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헤어질 결심을 할까? 상대방의 눈빛이 자주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낼 때? 마음속에서 소리치는 정동을 아무리 말로 표현해도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을 때? 상대방이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반대로 상대방이 너무 요구를 잘 들어줄 때도 실증나서 헤어질 결심을 할 때도 있지. 가장 흔한 경우는 완벽한 이해의 대상이라고 느꼈던 상대방에게 더이상 이해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할 때인 것 같다. 그런데 이해라는 것이 원래부터 불가능한 상상 속의 보물이라면? 내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면?
서래와 해준은 이해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난해의 대상으로서 마주한다. 서툰 한국어와 중국어를 가로지르는 대화에서 서래는 한국어 문장을 잘 이어가는 와중 마지막 단어를 고상한 중국식 단어로 끝맺는다.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한국어답게 추모의 분위기를 띠우던 서래의 문장은 마지막 한 단어가 자리하는 순간 남편이 죽어서 기쁘다는 건지 슬프다는 건지,, 벙찌며 미끄덩, 쿵, 엉덩이로 떨어진 것 같은 당혹. 옆에서 숨쉬는 매혹. 딱딱한 취조의 대화가 오가던 와중의 마침내, 미끄러지는 말실수를 할 때마다 서로 피식 터뜨려버리는 웃음이 온다. 미끄럼틀 타듯이.
사실 모든 대화와 관계, 인간은 언어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오며 결여를 수반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존재하는 줄 모른다. 정신분석에서 말하기를 동물적인 본능을 가진 한 인간이 사회가 부과하는 금지들(ex 근친하면 안돼..!)을 체화할 때 완전한 만족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심지어 잃어버린 욕망을 표현할 때 쓰이는 언어는 내가 진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외면한다.(내가 정말 원하는 사랑이 뭐지? 대상을 아껴주는 거지, 아껴주는 건 뭐지? 소중하게 여기는 거지, 소중한 건 뭐지? 이런 식으로 무한한 질문 속에 빠져버린다. 맨 뒤에서 최종적으로 모든 기표의 의미를 보증할 초월적 기표가 없기 때문에.) 인간은 본인의 이 결여를 모르고 완전한 이해의 가능성, 궁극적인 꿈, 완벽한 상대방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좌절한다. 그런데 결여는 빈 공간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법이다. 결여가 결여로서 수면 위로 떠오르면 물방울처럼 터져버리는 웃음/특별함과 환상/애정이 피어난다. 해준은 서래가 꼿꼿해서 좋고, 서래는 해준이 품위 있어서 좋다. 꽉 차있는 그릇은 더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비어있는 그릇은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두 그릇 모두의 밑바닥에 보이지도 않고 채울 수도 없는 빈 공간이 있다.)
욕구가 언어를 통해 요구로 바뀔 때 언어로 포착될 수 없는 욕망이 남는다. 죽을 듯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의 욕구를 해석해 요구로 바꾸고 또 그 요구를 온 몸 바쳐 들어줄 때에도,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이라는 근원적인 결핍으로서의 나머지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결핍에 대한 흔한 대응 방식이 대상에 대한 완전한 통제욕이다. 성공할 수 있을까?
원전 완전 안전화!를 외치는 아내 안전화의 사랑방식. 자신의 욕구를 가장 정교화된 언어인 수치로 표현한다. 본인의 직업인 원전 안전관리를 하듯이 해준과의 관계를 관리한다. 해준은 붕괴되면 안되는 대상이다. 섹스리스 부부의 53%가 겪는 이혼 위기를 벗어나려 주 1회 섹스를 강박적으로 요구하고 기러기 부부의 45%가 겪는 위기를 벗어나려 해준이 이포에 와주기를 바란다. 지극 적성이던 안전화는 그러나 해준이 완전이 붕괴된 이후에는 (“난 완전히 붕괴됐어요”) 해준을 차갑게 떠나 다른 남자에게로 간다. 남성 정력에 좋은 자라를 들고.
반면 서래의 사랑 방식. 붕괴된 해준을 붕괴 이전으로 돌리려 한다. 드라마 ‘적색 경보’의 남주가 원전 안에 갇힌 여주를 구하려 방사능 속에 뛰어가 포옹하는 장면을 보던 서래,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 이포로 온다. 서래는 본인이 죽인 남편의 사건을 재수사하며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재수사에 필요한 핸드폰을 쥐어주고 스스로 물속 깊은 곳으로 잠긴다.
서래는 본인의 죽음을 통해 해준을 되돌리는 것을 ‘헤어질 결심’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서래는 해준에게 환희를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붕괴의 봉합만을 주려하는 것 같아. 자신이 죽으면 해준도 죽을 듯 아플 거라는 사실은 서래도 알 걸?) 동시에 서래는 그렇게 함으로써 해준의 미결사건으로 남고자한다. 해결된 사건은 해준의 사건 현황판에서 떠나야하지만 미결사건만은 영원히 남을 것이기에. 서래는 영원히 해준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헤어짐마저 받아들이는 사랑법, 본인의 부존재마저 받아들이는 사랑법, 서래는 헤어짐으로써 사랑하고 해준에게 남으려 하고있다. 해준을 소유해서 본인의 빈 공간을 메꾸는 것도 아니고 본인의 존재로써 해준의 빈공간을 채워주는 방식도 아니다. 본인의 부존재로서 해준의 마음속에 빈 공간으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결심. 헤어질 결심은 안 헤어질 결심이다.
헤어지지 않으려면 실체로 존재하지 않고 결여로 존재해야한다. 영화에서는 그 결여가 죽음이라는 격한 형태로 실현되지만 현실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우리도 다소간 상대방에게 결여로 남아야한다. 사랑의 상대방은 완벽한 대상이 아니다. 내 욕망을 충족시켜 주이상스(환희, 완전한 행복)를 가져다 줄 존재가 아니다. 나도 상대방에게 환희를 선물해줄 수 없다.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존재로 만들거나 환희의 도구로 사용하면 안돼. 상대방의 도구가 돼서도 안돼.
상대방에게 결여로 남아야지만 신비의 대상으로서 사랑받을 수 있기도 하다. 졸졸 따라다니던 짝사랑의 대상이라도 어느날 내게 무한의 사랑을 고백하며 24시간 따라다니고 징징대면 사랑이 식을 걸?? 송서래도 말하잖아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 사랑이 끝났고, 당신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다.” 실체를 보면 죽는 사랑. 나의 빈 공간과 그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고 남겨둔다. 거긴 아무 것도 없고 봐서는 안돼. 그래서 가끔씩 보고 싶다는, 좋아한다는 말을 삼켜야하고 상대방을 이해 불가능의 하나의 존재로 완전히 존중하고 나의 삶을 먼저 살아야 한다.
안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
서로에게 결여로 남는 것.(다소간)
필요조건은 내가 결여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