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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대 업글할매, 한국방송통신대 입학 지원서를 냈다.

업글할매의 행복한 노후

by 업글할매

칠십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내 가슴 깊숙이 단단히 숨겨두었던 꿈이 하나 있었다.


“대학에 가고 싶다.”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소망일지 몰라도, 나에게는너무도 멀고 먼 이야기였다.


젊은 날, 내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오직 일만 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고 부모님이 한 달 사이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좋아하던 공부에 대한 미련은 일찌감치 내려놓았다.


나에게 배움은 사치라면서 일치감치 포기를 했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늘 그리움처럼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한(恨)‘이 맺혔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은 나에게 또 한 번의 기막힌 인연을 선물해 주었다.


지난 6월 10일, 제주 디지털배움터라는 곳에서 마련한 장동선 박사님의 강의가 바로 이곳 한국통신대학교에서 열린 것이다.


평소에 워낙 좋아하던 교수님의 강의라, 만사 제쳐놓고 참석을 했었는데, 그 덕분에 제주도에도 방통대가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내 칠십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멋진 블로그 세상을 열어주신 라이팅시온 쌤이, 이번에는 방통대에 입학해 보실 생각은 없냐고 넌지시 말을 건네셨다.


대학이라니…

가당치도 않다면서 손을 절레절레 흔들고는 장동선 박사님의 소중한 말씀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뭔가가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다시 사무실 쪽으로 내려가서 ‘한국방송통신대 입학 안내’에 대한 브로슈어를 있는 대로 챙겨서 가방에 조심스레 넣었다.


‘남편이 반대하진 않을까?“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데,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학교 공부를 해본 지가 벌써 50년도 넘었는데…“


수없이 많은 핑곗거리들이 고개를 든다.

안될 이유만 따지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꾸만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늦기 전에, 내 마음속의 한은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내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배우고 싶고 느끼고 싶다.


그래서 망설임 속에서도, 나는 지금 조용히 내 인생의 다음 문을 두드리려 한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저녁상을 차리면서 조심스레 남편에게 이야기해 봤다.


‘있잖아…방통대 라는 데가 있는데, 매일 나갈 필요도 없고, 그냥 집에서 인터넷으로 수업 듣다가, 가끔 한 번씩 출석수업이라는 것만 하면 된대.“


말끝을 흐리며 남편 눈치를 살짝 봤다.

괜한 얘기 꺼냈나 싶어서, 죄 없는 반찬만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설명을 더 보탰다.

”그리고 말이야, 등록금도 무지 싸!“


속으로는 이미 반대할 것이 뻔하다면서 마음을 접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우리 집 양반, 젓가락을 멈추더니 한 마디 툭 던진다.


”한 번 해봐.“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해보라니까, 매일 나가는 것도 아니라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남편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설득을 잘한 건가?

아니면 오늘 이 양반 기분이 좋은 건가?


아무튼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물론, 주위에서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 이젠 쉬엄쉬엄 살아야지.“


하지만 나는 안다.


”인생의 황혼 무렵“이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은퇴한 할매지만, 아직도 배우고 싶고, 가슴 한켠에는 여전히 설렘이 살아 숨 쉰다.


입학통지서는 7월 28일에 온다고 했다.


대체로 신입생은 거의 붙는다지만,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이 심장을 달랠 길이 없다.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유튜브에서 방통대 이야기도 찾아보고, 예습 삼아 과제도 들여다봤다.


그런데, 어라?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일본어를 좋아해서 ‘일어일문학과’인 줄 알고 신청했는데, 웬걸, ‘일본학과’란다.


이름이 어째 좀 다르다 했더니, 단순히 말만 배우는 게 아니란다.


일본의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까지 두루 배운다니, 이거 장난 아니다.


“내가 너무 큰일을 벌인 건 아닐까…”

겁이 불쑥 올라온다.


디지털포메이션이니, 유튜브 강의니, 아이패드니 하며 요즘 세상에 발맞춰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이건 차원이 다르다.


명색이 대학 공부 아닌가.


과제도 있고, 시험도 있고,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하늘이시여, 내가 어쩌다 또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보고 있는지…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누구보다 기뻐해 줄 우리 블로그 팀 친구들에게도 아직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혹시라도 포기할 마음이 생길까 봐, 입학 통지서가 날아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한데, 별 기대 없이 딸내미한테 입학 지원서를 냈다고 했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왔다.


무조건 하란다.


자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 나이에 나처럼 공부에 열정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엄마는 공부할 때 가장 행복해하니까, 건강에만 무리하지 않는다면 그냥 해보란다.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일단은 저질러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


요즘은 노쇠라는 불청객이 본격적으로 찾아와 몸이 부쩍 힘들어졌다.


게다가 지난달에는 녹내장 진단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나에게 더 용기를 북돋아 준 것 같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해봐야 한다고…


이 병이 언제 더 심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데, 내 인생의 소원이었던 대학 생활을 한 번쯤은 누려봐야 하지 않겠는가.


설령 낙제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내 속도로 천천히 나아가 보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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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학위를 따겠다는 욕심도 없다.


그저 대학이라는 곳에서 배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느껴보고 싶고,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고 싶을 뿐이다.


어차피 달리할 일도 없다.


경로당에 가기엔 아직 마음이 따라주지 않고, 내 또래 친구들과도 어쩐지 말이 잘 안 통한다.


우리 삼식이 아저씨는 여전히 똑같고…


그러니, 그냥 나는 지금 이 순간, 내 방 안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공부하는 이 시간이 가장 호사스럽고, 신선하고, 무엇보다도 내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남편이 전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어차피 시작하는 것, 열심히 해보란다.


사실, 자신이 없어서 그냥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웬일로 우리 집 양반이 생각 외로 응원을 해준다.


그 바람에 포기하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다.


예전엔, 그렇게 공부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들은 척도 안 하던 사람이, 이제는 내가 살짝 겁이 나서 포기하려니까 도리어 나를 부추긴다.


이래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나는 이제 대학 신입생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레고, 또 조금은 두렵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나이에 시작하는 도전이야말로 진짜 젊음이 아닐까 싶다.


단지 하나, 간절히 바람이 있다면…


부디 내 몸이 더 이상 탈 나지 않고, 이 소중한 배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나는 오늘도 꿈꾼다.


한국방송통신대의 정식 신입생이 되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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