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좋은 사람이 되고 언제 나쁜 사람이 되는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 됐다. 나쁜 사람이 될 때는 글을 쓰고 싶은데 방해를 받을 때면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누군가가 옆에서 조금만 건드려도 짜증이 난다. 글에 집중해야 하는데 생각하는 방향대로 쓰여 지지 않아 신경질적인 사람이 된다. 좋은 사람이 될 때는 당연히 하고픈 일들이 할 때다. 그중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쓸 때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거 같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아 만족도가 높다.
한 줄 한 줄 채워지는 글들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고 느끼려고 살핀다. 심사숙고의 시간 동안 평화를 찾은 느낌이 든다.
어릴 때 형님들로부터 “하지 마라”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으며 살았다. "해봐라" "할 수 있다" 이런 말은 별로 듣지를 못했다. 형님들이 필요하고 요구하는 것들만이 허락된 범위였다. 뭔가를 하고자 할 때는 형님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만약 어기는 날에는 그날 저녁은 회초리 세례를 받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대들고 안 하고 못 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명령이었다. 너무 무서웠고 겁에 질려 살았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인격이 형성될 때 제대로 된 환경과 교육을 받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의문을 가져본 때가 얼마 안 됐다. 마음껏 해봐라, 실패해도 괜찮아, 실패가 나중에는 성공할 수 있는 계가가 된다. 용기를 주고 힘을 실어주었다면 글 쓰고, 책 내고 강의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세월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멀리 와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이 비참하고 비극적인 경험과 과거의 환경들 앞에 나를 다시금 만나게 되니 마음에 턱 걸린다. 그렇다고 지금에야 처량맞게 신세한탄이나 하면서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삶에 굴곡이 없는 사람이 없고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나라는 정체를 깨달았으니 인생 후반부를 근사하게 살아내야 울림이 더 깊게 고일 것이다. 과거의 고통을 통해서 미래를 살아가는데 열쇠가 되는 통로이길 바란다.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거칠고 모진 풍파를 겪은 경험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었고 글을 낳았다. 어린 시절 친절하지 않았던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글이라는 세계를 통해 길을 내고 지혜와 씨름하며 다른 세상을 보게 하고 다른 얘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글이라는 세계에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미래가 불안해도 괜찮다. 불완전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장 시키는 실험장으로 만들면 된다.
삶은 피고 지는 꽃과 같다. 꽃이 언제 피었나 눈길 주기도 전에 지듯. 필 땐 질 때를 알고 피지는 않지만 사는 동안 꽃이고 싶다. 생의 자리마다 저마다 속 사정이 있다. 숨통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글쓰기의 향기만큼은 신음하며 지켜낼 용기를 가져본다. 그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푸른 싹으로 자라 무덤 속에 나 있었다는 걸 선물로 여기면 다행이라 받아들인다. 들리나요. 버텨온 청춘 쓰러지지 않고 지켜낸 소리를, 맨살을 파고드는 모진 세월에도 눈부신 꽃이었다는 사실을 내 안에 거친 숨 고르고 옹골찬 다짐을 항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