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늘 바빴습니다.
결혼하고 30년, 시집을 와보니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어렸을 때는 훨씬 더 형편이 좋지 않아 남의 집 셋방살이로 자주 이사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평생의 첫 번째 소원이 자기 집을 가져 보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아끼려고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나가서 외식 한번 한 적이 없었습니다.
주야간 2교대 근무를 하는 공장에 근무하던 남편은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돈만 더 준다면 마다하지 않고 특근과 야근을 밥먹 듯했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쓰러지듯 잠이 들었고 그런 남편이 안타까워 시집살이를 하는 와중에도 남편 퇴근시간이면 늘 마을 어귀까지 나가 기다리곤 했습니다.
아내인 내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아껴주는 남편 때문에 가난과 시집살이의 어려움쯤은 참을 수 있었습니다.
첫아이를 낳고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지방으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분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을 떠나 경기도 인근에서 셋방살이를 했습니다.
단돈 천만 원이 없어 그마저도 빚을 얻어 시작했습니다.
가진 것이 너무나 없었지만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덧 임대아파트지만 내 집도 생겼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작지만 자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셋째가 태어날 즈음 드디어 임대가 아닌 우리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사 간 첫날 남편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너무 좋아서.
결혼하고 15년 만에 우리 집에서 누울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나는 너무 바빠 죽겠는데 아내가 매일같이 잔소리를 했습니다.
“여보, 당신 건강검진받은 지 5년도 더 됐어. 나도 그렇고 우리 한번 검사받자.”
“어디가 아프지도 않은데 내년에 하지.”
“무슨 소리야, 작년에도 내년이라고 했어.”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일주일 후 오전에 아내와 동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내와 나는 별 다른 생각 없이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내 분 혈액 검사결과 염증수치가 너무 높아요, 복부 초음파결과도 안 좋으니 큰 병원에 가서 추가 검사를 받으세요.”
며칠 후 소견서를 들고 대학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 후 여러 검사를 마친 어느 날 아내와 최종 결과를 보기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염증수치가 너무 높아요. 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내와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더 이상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막 나서는데 뒤에서 담당 의사가 말했습니다.
“아내 분은 밖에서 잠시 기다리시고 남편 보호자님은 잠시 들어오세요.”
긴장 한채 의자에 앉았습니다.
“아내 분 직장암입니다. 4기예요.”
“그럼 어떻게...”
“당장 수술을 잡아야 해요. 수술로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현재로서는 그 방법뿐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마주 않았습니다.
“여보, 당신 수술해야 된대.”
“수술?”
“응, 걱정 마 요즘 의술이 좋아져서 암도 잘 고친다잖아.”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하고 수술당일 의사가 병실로 왔습니다.
“금식하고 있죠? 수술은 5시간 정도 걸려요.”
“예...”
아내를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수술실 앞 복도를 하염없이 서성거렸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시간도 안 되어 수술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들이 아내가 누운 침대를 밀고 나왔습니다.
나를 향해 걸어온 의사가 말했습니다.
“배를 열어보니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수술이 불가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요?”
“길면 두 달 정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수술실에서 병실로 돌아온 아내가 마취에서 깨어나 물었습니다.
“여보,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
“...”
“어 수술이 일찍 잘 끝났어.”
퇴원을 하고 며칠 후 나는 결국 아내와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아내는 거의 음식을 먹지 못했고 몸무게는 이미 30kg까지 내려갔습니다.
며칠 후 퇴근하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제주도 가고 싶다고 했지 우리 제주도 가자.”
그 후 아이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제주 바닷가 바로 앞에 월세방을 두 달 빌렸습니다.
막내가 고3이라 미안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주도에 내려온 후 아내는 날이 갈수록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바닷가 산책로를 걷고 아내가 좋아하는 해산물로 상을 차려 먹었습니다.
해가 지는 바닷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아내는 처녀 때처럼 좋아했습니다.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던 아내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여보, 고마워. 너무 행복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진작에 왔어야 했는데 미안해."
두 달이 다 가도록 아내는 큰 이상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밥도 잘 먹고 어둡던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석 달, 넉 달이 다 가도록 암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아내의 몸무게는 40kg까지 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집 계약기간을 1년으로 연장했습니다.
“여보, 우리 교회 갈까?”
아내는 모태 신앙이었지만 결혼하고는 거의 교회를 잘 가지 못했습니다.
내가 종교를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먹고살다 보니 아내 역시 그랬습니다.
“당신 교회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치, 근데 시간 있으니 내일 일요일이니까 저기 보이는 바닷가 교회 가보자.”
“그래”
정면에 커다란 십자가가 걸린 예배당 안에는 아침 햇살이 커다랗고 긴 창문을 통해 신비스럽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찬송가를 따라 부르던 아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날이 갈수록 아내의 상태는 좋아져 갔습니다.
아내와 나는 모두 놀랐습니다.
“여보, 당신 나보다 밥을 더 먹으면 어떡해. 그러다 돼지 된다.”
“막 뗑기네. 돼지 되면 되는 거지 뭐.”
아내는 젊을 때처럼 혈색이 살아나고 피부도 고와졌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 검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특별히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깊은 밤, 파도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아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아무도 없는 달빛만 반짝이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았습니다.
그러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 정말 죄송하고 염치없는 부탁인데요, 우리 아내 좀 살려 주세요. 아시잖아요. 착한 사람이에요. 죄가 없어요. 남과 다툴 줄도 모르고 콩나물 값도 못 깎는 여자예요.
죽을 사람 몇 달씩이나 살려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한데요 기왕 살리시는 거 병 좀 고쳐주세요. 그러면 평생 교회 잘 나갈게요.”
제주살이가 길어지면서 일주일에 이틀은 서울로 올라가 회사 일을 돌보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무리 직원들이 잘한다고는 해도 사장이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여보 갔다 올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내 걱정 말고 잘 다녀와.”
그렇게 일 년이 다되어 가던 어느 날.
그날도 보통 때처럼 회사일을 마치고 제주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대문 앞에 나와 나를 기다리던 아내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여보, 나왔어.”
집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여보, 여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에는 아내가 없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코에 호흡기를 꽂은 채 응급실 침대에 아내가 누워있었습니다.
내가 다가가자 아내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던 아내가 뭔가 이야기를 헀습니다.
“뭐라고...?”
아내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여보..., 지난 1년... 내 평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고마워요. 이제 아무 미련이 없어요...”
아내가 들어있는 작은 도자기를 가슴에 품고 서울행 비행기에 앉았습니다.
비행기 차창 너머로 지난 1년의 추억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제주 바다 위로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내를 꼭 안고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여보, 이제 집에 가자.”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습니다.
“일어나! 일아나라고!”
큰 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을 똥그랗게 뜬 아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피곤하면 들어가서자, 소파에서 졸지 말고.”
텔레비전에서는 연실 트로트 노래가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놀란 표장으로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회덮밥 먹고 싶다고 했지?”
“응.”
“지금 내가 시켜줄게.”
“지금 10시가 다 됐어, 이 밤에 어디서 시켜. 나중에 사줘”
“아니야 내가 나갔다 올게.”
시내까지 나가서 포장을 해온 내가 집에 들어서며 말했습니다.
“여보 내일 교회 가자”
“웬일이야 갑자기?”
“응 약속을 한 게 있거든.”
“무슨 약속?”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