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너는 경력이라도 쌓이잖아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던 속마음

by 이음 Eum
그래도 너는 경력이라도 쌓이잖아


지난 며칠 이 글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문득 이 문구가 떠올라 메모장에 급히 적어 두었다. 그 당시 내 마음을 대변하기로 이만한 제목이 없다 싶어 흡족해하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다. 내 핸드폰으로 같이 확인할 일이 있어 들여다보다 메모장이 보인 것이다. 다급하게 창을 휙휙 넘겼지만 제목 폰트로 크게 적힌 이 짧은 문구를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건 또 뭐야."라는 남편의 말을 애써 못 들은 체 했다. 남편도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부끄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남편은 알았을까? 내가 한동안 이런 마음으로 저를 부러워했었다는 걸.


남편은 다정한 사람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며 이해되지 않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나와는 달리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다. 다툴 때도 나를 설득하기보다는 내 마음과 입장을 이해하려 애썼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잔뜩 끌어올린 내 전투력도 그의 다정 앞에서는 힘을 잃곤 했다. 원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햇빛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사람이었다, 남편은.


그렇지만 우리 모두 육아 앞에서는 초보였다. 처음 하는 육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업 특성상 주말에도 근무하는 일이 잦았는데 주위에 아는 이 하나 없는 타지로 시집온 나에게는 그의 주말 출근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지금에야 내가 왜 그렇게 아등바등 날카로웠을까 싶지만,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비공개로 남겨 두었던 육아 일기에서 그때의 나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끼니도 제때 해결하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었다. 매번 점심 즈음 겨우 하루 첫 끼를 먹으려다 몇 숟갈 뜨지 못하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달래러 갔다는 기록, 남편이 퇴근하고 나서도 둘이 그 아이 하나를 어쩌지 못해서 쩔쩔매다가 아이가 잠든 밤늦게서야 야식을 시켜 먹었다는 기록. 매일매일이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정말 힘들 때는 힘든 줄도 모른다고 하던가. 아니다. 그냥 그 힘듦을 토로할 정신도, 엉망진창이 된 내 마음도 돌아볼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그냥 닥친 현실을 살아내기만도 바빴으니까. 그리고 육아가 조금 익숙해지는 시간이 왔다. 초보 엄마아빠 딱지를 벗고 제시간에 밥을 먹고 잠을 잘 여유쯤은 생긴 것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이런 내 처지에 불만이 생긴 것이. 남편과 나는 육아라는 전투를 같이 겪는 전우였는데.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 같이 달리는 한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제야 서로 다른 처지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둘 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키웠지만, 분명 주양육자와 보조양육자의 차이는 명백했다. 상대적으로 집에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길었던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의 무게가 더 컸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모유 수유를 하고, 아이를 재울 때처럼 엄마의 역할이 절대적인 경우가 빈번했다. 엄마바라기였던 아이 때문이었다. 그 덕에 남편은 육아에서 살짝 손을 떼고 하루 종일 엉망이 된 집안 살림을 맡았는데 그조차 내 성에 차질 않았다.


육아고 살림이고 내 기준은 너무 높았다. 남의 손에 좀처럼 맡기지 못하는 쓸데없는 완벽주의 탓에 남편의 모든 것이 못 미더웠다. 그 시기 남편은 퇴근하고 와서 또 출근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안팎으로 마음이 편하질 않았겠지. 그래도 그 '잠시의 퇴근'이라도 할 수 있는 남편이 부러웠다. 억울했다.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간은 돈(월급)으로 돌아오고 나의 시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내가 이력서에 단 한 줄도 써넣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에게는 경력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으니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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