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아세요?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1862~1949)가 1908년에 창작한 6막 12장 희곡[파랑새]라는 작품은 행복을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로 매우 유명한 작품이죠.
초라한 오두막집에 사는 남매 틸틸과 미틸에게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밤 요술쟁이 할머니가 찾아와요.
할머니는 자신의 아픈 딸을 위해 남매에게 파랑새를 찾아 달라고 부탁하죠.
남매는 요술 모자와 말하는 고양이, 말하는 개와 빛의 요정과 함께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이야기예요.
숫한 죽음과 위험, 공포의 고비와 역경을 견디며 거의 1년 동안 파랑새를 찾아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하죠.
그런데 모험은 단 하룻밤 동안의 꿈이었고, 문득 자기들이 기르던 비둘기가 바로 그 파랑새였음을 깨닫게 돼요.
마지막에 할머니의 아픈 딸에게 파랑새를 넘겨주지만 그 새마저 날아가 버려요.
연극의 끝에 틸틸은 무대 중앙으로 나와 관객을 향해 "누구든 그 새를 보면 우리에게 돌려주시겠어요? 우리는 그 새가 꼭 필요해요.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막이 내립니다.
최 진실이라는 여배우를 기억하시나요?
대한민국 사람 중 예전에 최 진실 씨 드라마 한번 안 본 사람이 없었죠.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평가받던 그녀는 2008년 자살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합니다.
그녀의 나이 마흔이었죠.
그 당시 매스컴은 “우울증”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의 자살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설들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악플과 관련한 원인이 가장 커요.
그 당시 최진실 씨는 악플과 사실이 아닌 일들로 오해를 받으며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특히 4명이 최 진실 씨에게 심한 악플을 달았는데 최 진실 씨는 자살 전날 그중 한 악풀러와 4시간 가까이 전화 통화로 다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많은 재산과 인기, 연예계 최고의 인맥을 자랑하던 그녀, 전 국민의 연인이라고 말할 만큼의 사랑을 받던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단 4명의 악풀러였어요.
저의 이야기를 좀 해드리고 싶어요.
어느 날 80이 조금 넘은 제 아버지의 암 진단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늘 건강하셔서 100세까지도 넉넉히 사실 줄 알았던 아버지가 암, 그것도 이미 4기를 지나 온몸에 전이되었다는 소식은 아버지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외아들인 저에게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어요.
누나와 여동생이 있었지만 아들로서 느끼는 충격은 전혀 다른 것이었어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며 서서히 무너져가는 아버지를 보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힘들더라고요.
죽음이라는 걸 생각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암”에 관한 생각들로 가득했죠.
몸은 일터에 있어도 온종일 인터넷으로 암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는 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요.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큰 소리를 치며 조울증 환자처럼 감정이 시소를 타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사소한 의견 충돌이 일어났고 그 사소함이 내게 큰 상처로 다가왔고 감정싸움으로 이어졌어요.
우리 부부는 결혼 30여 년 동안 부부싸움은커녕 말다툼도 해본 기억이 없을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했죠.
나는 부부 스쿨의 강사로 많은 부부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상담을 해주며 청소년 상담 전문가로 많은 부모들과 청소년들과 상담을 하며 도움을 줬지만 정작 나 자신의 문제 앞에서는 처참하게 무너졌어요.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 나는 아내와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는 게 지옥이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아?”
“자살”
이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 안의 내가 아닌 또 다른 자아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처음으로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차라리 죽어. 그게 더 좋지 않을까?”
그러나 순간 또 다른 자아가 말했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죽긴 왜 죽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썩 꺼져.”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어요.
아버지의 암과 죽음은 내 삶에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짧게 슬퍼하고 길게 행복한 삶을 살자.
그날 이후 아내와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살죠.
다행히도 아버지의 건강은 회복되기 시작했고 암치료도 잘 진행되기 시작했어요.
우리 삶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지만 그 고통과 슬픔을 곱씹을 필요는 없어요.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지고 상처가 나고 딱지가 앉아요.
그런데 굳이 다 아물어가고 끝난 상처를 한없이 후벼 파며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가장 큰 피해자며 가장 비참하다고 단정 짓는 건 어쩌면 오만이에요.
제 주위에는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분들이 있어요.
근데 그분들이 얼마나 하루하루를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지 보면서 나의 상처와 고민들은 정말이지 “새발의 피”라는 생각이 들곤 하죠.
한 사업가가 있었어요.
잘 나가던 사업이 어느 날 부도가 나서 파산하고 말았어요.
화사 사무실을 정리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거실로 들어서는데 집안이 왁자지껄 했어요.
사업이 망했다는 걸 아는 가족들이 슬퍼하고 낙심해 있을 줄 알았는데 집안이 온통 무슨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어요.
아내는 식탁에 귀한 음식들을 가득 차리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즐거워하고 있었죠.
놀란 남편이 말했어요.
“여보 이게 다 붜야? 내가 파산 한걸 몰라? 무슨 돈으로...”
아내가 시크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리 와 앉아서 맛있게 먹기나 해요.”
좀 어리둥절하던 남편은 자리에 앉아 가족들과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웃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그 사업가는 재기해서 과거보다 더 큰 사업가로 성공했지요.
통계에 따르면 우리 삶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 30%,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30%, 나를 싫어하는 사람 30%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고 해요.
굳이 나를 싫어하는 30% 때문에 괴로울 필요가 전혀 없어요.
주위를 보면 착하고 성실하며 희생적인 사람일수록 상처를 더 잘 받는 것 같아요.
그럴 필요 없죠.
누군가 “왜 파마를 그렇게 했어. 얼굴이 찐빵 같아 보여.”라고 이야기하면 상처받지 말고 이렇게 말해버려요.
“웃기시네, 니가 파마값이라도 대 줬냐? 너나 신경 쓰시지.”
파랑새 이야기처럼 행복은 멀리 있지 않죠.
그러나 바로 곁에 있는 것도 아니에요.
행복은 늘 한걸음 앞에 있어요.
행복해지고 싶나요?
그럼 노력하세요.
그 한걸음을 전진하는 노력은 각자의 몫이니까요.
혹시라도 어느 순간 마음속의 이상한 놈이 우울한 이야기로 쏘삭이거든 선포하세요.
“꺼져버려 니가 뭐래도 난 행복하게 살 거니까.”
돌아보면 인생 별거 없어요.
행복하고 즐겁게 사세요.
오늘 먹고 싶은 걸 먹고
가고 싶은 데를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요.
고마운 사람에게 오늘 말해요.
그가 내일도 곁에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고마워, 사랑해"
심장이 뛰는 일을 하세요.
마치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