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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Jan 13. 2022

7년을 같이 살았는데 아직도 남편을 모릅니다.

아직도 철없는 부인의 이야기


"여보, 나 다음 주부터 화요일, 금요일 저녁 7시 반에 그림책 큐레이터 수업 듣기로 했어. 그때 애들 좀 봐줘." 

지난달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통보하듯 던진 말이었다.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남편은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러 다녀야 하고 긴급한 호출이라도 받으면 퇴근 유무와 상관없이 다시 집을 나서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할 것 같아.'라는 연락을 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하게 나가야 한다며 애들이랑 저녁 먼저 먹고 있으라는 카톡을 보내기 일쑤다. 현실적으로, 그런 남편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남편이 아무리 나의 자기계발 생활을 응원하고 도와주고 싶어도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그냥 나의 상황을 알고는 있어두라는 일종의 전달사항일 뿐이었다. 내 수업을 위해 빨리 퇴근은 못하더라도, 일단 퇴근을 했다면 내가 수업 듣는 그 시간에는 내가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최소한의 부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수업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고 5주, 6주. 마지막 수업 한 번만을 남겨놓고 있는 지금까지. 어라...? 남편은 그동안 내가 수업이 있는 화요일, 금요일에 단 한 번도 야근을 하지 않았다. 일이 좀 늦어져 평소보다 늦는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수업에 시간 맞춰 들어가지 못한 적은 없었다. 늘 수업이 시작하고 난 그 시간부터는 아이들의 담당은 남편이었다. 어느 날은 우리가 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야 겨우 도착한 적도 있었다. 엄마 수업 들으러 간다며 서재 문을 잠그고 들어오면 남편은 아이 둘을 보며 혼자 저녁을 챙겨 먹었다. 그렇게 우리의 6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림책 큐레이션 수업은, 역시나 재미있었다. 예전부터 늘 듣고 싶었었는데 시간 덕분에 엄두도 내지 못한 수업이었다. 저녁 7시 반이라니. 하원 시킨 아이들 챙겨 씻기고, 먹이고. 엄마들한테 가장 바쁜 시간이 아니던가. 비싼 돈 내고 들으면서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아서 늘 미뤄두기만 했던 것이었다. 한 번씩 새로운 기수의 수업 시작을 알리는 글이 올라오면 내내 부러워하기만 했던 수업. 언제쯤이면 이 시간에 나도 여유로울 수 있을까,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을 셈해 보게 하던 수업. 그런데 되면 해보는 거고 아니 말지 뭐,라는 생각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지원한 서포터즈에 덜컥 선정이 되고 만 것이다. 오랜 시간 바라왔던 일이라 기쁨이 먼저 앞선 건지도 모르겠다. 부담스러웠던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더 당당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어차피 도움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나 혼자 아등바등해야 할 일이란 게 빤히 보여서 남편의 마음과 상황에 무심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난 정말 몰랐다. 7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수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직장 생활 이외의 모든 것들을 공유하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남편을 몰랐다. 내가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남편의 칼퇴가 그저 우연인 줄로만 알았다. 운 좋게도 그날따라 야근이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요즘에 일이 좀 덜 들어오는 시긴가 보구나 하고 무심결에 잠깐 생각했었다. 몰랐다. 내 수업을 위해 남편이 그동안 하고 있었던 노력을. 어떻게든 내가 편하게 수업을 듣게 해주고 싶어서, 그날만은 일정을 잡지 않으려고 혼자 아등바등하고 있었던 것은. 그래서 쌓여간 업무에 다른 날에는 몇 배나 더 노력하고 애써야 했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을 그저 우연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기대하지 않고 던진 한 마디를 이 남자는 아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까지 이 수업을 들어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얼마나 더 이 시간을 버텨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사실 이 수업에 맞춰서 일정을 잡지 않느라고 좀 힘들긴 하다고 지나가듯 건네는 남편의 말이 없었더라면 나는 몰랐고, 또 앞으로도 몰랐을 남편의 노력과 나를 위한 마음, 사랑.




한 번씩 남편이 생뚱맞은 것을 선물이라며 건넬 때가 있다. 이번에는 애플워치 충전 거치대였다. 요즘 좀 아껴보려고, 1원이라도 쓴 것은 가계부에 기록하는 생활을 하고 있기에, 나의 첫 반응은 놀람 반, 돈 아까움 반이었다. "충전 거치대? 왜...?" 뒤이어서 마지못해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이걸 대체 왜 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깟 거치대 없어도 잘 살고 있었는데 가끔 보면 참 쓸데없는 데에 돈을 잘 써, 라는 말은 마음에 담아두고 하진 않았다. 그런데 눈치 빠른 남편에겐 그 마음이 이미 전달이 되었나 보다. "예전에 나는 워치 충전 거치대 있는데 자기는 없다고 그랬었잖아. 부러워했잖아.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사주고 싶었어." 내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네.




생각해 보면 남편은 지나가는 내 말도 허투루 듣는 법이 없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가듯 한 말인데, 그렇게 내뱉고 나면 내 기억에서도 사라지는 말들이었는데. 남편은 그것들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소중하게. 그리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것들을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가끔은 내 기억에도 지워질 만큼 오랜 시간이 걸려서 문제긴 하다.). 결혼하고 쭉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에 비해 일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 둘을 키워오면서, 내가 더 손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똑같은 부모인데 누군가는 경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불공평하게 다가온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 아쉬운 마음을 종종 남편에게 표현했었고, 결혼하면 나 박사 공부까지 시켜준다고 약속했던 남편은 늘 나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늘 나만 육아에 아등바등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좀 억울하기도 했는데 아니었다. 우리 집의 가장으로서 사회생활하는 남편의 고생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몰랐다. 그냥 내 고생이 좀 더 커 보였나 보다. 




아이들도 좀 컸으니 이제 나를 위해 좀 시간을 갖고 싶다는 내 말을, 내 공부도 좀 하고 싶다는 내 바람을. 어쩌면 나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겨준 남편. 결혼 8년 차인데, 아직도 그 남편의 마음과 사랑을 다 모르네. 우리는 아직 서로를 다 알지 못하네. 아직도 서로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네. 때로 서로 다른 생활습관이, 혹은 사소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콕콕 찌르게 될 때에도 기억하자.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다르지만, 닮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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