑을 찾아 준 적도 여럿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추천해 신문에도 실리고 시장님 상도 받는 뜻깊은 일도 있었다. 내가 배달하는 지역이 농촌 지역이라 아직까지 인심이 후한 편이다. 편지 한 통에도 감사하고 고맙다는 친절한 말로 위로와 격려해 주시는 고객들이 계신다. 뜨거운 여름이면 시원한 냉수로, 차가운 겨울이면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래도 이 현장을 지탱해 주는 힘이다. 만나는 고객님들 덕분에 힘들 때마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또 하루를 살아낸다. 이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이제까지 무탈하게 오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이제 퇴직을 생각해 봐야 할 나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우체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랑한다. 앞으로 얼마만큼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아있는 후배들만큼은 더 불안하고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은 환경에서 근무하는 모습들을 보고 싶다. 그것이 간절히 바라는 나의 진심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중국 여행 3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