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이해한다는 오만에 대하여
어쩜 이렇게 지 아빠 판박이야? 그냥 ㅇㅇ를 낳았네
출산 당일이었다. 어머님, 아버님을 비롯해 남편의 친척들까지 찾아와 한결같이 이야기했다. 아이가 남편을 아주 똑 닮았다고. 아닌데...? 내가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거긴 하지만 얼굴 보고 결혼한 건 아닌데? 우리 아들이 훨씬 더 잘생겼는데! 아니 더 잘생겼어야 하는데? 입덧으로 20주가 넘는 시간 동안 반시체처럼 지냈다. 넘길 수 있는 것이라곤 포카리와 바나나뿐이었다. 그렇게 고생해 가며 뱃속에서 키우다 7시간 넘는 진통 끝에 내 배 아파 내가 낳은 내 아들인데. 그런 나는 안중에도 없고 아빠만 닮았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으니 은근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그렇지만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에서 남편의 얼굴과 지금 내 아이의 얼굴이 놀랄 만큼 똑같았기에.
그렇게 아이는 어릴 적 남편의 얼굴 그대로 자랐지만 그 서운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키우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제외하고 아이의 성격, 기질, 취향 그 모든 것이 나와 똑 닮았다는 것을. 그래서 첫 아이였지만 육아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어려웠던 것은 엄마, 아빠로서 남편과 합을 맞춰가는 것이었을 정도로. 읽고, 배운 대로 하면 아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왔다(낮잠 문제를 제외하고). 사실 딱히 무슨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나와 똑 닮은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나라면 이 상황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나는 이게 불편했었지. 나는 이게 힘들었었지. 나라면 이렇게 해주는 걸 좋아했을 거야. 아이가 위험할 일, 힘들 일이 있으면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그 가능성마저 원천차단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는 핑계로 전집을 하나 둘 사모아서 책으로 가득 찬 방이라는 내 어릴 적 꿈을 이루며 대리만족 하기도 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산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첫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다시 키우는 일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결핍을 하나하나 채워가면서 더 업그레이드된 나를 세상에 내어 놓는 일. 이대로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오만함은 아이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울타리 안에만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가 있는 아이에게 나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온전히 아이 스스로 부딪혀야만 했다. 마음이 여린 아이가 제 것을 지키지 못하고 빼앗겨도, 완벽히 해내고 싶은 마음에 시작조차 하지 못할 때에도, 조금만 정해진 것에서 어긋나면 못 견딜 때에도. 새로운 친구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 잘 어울리지 못할 때에도.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상처를 받는 것마저도 모두 제 몫이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엄마 없이도...? 어리석게도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아이도 할 수 없다고 여기면서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투영했다.
그때 알았다. 아이는 내가 아니었고, 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나와 똑 닮은 아이였기 때문에. 그렇지만 똑 닮았을 뿐, 똑같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아이는 저만의 속도로 잘 자라고 있다. 때로는 실패하고 넘어질 때도 있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넘어진 곳에서 뭐라도 하나 주워 일어났다. 실패란 없고 성공과 경험만 있을 뿐이라고 했든가? 아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단단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통해 엿본 세상은 나의 세상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의 편협한 사고와 고지식함을 하나 둘 내려놓는다. 흑과 백,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인정하려고 애쓰면서.
그렇게 아이가 나를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