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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어화 Nov 20. 2021

WITH 사춘기-1화

열무비빔밥

오늘 저녁은 열무비빔밥에 갈비탕.

"열무비빔밥, 어때?"

라는 질문에 아들은 "엄마, 열무비빔밥만 먹으면 영양적으로 좀 부족할 것 같은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거기에 갈비탕은 어때?"

"고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갈비탕은 환상이죠."

"오케이~그럼, 딸! 넌 어때?"

"응."

아들보다 대답이 짧은 딸이다.

참고로 아들은 중3, 딸은 중1.

보통 사춘기라 하지만 아들은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는 아니나 딸은 이미 질풍이 지대로 진행 중이다.


는 퇴근하자 문 앞에 놓여있는 스티로폼 박스를 확인하고는 저녁 국은 해결되었다고 좋아라 했다. 그런데 밥솥에 밥이 없었다.

쌀을 씻고 압력솥으로 밥을 지으며 나는 갓 지은 흰쌀밥으로 싱싱한 열무와 매콤 달콤한 고추장과 참기름. 그 위에 반숙의 계란 후라이를 얹어 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갈비탕은 보글보글 끓고 양푼이를 꺼내 열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넣고 밥주걱으로 갓 지은 보슬보슬한 밥을 네 주걱 담고 빨간 고추장을 큰 두 스푼, 참기름을 반 스푼 넣어 밥주걱으로 슥슥 비볐다.

 '비빔밥은 역시 밥주걱이지~'

비비면서 내 입안에 군침이 차올랐다. 한 스푼 떠먹어보니 역시나 기대했던 맛이었다.

가족들의 그릇에 비빔밥을 한 주걱씩 덜고 계란 후라이를 올렸고 국을 퍼서 저녁상을 차렸다.

'다 같이 떠먹을까?'

'아냐, 딸은 싫어할지도... 각자의 그릇에 담자.'

의 선택은 맞았다.

그런데...


한 숟가락 떠먹고 나서 딸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엄마, 열무비빔밥에서 김치 맛이 나."

"김치는 안 넣었는데. 열무랑 고추장, 참기름만 넣었어."

"김치 맛이 난다니까. 열무에서."

"열무 물김치의 열무는 김치처럼 젓갈을 넣어 만든 게 아냐. 소금물에 찹쌀풀을 넣고 거기에 열무를 넣어 삭힌 거지."

"열무김치 맞네. 김치 맛이 강하다니까."

그때부터 울음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포효하기 시작했다.

"이름만 열무 물김치지 열무김치가 아냐. 그냥 삭힌 열무를 넣은 거야."

"엄마는 빨갛게 만든 김치만 김치라고 생각하지? 물김치도 김치야. 난 그 김치 맛이 싫어."

"아니 물김치에서 김치 맛이 난다고 하면 되니? 지난번 칼국수집에서 시킨 열무비빔밥은 잘 먹었잖아."

"그 집 열무비빔밥의 열무는 김치 맛이 안 났어. 그리고 그때도 난 고추장이 비벼진 밥만 먹었어.

열무 빼줘."

"그럼 흰쌀밥이랑 갈비탕이랑 먹어."

"싫어. 나도 비빔밥 먹을 거야. 열무가 싫은 거야."

딸의 눈빛은 말길을 못 알아듣는 엄마가 짜증 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표정은 진상 손님의 얼굴 그 자체였다. 나도 그 얼굴을 보자 화가 났다.

"울지 말고 말해. 왜 계속 짜증스럽게 징징거리며 말하니?"

"나도 열무비빔밥 먹고 싶은데 열무김치 맛이 강해서 짜증 나니까 그렇지. 엄마는 내가 백김치, 물김치도 못 먹는 거 몰라?"

"응. 몰라. 빨간 김치만 안 먹는 줄 알았어. 그리고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거겠지."

"아냐. 난 못 먹는 거야. 김치를 먹으면 토할 것 같아."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심리적으로 거부하는 거지. 김치를 왜 못 먹어? 안 먹는 거지."

"아니라니까. 난 김치를 못 먹는다니까."

"알았다. 그만하자.

퇴근해서 피곤한데 가족들 먹일 거라고 한 상 준비했더니... 맛있게 먹어주면 얼마나 좋니?

꼭 딴지를 걸고 저녁밥상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야 하니?"

"엄마가 맛없는 비빔밥을 주니까 그렇지."

"맛이 없긴. 아빠랑 오빠는 맛있다고 잘도 먹는구만. 그래서 엄마가 물어봤잖아. 열무비빔밥, 먹을 거냐고. 응 해서 먹었는데 맛이 이상하면 난 비빔밥 안 먹고 흰밥이랑 먹을래요 하면 되지.

이 난리를 치냐?"

"흰밥이랑 먹을래. 흰밥 줘."

"밥솥에 있으니까 떠먹어."

"떠줘야 먹지. 난 왜 밥 안 떠줘?"

"엄마는 설거지 중이니까. 그리고 그 정도는 네가 해야 하니까."

"난 엄마가 흰밥 안 떠주면 안 먹을 거야."

"그럼 먹지 마. 엄마도 그렇게 안 키워. 갈비탕이나 마저 먹고 그릇 넣어줘."


그렇게 그날, 딸은 갈비탕만 먹고 결국 흰 밥을 떠서 먹진 않았다.


'딸, 커서 꼭~~~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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