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명강의 이야기
황창연 신부님 행복특강 ( 서로 사랑하라! )
오늘도 황창연 신부님의 평화 방송을 들으면서 또 깨달음을 얻는다.
황창연 신부님이 사십이 넘으면서 제일 감사한 것이 미운 사람이 하나도 없으신 거였단다. 미운 사람이 없다 보니까 마음의 평화를 많이 찾게 되셨단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밉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너무도 많다는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은 태어나기를 다 다르게 태어났는데 나 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어떻게 다 미워하겠느냐는 지당한 말씀에 그저 묵묵히 고개만 수그린다.
나 또한 칠십이 이제 막 넘고 나니까 마음의 평화는 어느 정도 찾아온 것 같다. 내려놓은 것도 많고 포기한 것도 많아서 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주도로 이사 오고 나서 더 많이 편해진 것 같다. 영혼의 자유를 찾아서 온다는 제주도의 효력이 나 역시 통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참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다. 도저히 내 능력으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만나면 만날수록 가슴에 상처만 남겨진 채로 돌아서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이제는 그냥 안 만나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서 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다시 마음의 평화는 오는 것 같은데 이게 백 퍼센트 완벽한 평화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작은 공허함 때문에 또다시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면 이제는 사양하고 싶다. 더 이상 상처받을 마음의 공간이 없다. 그동안 받아왔던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더 이상 미워하지는 않지만 만남은 피하고 싶다.
황창연 신부님께서는 30대까지만 하더라도 일일이 소리 지르면서 남들한테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40대가 되니까 어느 날부터 조용히 계시니까 사람들이 이상해 하더란다. 이제는 기운이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는다는 말씀에 한참이나 웃었다.
아직 사십 대 밖에 안되셨는데 벌써 기운이 떨어지시면 어떡하나는 할매다운 걱정이 앞선다. 가까이에 있으면 맛있는 거라도 만들어서 갖다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최소한 50년은 강의를 다니셔야 할 텐데 걱정이다. 신부님의 강의 한 말씀에 웃고 울면서 위로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나저나 이렇게 대단하신 신부님도 사십이 되니까 신경질도 안 부리고 조용히 사신다는데 팔십이 넘은 우리 집 양반은 어쩌자고 성질도 안 죽는지 이것 또한 새로운 기도 제목으로 삼아야겠다.
오늘의 주제는 “서로 사랑하라!”이다.
문제는 모두를 사랑하려고 하니까 안된다는 신부님의 말씀이 너무도 좋다. 요즘 흔히 말하는 “사이다 발언”인 것이다. 예수님도 모두 사랑하라고 한 적이 없으시단다. ”서로를 사랑하라!"라고 하셨단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라는데 사실 이것 또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황창연 신부님이 사랑하시는 신부님한테서 받은 성구를 지금 계시는 생태마을에 걸어놓으셨는데 그 성구의 문구가 “서로 사랑하라!”란다. 그런데 참으로 웃긴 것은 그 문구의 배경화면이 호랑이 두 마리가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라는 말씀에 또 한참을 웃었다.
그 무서운 호랑이도 서로를 끌어안고 서로를 사랑하는데 하물며 부드러운 인간이 어찌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인간이기에 더 힘든 것도 있을 것이다.
황창연 신부님의 명언이 또 등장한다. 인생에는 나하고 궁합이 맞는 사람이 따로 있단다. 지금까지 살아오다 보니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가 간다. 나 하고 궁합이 맞는가 안 맞는가에 따라서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가가 결정되는 것 같다.
꼭 부부 사이를 떠나서도 모든 대인 관계에도 궁합이 있는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나하고 궁합이 맞는 사람을 만나서 앞으로 남은 인생 편하게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 같다.
나랑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 또한 아니다.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다. 오랜 이민 생활을 접고 거꾸로 역이민이라는 것을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미국에서 힘들게 만들어졌던 나 하고 궁합이 딱 맞았던 사람들을 두고 온 것이다. 이렇게 궁합이 맞는 사람을 새로 찾는다는 것은 나이 들어서는 더더욱 힘든 것 같다.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예전의 이웃 간의 정이 넘치던 그런 한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를 않았다. 당연히 옆집에 누가 산다는 것은 도저히 알 수도 없었고 서로 인사 조차도 제대로 나누지 않는 미국보다도 더 삭막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살 때는 정말 희한하게도 많은 이민자들이 한국에서 떠날 당시의 마음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60년대에 떠난 사람은 60년대의 한국 모습을 기억하고 2000년대에 떠난 사람은 그 당시의 한국 모습을 기억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미국에서 설교를 하시는 신부님이나 목사님들의 고충이 크셨다고 한다. 모든 신도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 한국에서 자기가 떠난 그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대로 전달이 안됐던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이런 것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이 손가락 하나에서 검색이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더 이상 시간 차이는 느끼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집 양반은 1968년도에 한국을 떠났으니까 당연히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한국의 모습은 그 옛날 징그럽게도 못 살던 시절이었지만 인심만큼은 훈훈했던 그 기억으로 살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와서 살아보니 달라도 너무나 다른 현실에 무척 상처를 받았나 보다. 그래도 한국 사람만의 특색인 “정”이라는 것은 남아있어서 처음에는 그렇게도 쌀쌀맞다가도 막상 친해지고 나면 옛날의 정겨운 모습이 다시 보인다. 그나마 참 다행이다.
“서로를 사랑하자!” 비록 옛날 같지는 않더라도 서로를 사랑해야겠다는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서로를 사랑하자! ” 마음처럼 쉽지 많은 아니니까 일단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만남을 이어간 뒤에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이 지름길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