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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희 Jan 26. 2023

잊지 말자, 정치인은 기간제 근로자!

[의원 중에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 다섯

잊지 말자정치인은 기간제 근로자!     


정치인은 정규직도, 무기계약직도 아니다. 정치인은 기간제 근로자다. 고용에 있어서 가장 열악한 신분... 정치인으로서 재계약을 생각하고 있다면 임기 내내 열심히 해야 하고, 임기를 1년쯤 남겨놓고는 사활을 걸고 뛰어야 한다. 그래야 재계약 꿈이라도 꿀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자신이 기간제 근로자라는 것을 잘 잊어버린다. 당선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의원님, 의원님” 하며 대접을 해주니 시나브로 목에 힘이 들어간다. 또 이것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서 영원히 “의원님” 소리를 듣는 것인 줄 자기최면에 빠지기도 쉽다.   

   

이런 착각을 가속화하는 것이 보좌관, 비서진, 의회사무과 직원 등등의 ‘의전’이다. 앞서 쫓아가 차 문을 열어주고, 수저를 놔주고, 신발을 찾아주고, 물건을 들어주고 한다. 국회의원 두세 번 하면 옷도 혼자 못 입어서 입혀줘야 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습(習)이란 게 그렇게 무섭다. 분명히 말하건데 이런 건 무서운 행위다. 한 사람을 서서히 바보로 만들 수 있다.      


스스로 과한 의전을 싫어한다는 것을 나름 피력하고 있는데, 의전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의원들에게도, 직원들에게도 있어 쉬 바뀌진 않는다. 아무도 보고 싶다는 사람이 없는 의정활동 사진을 찍으려 직원이 따라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대면, 내 무의식은 ‘아, 나 중요한 사람?’ 이라고 여기게 돼 있다.    

   

게다가 보통 사업별로 억 단위, 1년 예산은 조 단위도 넘어가는 지자체의 예산을 심사하고 깎는 일을 하다 보면 시의원 자신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됐다 생각하기 쉽다. 안성시의회는 23년 본예산 심사를 하며 무려 721개 사업의 예산을 삭감하는 사상초유의 ‘큰 일’을 저질렀다. 큰일이라고 하는 까닭은 예산심사의 기준이 시민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그저 다른 당적을 갖고 있는 지자체장의 발목을 잡는데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삭감의 주체는 시의회 다수당의 일부 의원이었는데, 그분들이 자신을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 여겼을지 생각하면 씁쓸하다. 그분들은 그런 행위를 하면서 자신이 시민 앞에 ‘자연인’으로 돌아갈 그 어느 날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듯했다. 기간제 따위의 생각은 전혀 없었으리라.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거란 생각이 깔려 있지 않고서는 그토록 일방적인 행위를 그토록 과감하게 할 수 없다. 심지어 주민참여예산 사업도 깎았으니...      


고용불안으로 다같이 더불어 좀더 불행해진 사회     


대통령을 제외한 각종 의원과 시장, 도지사의 임기는 4년이다. 이는 4년이면 그 대단한 권력은 사라진다는 것이고, 재계약을 원한다면 또다시 유권자에게 표를 부탁하기 위해 굽실거려야 하는 운명이란 얘기다.  

    

고용의 안전성은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고용불안은 원형탈모와 우울증을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이다. 해고는 죽음이란 말도 있지 않았는가. 먹고사는 일이 당장 낼모레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이란 한없이 팍팍하다. 그것은 항시 긴장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과 같아, 삶을 제대로 누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매순간 근육을 조이고 주먹을 꽉 쥔 채로 견디는 삶이란 지옥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내가 알기로 한국사회가 헬조선으로 크게 한 걸음 옮긴 것이 ‘신자유주의’의 도입, 즉 고용불안정 심화, 해고가 쉬운 사회, 비정규직의 일반화였다.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우리는 다같이 더불어 좀더 불행해졌다. 고용의 한계가 분명한 정치인이라는 직업, 결코 좋은 일자리가 아니란 얘기를 하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정치인이란 직업군의 평균수명도 높지는 않을 것이다. 소명의식이 없다면 발 들이지 않는 게 좋다.       


낙선그 쓸쓸함에 대하여      


대부분의 정치인은 또 말로가 좋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어느 정치인이나 잘 나갈 때가 있지만, 문제는 영원히 잘 나가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는 것. 특히 우리 대한민국 현대사에 그런 정치인은 극소수였던 듯하다. 직에서 평화롭게 물러나고, 물러나서도 대중의 존경을 받고, 행복한 노년을 보낸 후 타고난 수명대로 생을 마무리한 정치인...       


일상에는 당선한 정치인보다 낙선한 정치인이 훨씬 많다. 과거 시의원을 했든, 시장을 했든, 국회의원을 했든, 결국 낙선하고 일반인으로 돌아간 이들만큼 안 돼 보이는 경우도 드물다. 찾는 사람은 줄고, 휴대폰은 더 이상 바쁘게 울리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과의 관계가 약속한 듯 일시에 단절될지도 모른다. 그 모든 이미지와 함께 뭔가 쓸쓸해 보이고, 뭔가 짠하다.     

 

원인이 뭘까 생각해본다.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일에서 공급받던 자존감을 스스로 더 이상 공급받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원인일지 모른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 그럴 것이다. 화려한 삶의 조명이 어느새 다 꺼지고, 무대 뒤에서 쓸쓸하게 늙어가는 일만 남은 사람을 보는 시선. 이런 건 이르게 명예퇴직한 대기업 임원, 권위란 권위는 다 세우다가 퇴직한 공무원 등이 다르지 않을지도...   

   

늙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쓸쓸한 것이지만, 늙음이 더 아름다운 삶은 분명히 있다. 정신적으로 더 성숙하고 우주와 더 조화로워지는 늙음은 얼마나 귀한지... 정치인의 늙음은 그런 풍경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아름답고 평화롭게 늙어가는 정치인, 기어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자연사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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