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무병장수‘여야지, ’유병장수‘는 싫다고 많은 어르신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아프지 않게 오래 사는 것.
그 소망은 소박하지만, 그만큼 간절하다.
우리는 이 바람을 너무 쉽게 “100세 시대”라는 말 한마디로 묶어 버린다.
숫자는 화려하다.
하지만 그 숫자안에 들어있는 노년의 하루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느리고, 그리고 복잡하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며 한숨을 고르는 시간, 밤새 뒤척이다가 맞이하는 새벽, “그냥 기운이 없어요~~”라는 말로 수많은 통증을 대신해 버리는 순간들.
겉으로 드러나는 병 이름보다, 이렇게 말로 다 하지 못한 불편함이 노년의 일상을 채운다.
이 모든 것이 많은 어르신들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라고, 노년내과 전문의이신 김광준 교수님은 조용히 이야기한다.
노년의 아픔은 크게 외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방식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작년 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노년내과를 다루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부지런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와는 먼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저 남의 일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어느 날, ‘노쇠’라는 반갑지 않은 친구가 예고도 없이 찾아오고 나서야 그제야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때부터 부지런히 이런 방송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노년내과 전문의 김광준 교수님의 채널을 알게 됐다.
말이 과하지 않고, 설명이 참 차분하다.
무엇보다 어른신의 몸을 다루는 사람의 태도가 느껴진다.
이상하게 믿음이 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옛말 속에 담긴 조상님들의 지혜가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젊을 때부터 관리를 잘했어야 했는데, 젊다는 이유로,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형편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내 몸을 참 많이도 혹사했다.
그 결과는 늙어서 달콤한 ‘고진감래’가 아니라, 쓰라린 ‘고진통래’로 돌아온 것이다.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올 거라 믿고 오랜 세월을 묵묵히 버텨왔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노인의 문턱에 서 보니 안 아픈 곳이 없는 몸이 되어 있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야~~”
웃으며 농담처럼 말하고 다녔지만, 그 웃음 뒤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이 모든 증상들을 하나의 병 이름으로 묶어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노인병 증후군’이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막연하던 내 몸의 상태에 처음으로 이름이 붙는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아픔은 나약함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살아낸 몸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노인병 증후군”
처음 들으면 참으로 낯설다.
병 이름도 아니고, 어디가 아픈지 딱 집어 말할 수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말만큼 노년의 몸을 정확히 설명하는 단어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의 몸은 하나가 아프면, 하나만 아프라는 법이 없다.
무릎이 아프면 걷는 법이 바뀌고, 걷는 법이 바뀌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면 잠을 설치고, 잠을 못자면 기운이 빠진다.
몸은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쉼 없이 연결되어 무너진다.
어쩜 김병준 교수님은 이렇게도 지금의 내 상태를 정확히 짚어내시는지 모르겠다.
직접 만나 뵌 적도 없는데, 마치 내 몸속 사정을 들여다본 것처럼 말한다.
이쯤 되면 ‘명의’라는 말이 괜히 붙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의 병은 이렇듯 하나씩 따로 오지 않고 엮어서, 겹쳐서, 한꺼번에 찾아온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변화에 노인 스스로도 점점 둔감해진다는 점이다.
아픈 상태로 너무 오래 살아왔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이러한 설명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가가 뜨거워진다.
젊었을 때 같으면 병원에 달려갔을 증상도, 노년이 되면 , “나이 들면 다 그렇지~~“라는 말로 눌러 담는다.
이렇게 몸은 비정상에 적응하고, 불편함은 어느새 일상이 된다.
그 상태야말로 ‘노인병 증후군’이 가진 가장 조용하고도 무서운 얼굴이라는 교수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노년의 몸은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삶의 기록이다.
( 김광준 노년내과 전문의)
수십 년을 버티고, 참아내고, 견뎌온 시간이 그대로 몸에 남아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노인의 아픔은 서두를수록 더 어긋나고, 기다릴수록 비로소 길을 찾는다.
빠른 회복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노인의 느린 속도는 늘 불편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 느림은 게으름도, 고집도 아니다.
오래 살아온 몸이 선택한 가장 안전한 방식일 뿐이다.
완치보다 유지가 중요해지고, 통증을 없애기보다 덜 아프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
그것은 치료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가 깊어지는 과정이다.
노인의 병은 의사와 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걸어서 함께 속도를 맞추는 마음, 같은 말을 다시 들어주는 인내,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네게 해주는 관심이 때로는 가장 정확한 처방이 된다.
노인은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 이전에, 다른 시간표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시간을 존중할 때 노년의 아픔은 짐이 아니라 함께 관리해 가야 할 삶의 일부가 된다.
느린 회복을 기다려줄 줄 아는 사회, 노인의 시간을 존중해 줄 아는 사회, 그런 진정한 고령 사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