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유튜브에서 정목 스님의 강연을 듣다가 너무도 마음에 와닿은 문구가 있어서 부지런히 따라 적어보았다.
나는 102살입니다.
나는 젊지 않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 늙었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102년 동안
성숙했을 뿐입니다.
( 해리 리버맨 )
"해리 리버맨"이라는 분이 하신 말씀이라면서 정목스님이 좋아하는 글이라고 소개를 해주셨다. 듣는 순간 그야말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102세까지 이렇게 정신이 맑은 상태로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신데, 어떻게 102세 세월 동안 늙어 온 것이 아니라 성숙했을 뿐이라는 말씀을 이리도 당당하게 하실 수 있는지. 그저 그 훌륭함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내 늙음은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정목 스님의 강연에 딱 어울리는 문구이다.
내 나이 이제 칠십 하나.
과연 내 인생은 해리 리버맨의 말처럼 성숙해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성숙은커녕 미숙투성이었던 내 인생 같다. 돌이켜 보면 그땐 왜 그랬을까?라는 자책과 후회로 괴로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자님 말씀에 의하면
40세가 되어서 판단에 헷갈림이 없었고
(불혹의 나이 )
50세가 되어서는 하늘의 뜻을 알았으며
(지천명)
60세가 되어서는 귀로 듣는 말에 거슬림이 없었고
( 이순 )
70세가 되어서는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고 하신다.
(고희)
나의 40대와 50대를 돌아다보니 현명한 판단과 하늘의 뜻은커녕, 그날그날 먹고사는 데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돌돌 시간조차 없이 살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은, 60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자님 말씀대로 귀가 조금씩 순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70이 되어서야 할 수 있다는, 아무런 일을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는 것은, 워낙 법이 무서운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건 미리 실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칠십 하나인 나는, 육십도 중반을 지나서야 거의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간신히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나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 옛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대학을 못 간 것이 평생 한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은퇴하자마자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이 “한”많은 공부였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인생 후반으로 들어선 시점에, “성장”이라는 것을 조금 한 덕분에 인터넷 대학도 들어가고, 내 평생 한이었던 “열정대학생”이라는 대학생 타이틀도 받았다.
소위 일류 대학이라는 곳을 나온 우리 언니는 그것도 대학이냐고 했지만, 나한테는 그 어느 대학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소중하고 감사한 학교였다.
그 덕분에 자고 나면 엄청나게 바뀌는 이 디지털 세상에서, 비록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흉내는 내면서 살고 있다.
“노션”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디지로그”세상을 만끽하면서 살고 있다.
아직 노션의 세계를 모르는 며늘애한테 부지런히 전도를 하고 있다. 가끔 며느리가 관심을 갖고 물오보면, 약간 어깨에 힘을 주면서 아주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도 한다.
이렇게 공부를 시작한 덕분에 나름 잘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염색 안 한 지도 거의 십 년이 됐다. 이렇게 온통 흰머리로 다니는 것을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질색들을 하지만, 난 지금의 내 흰머리 모습이 좋다.
자연스러워서 좋다.
비록 머리는, 온통 흰머리로 뒤덮여있고, 온 얼굴은 잔 주름 투성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더 활기차고 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공부를 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그 덕분에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아름답다.
그러면 되지 않았는가?
이대로만 그대로 늙어간다면, 정목스님의 말씀처럼, 나의 늙음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