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고 넘어질 권리

아이를 통해, 다시 만난 나

by 이음 Eum
브런치 연재, 한 주만 스킵할까...?


남편의 수술과 아이의 B형 독감 확진, 그리고 아이와 비슷한 증상으로 앓았던 나. 이 모든 것을 동시에 겪었던 지난 주말. 몸과 마음의 한계를 동시에 느낀 시간이었다. 겨우 한숨 돌리나 싶던 어제 아침, 둘째가 머리가 아프다며 일어나지 못했다. 아, 또 시작이구나.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하는 브런치.


한 주쯤 미뤄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만 역시, 정해진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영 마음이 찜찜한 일이다. 목표 달성에 '실패'한 느낌이랄까? 마흔이 넘은 지금도 실패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 결국 열보초를 서고도 글을 쓰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았다. 마침 이번 글의 주제가 실패인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지난 내 삶은 수없이 실패했던 나와 그 실패를 애써 부정하려 했던 또 다른 나의 투쟁 기록이다. 크고 작음을 떠나 '실패'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모든 것에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더 몸을 사리고 안전한 선택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실패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살면서 겪은 수많은 실패 중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바로 수능이었다. 이미 2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 잊히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고등학교 내내 꿈꿨던 학과에 갈 수 없었고, 점수에 맞춰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학과로 입학했다. 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지만, 이 이상 더 낮은 곳으로는 가기 싫다는, 철부지 여고생의 오기였다.


부모님 말씀대로 재수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몇 년의 공부가 단 하루,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된다는 사실. 그 불확실성에 1년을 더 투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부터 꼬인 대학생활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4년 내내 전공 공부에 적응하지 못했다. 수능 시험을 못 본 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고, 나는 훨씬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또 실패하면 나는 고작 그 정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 있게 되돌아가지도, 다른 길을 찾아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내내 마찬가지였다. 성공의 확신이 없는 일에는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독한 실패 회피형 인간이었던 나는 육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아이가 실패하는 일만은 막았다. 실패에서 오는 좌절감만은 최대한 경험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실패를 하게 하지 않겠다는 그 허무맹랑한 계획은 실패했다. 아이가 공을 잘 다루지 못해 헛발질할 때, 팀을 나누면 늘 마지막까지 남을 때.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이가 하는 말들에 마음이 아팠다. 마치 내가 그런 일을 당한 것처럼. 그렇다면 차라리 공놀이를 하지 않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는 그 안에 서 있었다. 잘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그 자리에 섰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결코 배울 수 없던 것들을 배우면서. 그리고 성장했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며 내 안에 아직도 자라지 못하고 멈춰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실패 앞에서 잔뜩 주눅 들어 있던 그때의 나를. 이제는 그 아이에게도 말해 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실패하고 넘어질 권리가 있다고. 괜찮다고. 그래도 된다고. 살면서 겪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이고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괜찮은 너를 만들었노라고. 다정하게 꼭 안아주고 싶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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