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다."
언젠간 말했듯 두 딸아이를 키우는 몫은 아내의 일이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가장의 역할이라 여기며 경제적인 책임을 다하며 끝이라고 생각했다. 가사와 아이들의 양육 모든 부분들을 아내가 감당했다. 물론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상의를 했지만 늘 아내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라 믿고 받아 들었다. 두 딸들은 평범하지만 아주 무탈하면서 반듯하게 잘 성장해 주었다. 내가 한 일은 초, 중, 고 학생 때 담임선생님께 1년 동안 잘 부탁한다는 전화 1통이 전부였다. 교사를 하는 친구가 아버지가 전화를 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께 전화가 온 학생은 담임선생님은 꼭 기억한다고 말해 주었다.
아내는 늘 아이들에게 자율성과 독립성을 요구했다. 어느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자기들이 결정하게 만들었다. 대화를 통해 그들을 깊이 이해하고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살아온 나에게도 효과가 있었는지 참 많이 변해간다는 느낌을 갖는다. 한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누군가의 올바른 삶을 이어간다는 사실이 애잔한 마음이 든다. 글 쓰는 일은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근데 올바른 교육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아내를 통해서 배운다.
둘째 딸 대학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에 다녀왔다. 예전 같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직장과 일이 먼저였고 삶의 우선순위였다. 아내가 아무리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해도 먼 현실로 느껴져 귀에 와닿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애들 유치원부터 졸업식에 참석해 축하해 준 적이 없었다. 늘 가족은 뒷전이었다. 그것이 가족을 위하는 일이라 모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강요했다. 평일에 쉬는 것이 사치라고 몸에 밴 사람이었다.
이번에 큰 딸이 무조건 같이 가야 한다며 가족을 위해서 한 번만 휴가를 내라고 부탁을 했다. 큰 딸애 졸업식도 가지 않았는데 작은 애 졸업식에 간다면 서운해하지 않을까 고민도 되었다. 다행히 큰 딸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아빠 이제 마지막 졸업입니다. 다시는 기회는 없습니다. 동생 졸업식에 참석해 축하해 줍시다. 참 대견스럽게 나쁜 아빠를 설득시켰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감정들이 사뭇 예전과 많이 달랐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세포를 바늘로 콕콕 찌르며 일깨우는 자극제였다.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살아왔지? 가족을 사랑하는 법을 몰라 뒤척이며 살아온 삶에 조금이나마 선택의 중요성을 조심스럽게 되찾는 순간이었다. 돈과 일이 어떻게 가족과 바꿀 수 있을까 천만 번을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나에게 어색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데려다 놓는다, 세월이 지난 후 되돌아보면 가족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천국이었다고 고백할 것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