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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n 10. 2024

엄마는 73살, 나는 50살

소중한 영옥씨.

난 현충일이 내 생일이었다. 나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4일만 수업을 한다. 그런데 이번 현충일이 마침 목요일이어서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도 먹고 싶고 긴 연휴를 엄마와 함께 보내기 위해 아들과 친정인 정선으로 향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목살과 아들이 좋아하는 삼결살, 수박과 참외, 음료수를 샀다. 긴 연휴 탓인지 차가 밀려 평소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인천에서 오후 1시쯤 출발했는데 혼자 운전을 하다보니 너무 졸려서 휴게소에 들렀다 가니 5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엄마는 한 달만에 만나는 딸과 손자를 위해 갖은 나물 반찬과 김치를 해놓고 기다렸다. 우리가 올 때까지 엄마는 밥도 안 먹고 밭에서 고추를 심었다고 했다. 혼자서 밭 고랑을 내고 비닐을 치고 고추를 심고 물을 주고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픈 사람이 맞는건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매년 텃밭을 일군다. 아프다고 하지 말고 사먹자고 해도 땅이 있는데 그냥 둬서 풀이 무성한면 동네 사람들이 흉본다고 안 된다고 한다. 흉 좀 보면 어떻다고 못 말리는 엄마다.




몇 달전 일본에 사는 지인이 1병에 30만원이나 하는 고급 사케를 선물로 줬다. 아껴뒀다가 엄마랑 먹으려고 가지고 갔다. 삼겹살과 목살을 굽기 위해 거실에 신문지를 잔뜩 펼치고 고기 굽는 커다란 전기팬을 꺼냈다. 엄마가 담근 된장으로 양념한 쌈장과 오이 소박이, 알타리 김치와 각종 나물 그리고 텃밭에서 따온 싱싱한 상추와 쌈채소로 먹는 삼겹살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나는 나물과 김치만 있어도 밥 2그릇은 먹을 수 있다. 엄마는 우리가 가거나 동네 행사가 있을 때 빼고는 고기를 사지 않는다. 혼자서는 고기가 먹기 싫다고 하신다. 나는 열심히 고기를 구워 엄마 접시에 아들 접시에 날랐다. 원래 고기 굽는 담당은 남편인데 남편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내가 구웠다. 그동안 편하게 구워 준 고기 낼름 받아 먹기만해서 남편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술도 약하고 잘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선물로 받은 사케가 우리나라 것보다 달지 않아서 맛있다고 하며 여러 잔을 마셨다. 나랑 아들은 한 잔씩 마시고 나머지는 엄마가 다 마셨으니 꽤 많이 마신거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엄마가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는 뜻이다. 엄마와 한잔 하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성질머리 못 된 딸년 낳아서 키우느라 힘들었지?"라고 하니 엄마가 "웬일이냐? 그런 말도 할 줄 알고."라며 웃었다. 나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따뜻하게 얘기하는 게 어렵다. 그런데 그날은 꼭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나의 이런 쌩뚱맞은 감사 인사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웃는 엄마를 보니 나도 좋았다. 진작에 좀 더 다정하게 얘기 할 껄하는 후회가 밀려 왔다.




다음 날 영월 고씨 동굴 근처 유명한 칡국수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러 칡국수집이 있지만 유독 그 식당만 손님이 많다. 주말이나 휴가철에 가면 줄을 서야 하는데 우리가 간 날은 마침 금요일이라 편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비빔칡국수 2그릇, 도토리묵무침, 감자전, 감자송편을 시켰다. 비빔칡국수를 시키면 칡국수 국물을 준다. 비빔칡국수가 매콤해서 국물을 마시면 딱이다. 토토리묵은 탱글탱글 했고 감자 송편과 감자전도 가격에 비해 푸짐하고 맛있었다. 아들이 어릴 때 친정으로 휴가를 가서 아빠랑 엄마랑 함께 먹으러 갔었는데 이번엔 정말 오랫만에 갔다. 사실 계속 칡국수 생각이 났지만 아빠 생각이 나서 차마 가자고 말을 못 하다가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간거다. 아빠와 함께 갔던 장소에 다시 가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강원토속식당에서 먹은 음식들


