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질 결심

솔직히 지킬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결심을 해보련다

by 수풀향

감성이라고 썼다가 바로 지웠다. 감성이라고 하기엔 섬세하지 않고 부드럽지 않다. 물론 섬세하고 부드러운것만이 감성이라고 말하는건 아니지만 내가 꿈꾸는 감정의 결은 그렇다. 그래서 감성이라는 말대신 감정이라고 고치겠다.

감정의 굴곡이 깊다. 그런 감정을 어릴적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덮어버렸다. 부끄러움, 소극적, 초라함, 낯가림의 어린시절을 넘어서 과감함, 도전적, 유머러스, 자유분방함, 흑백논리, 씩씩함, 하지만 질투로 점철된 스물을 살아갔다. 나에겐 '나'라는 지상과제가 늘 있었고 부모님으로 받은 상처를 죽기전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몸부림으로 정신분석책을 미친듯이 읽었고, 종교에서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 해엔 이책 저책 모조리 읽어보기도 하고 그러다 불교책을 접하면서 나름 가톨릭-부디스트를 자처하며 불교공부를 하기도 했다.

20대엔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했고 세상을 떠돌아 보고 싶어 국토종단을 하기도 했다. 인도를 꿈꾸며 배낭을 싸서 인도로 떠났지만 그렇게 원하던 곳이 내가 꿈꾸던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후 패배자로 삐적마른채 패배자로 돌아왔다.

결혼후에도 무작정 남편을 설득해서 하던일을 아무 대책없이 마무리하고 1년을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여행을 막 시작하려던 차에 시부모님의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셔서 슬픔과 비통함으로 여행을 접고 생계를 위해 일을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우리집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곳이라는 생각을 늘 했지만 시간이 지나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들과 4살 연하의 남편과 살아가는 그곳은 서로의 욕구를 받아들이고 저항하는 곳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이상한 추구심이 발동해서 나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끝까지 맞춰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본다. 다르다는것을 알면서도 아주 중요한 마음 한구석을 서로가 충분히 이해할수 있을 만큼의 공간은 있지 않을까 찾아봤지만 그럴때마다 좌절을 한다. 좌절의 원인은 많다. 그리고 당연하다.

그리고 내 마음과 같은것을 맞추려고 하는것 자체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같지 않다고 혼자 등을 돌리는 어리석음. 가리고 싶지만 미화시키고 싶지만 유아적인 나의 모습이다. 깊은 안착을 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듯한 모습.


또다시,

감정의 굴곡이 깊다. 그 감정의 굴곡을 이리저리 표현했지만 모조히 공감받지 못했다. 그리고 나 또한 타인을 공감하지 못했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를 나누고 그렇게 살아가다...내 감정의 굴곡이 다시 살아나서 표현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리하여 난 브런치를 찾았다. 아이들의 문제를 시작으로 끄적거리다가 한참 후에 다시 찾고 한번 쓰고 나서 한참 후에 다시 찾고를 반복했다.


그리하여 지금 다시 결심한다.

다시 꾸준히 브런치를 쓰겠다고 내 감정의 굴곡을 받아줄수 있는 이곳에서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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