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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May 08. 2024

LOVE STORY

영화 '접속'의 주인공인가요?

거제도에 내려갔다.

나는 1남 1녀 중 장녀였다. 남동생은 강릉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1학년을 마치고 쫑파티를 한 뒤 하숙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았기에 부모님은 밖에 나가면 마주치는 동생의 친구들을 볼 때마다 괴로워하셨다. 동생이 떠나고 1년 뒤 아빠는 거제도로 내려가서 살자고 하셨다. 되도록이면 동생의 흔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싶어 하셨다. 동생은 화장해서 정선 강에 뿌려졌다. 엄마는 아들의 유해가 뿌려진 정선을 떠날 수 없다고 반대했지만 아빠는 거제도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왜냐하면 거제도에는 고모와 작은 아버지, 사촌들이 살고 있었기도 했지만 강원도에서 가장 멀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침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시기와 내 졸업시기가 비슷했기에 나는 반강제적으로 거제도로 내려가게 됐다.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나는 할머니와 사촌오빠와 함께 생활했다.


끝내 발령은 나지 않았다.

아빠는 한국통신에서 일하셨다. 나를 먼저 거제도로 내려 보내고 거제도로 발령을 받아 내려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강원도에서 경상남도로 발령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저러한 방법을 다 써봤지만 결국엔 발령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거제도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됐다. 나는 거제도에서 입시학원 국어강사로 일을 했다. 직업 특성상 오후 3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을 했다. 고모는 거제도에서 마트와 식당을 운영하셨다. 나는 거의 매일 고모 마트에 가서 캐셔도 하고 물건 정리도 하며 일을 도와 드리다가 출근을 했고 퇴근을 하면 고모 가게로 와서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가는 생활을 반복하며 지냈다.


외로웠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거제도에는 친구도 없었고 늘 출근과 퇴근만 반복하다 보니 너무 외로웠다. 그 당시만 해도 집집마다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심심할 때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PC방에 갔다.  나는 대전에서 대학을 다녔다. 졸업을 한지 얼마 안돼서 대전이 그리웠는지 대전지역 모임을 검색했다. 지금은 어떤 모임인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우연히 발견한 모임에 가입을 했고 단체 대화방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받곤 했다. 그 모임에서 남편과 친해지게 됐다. 동갑이라고 해서 친구처럼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연락처도 주고받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나보다 2살이 많았다.  정말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서 나이를 속였다고 했다.  지금도 남편에게 받은 메일을 간직하고 있는데 미래에 대한 고민과 나에 대한 찐한 사랑고백이 적혀 있다. 가끔 남편을 놀릴 때 그 메일을 공개하겠다며 협박을 하면 안절부절못한다.  


대전역 앞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 결혼식이 다가왔다. 강원도 태백에서 결혼을 한다고 해서 결혼식 전날 부모님이 계신 정선으로 가야 했다. 거제도에서 강원도 정선 집까지 가려면 먼저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 한다. 부산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대전역으로  가서 제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제천에서 내려서는 다시 영월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영월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멀고  길이다. 대전에서 제천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까지 3시간 정도의 시간이 비어서 남편에게 대전에 간다고 연락을 했고 그날 우리는 처음 만났다.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대전역 앞에서 남편을 만났다. 베이지색 바지와 베이지색 상의를 입고 있었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에 착해 보이는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낙지대학 떡볶이과'에서 해장을 했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날 과음을 했다며 해장을 하러 가자고 했다.  '낙지대학 떡볶이과'라는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쇼핑몰 구경을 했다. 쇼핑몰에서는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전도연과 박신양 주연의 영화 '약속'의  OST인  Jessica Folcker의' Goodbay'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좋다고 하니 남편이 OST CD를 선물로 사줬다. 스티커 사진을 찍고 나눠 가진 뒤 다시 대전역 앞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음료수를 한 잔씩 마시고 헤어졌다.(스티커 사진과 CD는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나중에 남편 친구한테 들었는데 나를 만나러 가기 전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바지를 다려서 입고 나갔다고 했다. 평소에는 늦잠 자고 다림질 따위 하지 않던 사람이 말이다.


일출을 보다가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첫 만남 이후 연락이 뜸해 지다가 아예 연락이 끊겼다.  연락이 오지 않으니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보다고 생각하고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 전화기를 바꾸면서 남편 전화번호도 삭제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12월 31일이 됐다. 집에서 혼술로 외로움을 달래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사촌오빠가 일출을 보러 가자며 깨웠다. 새해라고 일출을 보러 가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그날은 오빠를 따라나섰다. 일출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다가 갑자기 남편 생각이 났다. 잊고 있던 남편 전화번호가 문득 떠올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를 보냈는데 보내자마자 답장이 왔다. 전화기를 잃어버려서 연락을 못 했다고. 이메일도 있는데 연락을 못했다고? 음...


부산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거제도에 산다고 얘기하기 복잡해서 남편에게 부산에 산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부산에 친구들과 여행을 왔다고 만나자고 하는 거였다. 사실은 부산이 아니라 거제도에 산다고 말했더니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다음날 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나를 만나고 가려고 창원에 있는 고모집에서 잤다고 했다. 남편은 버스를 타고 거제도로 왔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바다가 보이는 PUB에서 첫 키스를 했다.

나는 거제도에서 면허를 취득했고 아빠는 졸업선물로 엑센트라는 중고차를 사주셨다. 남편을 고현 버스 터미널에서 태워 내가 사는 옥포로 왔다. 외로울 때마다 가는 단골 PUB이 군데 있었는데 한 곳은 라이브를 듣기에 좋은 곳이고 다른 한 곳은 바다가 보이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날은 바다가 보이는 PUB으로 갔다.  PUB은 옥포 조선소의 불빛이 바다에 비쳐 야경이 정말 멋지다.  년 전에 가보니 그 PUB은 없어졌다. 무척 아쉬웠다. 한 잔, 술을 마시며 그동안 쌓인 얘기를 나누다 우리는 키스를 했다.  아주 키스를 했다. 그날따라 손님이 없었다.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할 때는 남편이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어서 대전에 있었고 졸업 후에는 부천에서 회사를 다녔다. 우리는 중간인 대전에서 만나기도 하고 남편이 부산으로 내려오거나 내가 부천으로 올라가서 만났다. 그땐 왜 그랬는지 나는 남편과 헤어질 때마다 다시는 못 만날 것처럼 펑펑 울었다. 우리는 불타는 사랑을 했다. 당시 우리의 연애를 다 지켜본 친구가 그랬다. 둘 다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왔다고. 장거리 연애를 보다 못한 부모님이 결혼을 재촉하셨다. 상견례를 하고 결혼 날짜를 잡았다.


2001년 9월 2일  강원도 영월예식장에서 우리는 결혼했다.



< 작년 내 생일 제주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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