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어느 멋진 밤에

나의 사랑에게 드리는 고백

by 박철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

그러나 봄을 소망할 수 있는 토요일 오후.

당신과 이른 저녁을 먹고 숲으로 가득한 카페로 갔지요.

구수한 과자 한 봉지와 커피 두 잔을 받아 들고 늘 우리가 앉는 자리.

로즈메리를 한 움큼 떼어 향기를 맡으며 나는 웃었지요.

얼마만인가요.

커피가 구수한 날이.

지난 두어 달, 하루 서너 번씩 약을 한 움큼씩 삼키느라 음식을 맛있게 먹지 못했지요.

어떤 날은 저녁밥을 소화하지 못해 새벽에 혼자 깨어나 당신이 깰까 봐

어두운 거실에 홀로 한참을 서성여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아픈 건 참을 수 있지만 당신이 걱정할까 봐 그게 두려웠습니다.

나는 늘 당신이 나보다 더 먼저 가시기를 바랐습니다.

여린 당신이 나 없이 외로울까 봐.

그런데 당신은 내가 먼저 가야 한다고 말했지요.

당신 없는 나를 누가 챙겨주냐고.

남자 없는 여자는 티가 나지 않지만

여자 없는 남자는 티가 난다고.

하나님이 나를 먼저 불러 주시기를.


당신은 말했지요.

나보다 딱 1주일만 더 살다 가겠다고.

혼자 오래 살아 뭐 하냐며.


아무런 일정도 없이 여유로운 토요일 밤.

채 읽지 못한 700쪽이 넘는 니체의 책을 펴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틀어 놓고

서재에 앉아 문득 당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당신을 보내주셔서.


당신은 엄마 같은 여자입니다.

내 손가락을 깨물며 가슴깊이 안아주어서.

당신은 수녀 같은 여자입니다.

누구와도 다투거나 비난을 하지 않는 당신은.

당신은 테레사 같은 여자입니다.

가족에게든 남에게든 나눠주기에 바쁜 당신은.

당신은 들국화 같은 여자입니다.

문득문득 돌아보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웃고 있는.

당신은 맹추 같은 여자입니다.

나의 잘못과 투정을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이 없었다면

이 긴 겨울밤을 어이 홀로 지냈을 까요.

당신이 없었다면

내 과거의 상처들을 누가 위로해 주었을 까요.

당신이 없었다면

누가 내 귀를 아프지 않게 파 주었을 까요.

당신이 없었다면

절뚝거리며 걷던 나를 누가 곧게 걸어가게 했을 까요.

당신이 없었다면

누가 내 속옷이며 양말들을 늘 그 자리에 있게 했을 까요.


당신이 없었다면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늘 술에 취해 밤길에 구겨진 채 전단지처럼 나뒹굴었을 것입니다.


돌아보니 당신은

비 오는 날에는 함께 비를 맞았고

돌아보니 당신은

배고픈 날에는 나와 함께 굶었으며

돌아보니 당신은

내가 빛나던 날에조차 그늘에 서있었군요.

고맙다는 말보다는 미안합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미안합니다.

큰돈은 못 벌어줘도 맘고생만은 안 시킨다던 나의 약속을 나는 지키며 살았나요?

내 이기적인 가시가 당신의 심장을 후비고 들어가 아팠던 적도 있나요?



내 다이어리가 마지막 페이지가 되는 날.

내 곁에서 떨리는 손을 잡아줄 유일한 사람.

“잘 가요” 하며 내 볼에 입을 맞춰줄 유일한 사람.

내 볼을 어루만지며 가장 오래 울어줄 유일한 사람.

정말 천국이 있는 거라면

내가 먼저 가 우리 집을 지어 놓을게.

작은 마당에는 목련 나무를 심고

울타리 주위로 수선화를 심을게.

기다리던 당신이 오면

후리지아 한다발을 당신께 드릴게.

나무에 그네를 메어 당신을 태워 드릴게.

지난 30년,

나의 늦은 퇴근에 식어버린 국을 몇번이고 데우던 당신.

그래요.

이제는 내가 당신을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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