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명강의 이야기
늘 유쾌함과 지혜를 통쾌하게 전달해 주시는 황창연 신부님의 명강의가 돌아왔다.
내가 이제는 늙었다고 자식한테 모든 재산을 물려주는 순간 바로 그때부터 자식도 잃어버리고 재산도 날라가고 인생마저 잃어버리게 된단다.
이미 익히 들어서 알고 있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한테서 직접 보고 경험한 것도 많아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데도, 막상 이런 이야기를 신부님한테 듣게 되니 더더욱 가슴아픈 현실이 직접 더 와닿는 것 같다.
워낙에 안 찾아오는 자식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 혹시 재산이라도 물려주면 좀 더 자주 찾아와주고 , 맛있는 것도 함께 먹으러 가고, 또 어디 좋은 온천이라도 데리고 가려나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이다.
그냥 돈만 뺏기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런 슬픈 현실이 돼버렸는지…
옛날에는 비록 가진 것이 넉넉하지 못해도, 배운 것이 없더라도 부모에 대한 효도 하나만큼은 이 세상 그 어느나라도 따라올 수가 없을 정도로 부모공경 잘하는 나라였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오죽하면 “불효자 방지법”이라는 것이 발효가 됐단다. 내가 가진 모든 재산과 집을 자식한테 다 물려줬는데도 불구하고, 배은망덕한 자식이 나 몰라라 한다면, 그때는 내가 준 내 재산과 집을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할아버지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할머니들이 과연 몇 분이나, 평생을 애지중지해오던 자식을 상대로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하겠느냐이다.그냥 내 속이 꺼멓게 타들어 가든 말든 그냥 참고 사는 것이 현실이란다.
요즘 갑자기 신부님계시는 평창 생태마을에 들어와서 같이 살겠다는 할머니들이 부쩍 늘으셨단다.난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설거지도 잘 한다면서 그냥 들어와서 사시겠다는 할머니들이 1년에 500명 정도는 되는 것 같으시단다.
신부님 평생에 이렇게 여자들한테 인기 많아본 것도 처음이라는 말씀에 모든 청중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어떤 할머니 사연은 어느 날 아들이 불쑥 찾아와서는 자기한테 오천만 원이 있고 어머니한테 3억이 있으니까 합쳐서 작은 아파트 하나 분양받으면 어머니 모시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에 어느 할머니가 안 넘어가고 배기겠는가…
할머니가 사시던 집에 아들 며느리가 들어오는 것을 그래도 그나마 나은 편이란다. 할머니가 아들 며느리 네로 들어가는 순간 그 할머니의 시대는 끝이 난 것이다.
팔십인 할머니가 육십인 며느리한테 가면, 요즘의 육십 아줌마는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또 한 번 배를 잡고 웃는다.
어떻게 결혼도 안 해보신 신부님이 마치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너무도 실감 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참 서글프다.
요즘 아줌마들 참 무섭다.
일단은 얼굴만 봐도 무섭다. 덩치도 크다. 웬만한 남자들도 감히 근처에 얼씬도 못 할 것 같다.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누구든지 나 건드리기만 해..”라는 표정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한테서 느끼는 감정이다 보니 신부님마저도 그런 생각이 드셨을 것이다.
아마도 아줌마의 얼굴이 그렇게 억세게 변해버린 것에는 가족들의 책임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일 순위가 물론 남편 일 것이고 그다음이 마음대로 안되는 자식들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 완전 꼰대 같은 시부모까지 모신다면 그 누가 천사의 얼굴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라는 불쌍한 생각도 든다.
미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그래도 내려놓고 부드러워지는 연습을 하자.
이제는 자식들이 효도하는 세상이 아니란다. 효도할 수도 없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단다.
이제는 인생의 주인공을 할머니 할아버지 자신으로 살라고 신부님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신다,
세상이 바뀌어서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데 100세 할머니 할아버지가 팔십 세 아들한테 왜 자주 안 오냐고 뭐라 하면 그 노인네 같은 아들이 얼마나 힘들겠냐는 신부님 말씀에 웃을 수도 없고 울지도 못하는 현실 앞에서 그저 가슴만 답답해져 온다.
이제는 노년기에 접어든 우리 부부는 죽어도 민폐는 끼치지 말고 가자는 생각에, 일찌감치 연명치료 거부도 신청해 놨고 쓸만한 데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장기 기증 신청도 해놨다.
그리고는 우리가 죽으면 절대로 장례식은 치르지 말라는 당부까지 해뒀다.
그 대신 평생 죽어라고 고생해서 간신히 마련한 이 집만큼은 나 죽으면 가져가라고 했다.
제법 똑똑한 노인네가 된 것 같다.
자식들한테 바라지도 말고 기대지도 말자.
자식한테 대한 기대치를 내려놓으니까 모든 것이 편안해지더라.
살아보니 알겠더라.
미우니 고우니 난리를 쳐도 죽을 때까지 옆에 함께 하는 것은 부부밖에 없다.
오늘도 여전히 하루종일 젖은 나뭇잎처럼 옆에 붙어있는 웬수같은 우리 삼식이 아저씨, 좋아하는 간식이나 만들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