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소양ㅡ돌봄
글을 고치는 편집자들 중에서는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어느 편집자는 글을 딱딱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고, 자신만의 편집력으로 글의 문맥을 잘 잡아가기도 한다. 한편으로 어느 편집자는 저자의 텍스트에 크게 손을 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전공이 아니거나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할 때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저자의 글에 손을 대지 않기도 한다. 저자만의 독특한 문체나 어휘를 살려 주기 위함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편집자는 저자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야 한다. 글을 고치든 고치지 않든 말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너 뭐 한 거야? 하나도 고치지 않았잖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한 번이라도 글을 읽고 문제가 없는지, 오탈자가 없는지, 수정해야 할 것이 없는지 글을 보는 일, 한 번이라도 살펴보는 일, 이것이 편집자의 일이다. 그렇다고 어디 정말 한 번만 글을 읽었겠는가. 고칠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하지 않았겠는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편집자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편집자는 저자와 책 뒤에서 묵묵히 이름 없이 존재한다. 편집자는 스스로 은닉하는 것도 있지만, 편집자의 일은 저자의 이름과 글을 독자들에게 돋보이게 만드는 데 있다. 저자의 이름과 글을 선보여야 하는데 거기에 편집자의 이름과 일까지 자랑할 여력이 없다.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을 보고 또 보고, 살피고 또 살핀다.
‘돌본다’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살피듯, 편집자는 그렇게 한 권의 책을 돌보고 살핀다. 아이를 보고 있는 일, 누군가를 살피는 일, 크게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렇게 저자들과 그들의 글을 살펴보고 돌보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낸다. 크게 하는 것이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살피지 않으면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편집인들의 일이란 그런 것이다. 살피고 또 살피는 것.
누군가 말하기를 “편집은 신의 일”이라고 했다. 편집이 신의 일이라는 건, 말마따나 편집이 그만큼 고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 말의 진의는 신이 세상을 살피듯 편집자의 소양은 살피는 일이라는 뜻일지 모른다.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신이 놀고먹는 것처럼 보여도 정말 만약 신이 이 세상을 뚝딱뚝딱 만들고 여전히 무언가 움직이거나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엄청난 돌봄일 것이다.
돌봄이라는 말은 돌아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은 언제나 있고, 자신이 살펴야 할 사람들은 주변에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의 눈이 앞에 달려 있고 귀가 옆에 달려 있는 건, 어쩌면 주변의 이야기를 언제나 듣고 살펴보라는 건 아닐까. 주어진 일들과 사람들을 잘 보살피는 사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