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내 구멍 난 양말

선명하게 만드는 일

by 최승일

1. 괜한 짜증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산다고 착각했다. 밀도를 올리다가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말았다. 강박적으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오전 루틴을 끝내면 성취감보다 아직 해야 할 루틴이 남았다는 압박감이 먼저 들었다. 하나라도 놓치면 조급함에 여유를 잃고 예민해졌고 예민함이 오히려 가족들에게 향해서 반성과 후회를 자주 했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기로 했다.


2. '~하여'와 '~해'

'~하여'를 쓰는 게 왜 그렇게 싫은지 10여년간이나 '~하여'를 '~해'로 고쳐 썼다. 왜 그랬을까? 문득 내가 왜 '~하여'를 쓰기 싫어하는지 떠올려봤으나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 마치 손에 가득 힘을 주어 연필을 잡고 꾸욱꾸욱 글씨를 눌러쓰는 것만 같다. 내 기준안에서 굳이 통제할 필요 없는 것들을 통제하며 힘주어 살고 있다. 내 인생에 이렇게 이유가 없이 힘을 주는 것들이 많이 있을 텐데, 하나둘 찾아서 애쓰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어야지.


3. 사주팔자

'MBTI'에서 '사주팔자'로 유행이 이동하고 있다. 내 사주팔자에는 '토'의 기운이 과하고 '화'의 기운이 없다. 신경 쓰지 않다가도 고민이 많아지면 사주팔자에서 이유를 찾아보는 요즘이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나는 순응할 준비가 되었을까?


4. 내 구멍 난 양말

'내 구멍 난 양말'은 20대 초반 고민이 많던 시절 티스토리 블로그에 썼던 글의 제목이다. 당시 워낙 오래 걷고 일어서있으니, 구멍이 자주 났는데, 양말 살 돈이 없어 구멍 난 양말을 자주 신고 다녀 제목으로 지었다. 혹여 신발을 벗어야 하면 왠지 내 처지가 부끄럽고 처량했다. 굳이 처량할 것까지야 없었는데. 지금은 부끄럽고 처량할 만큼의 구멍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글을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은 영 부끄러워 망설이게 된다.


5. 인공지능

혼자 작업을 하면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런 나를 탓할 수 없게 인공지능은 막힌 부분을 질문 한 번으로 해결해 준다. 마땅한 변명거리도 사라졌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12월에 올해 목표를 달성했다. 내년에는 더욱 분발해야지.


6. 서비스/경험 디자인 기사 자격증

작년 실기 시험에 떨어지고 반성을 많이 했다. 관련 분야에 있었다는 오만함으로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시험을 봤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내심 붙기를 바랐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나의 태도에 헛웃음이 나온다. 올해는 이론서를 필독하며 꾸준히 공부했다. 유튜브나 후기들도 참고하며 공부했지만, S가 했던 말처럼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하고 공부하라는 말이 제일 도움이 많이 되었다. 덕분에 두 번째 실기 시험은 아주 쉽게 붙게 되었다.


7. 힘 빼기

걸을 때도, 일을 할 때도 힘을 주는 경우가 많다. 사실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데, 복싱을 하며 힘을 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처음에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필요한 타이밍에 힘을 집중하라는 말이었다. 최근 스스로에게도 자주 되뇌는 다짐이다. 긴장감을 낮추고 굳이 애쓰지 말고 힘을 빼자. 흐르는 것은 흐르도록 두자.


8. 벨리댄스 공연

딸이 토요일마다 문화센터에서 벨리댄스를 배우더니, 얼마 전 공연을 했다. 뽀작뽀작 작은 손짓으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평소에는 낯가림이 있다가도 무대에서는 떨지 않고 잘한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찍어둔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요즘이다.


9. 사필귀정

아빠는 내가 정부, 정치인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면 항상 사필귀정이라고 하셨다. 요즘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그 말이 맞다고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불만스럽기는 하다. 그러다 문득 정보 습득이 쉬운 나와 상대적으로 디지털 문명에 소외된 이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뉴미디어가 아닌 TV뉴스와 신문으로만 세상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없어 제한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다양한 의견을 나눌 기회가 없던 사람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논리적으로 내어놓는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 다양한 이유와 함께 당연히 나보다 임계점이 높을 텐데 내 기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그들도 올바름을 향해 가려는 것은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배달은 어떻게 우리의 일상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