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보다, 다르게 그리는 아이로

by 아이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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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1살, 4살 두 아들을 키우고 있어.

그 중 첫째를 키우면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선택이 하나 있어. 바로 미술학원에 보내지 않은 거야.

처음엔 나도 고민했어. 남들처럼 미술학원 보내야 하나? 주변 아이들 거의 다 학원 다니고, 커리큘럼 따라가면서 실력을 키운다는데, 나만 이런 선택을 해도 되나 싶더라고.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술적으로 잘 그리는 건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AI가 웬만한 그림은 사람보다 훨씬 잘 그리는 시대잖아. 그림의 완성도나 디테일은 버튼 하나면 나오는 세상인데, 우리 아이가 굳이 지금 그걸 따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


그래서 '기술'보다 '상상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느꼈어. 예쁘게 잘 그린 그림보다, 지금 아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그걸 어떻게 표현하려 하는지가 더 궁금했지.

아이한테 그림을 잘 그리는 법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리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따라 그리는 방식은 재미도 없고, 자기도 모르게 친구들과 자기 그림을 비교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어. 한참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아이가 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자기는 잘 못 그린다며 연필을 놓아버린 거야. 내가 보기엔 그냥 같이 그리고 있었을 뿐인데, 아이 눈엔 이미 '비교'라는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던 거지.


그때 깨달았지. 비교되는 순간, 재미는 사라진다는 걸.

그 이후로 방향을 바꿨어. 정답이 없는 주제를 주기 시작했어. 구름, 바람, 비, 파도 같은 것들. 형태가 뚜렷하지도 않고,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것들. 어떻게 그려도 되는 자유로운 주제들이 아이한테 딱 맞았던 것 같아. 아이도 편하게 상상하고 그릴 수 있었고, 나도 그걸 보며 그 아이만의 언어를 조금씩 읽어가는 기분이 들었어.

점점 그림이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에도 연습장 10장을 가득 채우는 날이 생기더라. 종이 위에는 자기가 새로 만든 특이한 능력의 캐릭터들, TV엔 나온적없는 신비아파트 귀신들 등등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을 그림은 아닐지 몰라도, 그 속엔 아이만의 세계가 가득 담겨 있었지.


그 그림들을 보면서 나도 참 많이 배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연결하지 못한 개념들을 자유롭게 조합하는 상상력. 그건 정말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거더라고.

물론, 가끔은 흔들려.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 보내고, 체계적으로 배우게 했으면 어땠을까? 그림 대회에서 상도 받고,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기회도 있었을 텐데. 나 혼자 너무 다른 선택을 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앞으로의 세상은 점점 더 AI가 많은 걸 대신해주는 세상이잖아. 글도, 그림도, 음악도 AI가 점점 더 잘하게 될 거야. 예전에는 손으로 정교하게 그리는 게 능력이었지만, 이제는 버튼 하나로 명화 수준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니까.

그렇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건 뭘까? 난 그게 '상상력'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아이 머릿속에만 있는 그 세계는 따라 할 수 없거든. 그리고 그 상상력은 단순히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아. 새로운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기존의 규칙을 해석하는 태도, 전혀 다른 개념을 연결하는 힘. 그게 결국 아이의 사고력과 삶의 방향까지 바꿔주는 힘이 되더라고.


그래서 난 지금도 아들의 그림이 좋다. 기술보다 자유, 상장보다 상상. 그 그림들은 결과물 그 이상이야. 아이의 시선, 감정, 호기심, 철학까지 담겨 있으니까. 나중에 어른이 돼서 그 그림들을 다시 보면, 스스로도 깜짝 놀라지 않을까? '내 안에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하고.

그리고 나는 확신해. AI가 절대 빼앗을 수 없는 단 하나, 그건 바로 상상력이다.

혹시 너희 아이는 지금, 어떤 세상을 그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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