엄마는 시골 할머니지만 피자와 파스타, 햄버거를 좋아 한다. 동네가 워낙 시골이라 파는 가게도 없다. 인천 우리집에 오면 꼭 엄마와 피자와 파스타, 햄버거를 먹으러 간다. 그리고 엄마는 커피도 좋아해서 아들 학교 보내고 엄마랑 쇼핑을 하고 시골에서는 먹을 수 없는 메뉴로 점심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간다. 카페에 가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아이고 죄다 아줌마들이네. 남자들은 나가서 돈 버느라 힘든데 팔자 좋은 여자들이다.". 나는 열심히 일하니까 해당은 안 되지만  그건 엄마 말이 대체로 맞다. 엄마는 뜨아, 나는 아아를 시킨다. 엄마는 요즘 커피집은 왜 이렇게 커피를 많이 주냐며 반은 나에게 덜어 준다. 커피 때문에 내 배가 터진다. 엄마와 카페에 앉아서 동네 아줌마들 흉도 보고 친척들 흉도 보고 때로는 사위 흉도 본다. 나한테 잘 하는 것 같지 않으면 사위라도 밉다고 한다.  엄마 기분 좋으라고 나는 맞장구를 쳐준다.



칡국수를 맛있게 먹고 영월에 새로 생긴' 팔괴정' 이라는 한옥 카페에 갔다. 2층으로 된 곳인데 다리가 아픈 엄마를 위해 1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실내는 심플하고 자개장이 인테리어 소품인 게 인상적이었다. 옆테이블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온 부부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도 커피를 무척 좋아했는데 살아서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주책맞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음료수를 마시던 엄마가 갑자기 "왜 너는 엄마한테 사진을 안 보내냐? 다른 집 자식들은 맨날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던데 엄마는 니가 사진을 안 보내서 사람들한테 자랑할 게 없다"라고 하는 거다. 특히나 나랑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고 서운해 했다. 옆테이블에 부모님을 모시고 온 사람들을  보고 아빠 생각이 나서 그런건지 아니면 정말 서운했던건지는 모르겠다. 우리 사적인 사진을 엄마한테 보냈어야 했나? 뭐 맨날 홍이랑 단골 다방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사진이나 취재나 인터뷰가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인데 엄마는 그런 사진도 좋다고 앞으로는 보내라고 했다. 그거야 뭐 어렵지 않으니 앞으로는 매일 보낼 작정이다.


한옥 카페 팔괴정에서

그래서 오늘 90장의 사진을 엄선해서 엄마 카톡으로  전송했는데 아직 아무 연락이 없다. 주로 내가 잘 나온 사진으로 보냈다. 사진 중에는 어릴 적 아빠와 찍은 사진도 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울고 계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엄마는 올해 73살이 됐고 나는 50살이 됐다. 그동안 엄마가 외롭다고 할 때는 많이 외롭겠다 생각은 했지만 이번에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지난 2월에 남편이 3년 계획으로 중국에 주재원으로 갔다. 막상 집에 남편이 없으니 불편한 점도 많고 시댁이나 친정에 일이 생기면 나 혼자 쫓아 다녀야 하니 그것도 신경 쓰이고 겨울에는 아들이 군입대도 하는데 여러 가지로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막상 남편이 외국에 나가 있으니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났다. 나는 홍이가 옆에 있고 시어머니는 아주버님과 같이 사시니 걱정할 건 없지만 엄마는 시골에 혼자 있어서 어디 아플까봐 항상 걱정이다. 아파도 혼자 병원에 다니고 집에 가도 혼자고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큰이모가 2년 전 먼저 돌아가신 뒤로는 더 힘들어 한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잘 지내겠지 생각만 했는데 이번에 엄마와 얘기를 나누며 엄마의 외로움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엄마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이제 엄마에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그동안은 우리가 시골에 주로 내려갔는데 엄마가 6월 말쯤 인천으로 온다고 했다. 시골에만 있으니 답답하다고 건강검진 예약도 하고 쇼핑도 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피자, 파스타 맛집도 미리 검색하고 풍경이 멋진 카페도 미리 알아놔야겠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같이 맛있는 거 먹고 같이 한 공간에 있는 것도 효도 아닌가? 부잣집에 시집가서 엄마를 호강 시켜 줬더라면 더 좋았을테지만 시집을 다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다. 나이 들더니 지저분해 졌다고 엄마한테 잔소리 듣지 않게 청소도 미리 말끔히 해놔야겠다. 우리 엄마는 깔끔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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