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엄마와 포항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포항에 방문한 것은 다름 아니라 내년부터 내가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잠시 있을 예정이라 살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27년 평생을 부산과 서울, 그 안에서도 말 그대로 '역세권'에서, 주로 학교와 집만을 오가던 세상 물적 모르는 나는 든든한 나의 지원군, 엄마와 함께 발품을 팔러 갔다.
나는 서울에서 ktx를 타고, 엄마는 부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포항에 왔다. 포항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 2시간 전에 있던 서울역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그 흔했던 큰 건물이 하나 없어 더욱 광활하고 맑은 하늘이 나를 맞이했다. 이날 아침 서울에서는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렸었는 데에 비해 이곳의 공기는 청아하게만 느껴졌다. '아, 좋다!'
나에게는 다소 낯선 단어, '시내'로 들어서니 비교적 큰 아파트도 있었고, 음식점과 카페 등의 여러 상점들도 즐비했다. 뭐랄까, 정신없다기보다는 정겹고 따스했다. '아, 좋다!'
그러다가 문득, 현실을 직시했다. '아, 나 지금 여기 여행 온 것이 아니지. 몇 달 뒤면 여기서 살아야 해..!'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니 막막함이 몰려왔다. 지하철이 없는 것도 적응이 되지 않는데, 버스 배차 간격이 거의 20분이라니. 서울에서도 언제나 최단 시간으로 이동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 조급함과 신속함이 일상에 배어있는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었다.
그렇게 온갖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여있다가 호텔에서 엄마를 만났다. 너무나도 보고팠던 우리 엄마. 이 낯선 곳에서 만나니 더더욱 반가웠다. 그간 걱정으로 요동치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엄마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 우리 엄마는 볼 때마다 자꾸만 예뻐진다 :)
호텔에서 간단히 짐을 푼 후, 우리는 곧바로 근처 부동산에 들렸다. 이번 포항 방문에서 바로 집을 구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상황은 더 어려웠다. 오피스텔이 많이 없기도 하고, 지금 방이 나오는 시기가 아니기도 하다는 것. 그렇게 반가운 정보는 듣지 못하고 부동산에서 나왔다. 그런데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아마 엄마랑 함께였기에 그랬지 않았을까. 엄마는 나에게 "괜찮다! 인연이 되는 집이 있으면 나타날끼고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라고 말하며 내가 상심하지 않게 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즐겁게 수다를 떨며 다음으로 둘러볼 동네로 향했다. 만약 그때 나 혼자였다면 막막함에 눈물이 뚝뚝 흐르며 바로 주저앉았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가 내 곁에 있어서 또 한 번 참 다행이라 느낀다.
다음 동네로 향하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따스한 색깔로 우리를 환히 반겨주는 단풍, 어디에선가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우리 곁에 온 천리향의 향기. 높고 맑은 가을 하늘. 우리는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한참을 걸었다. 매일같이 통화를 하지만 할 얘기가 무궁무진 많기만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에 쫓기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의 마음이 참 오랜만에 마음을 놓고 온전한 쉼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30분쯤을 걸어 다음 동네에 도착하여 주변을 조금 둘러보았다. 겨울이 정말 코 앞으로 온 것은 맞는지 6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즉, 아주 좋은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바로, 엄마와 오랜만에 함께하는 저녁 식사 시간! 이렇게 의미가 깊은 만큼, 이날의 메뉴는 몸보신도 할 겸 장어구이로 정했다. 우리가 갈 식당은 다소 외진 길 끝자락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울보다 더 깊은 이곳의 어둠 속에서 더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더구나 장어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연말의 포근함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장어구이 집이었다. 아주머니의 앞치마, 인테리어 소품 등등 가게 여기저기에 내가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이 있었다. 그야말로 동화 속의 장어구이 집이랄까. 게다가 맛집이기까지 했다. 두툼한 민물장어가 어찌나 쫄깃하고 맛있던지. 엄마랑 맥주도 한잔 하니 몸과 마음의 온도가 따뜻해졌다. 참 가득히도 행복했다. 배불리 잘 먹고 가게에서 나와서는 갑자기 후식이 생각나지 뭐람. 역시 나는 엄마에게 디저트 배도 물려받은 것이 분명하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 앉아 초등학생들 옆에서 사이좋게 아이스크림 콘도 야무지게 잘 먹고 호텔로 향했다.
포항에서의 첫날을 엄마와 함께 보낸 후, 이곳은 더 이상 나에게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를 배울 수 있음에 감사했고, 이를 엄마와 만끽한 것이 참 좋았다. 이곳에서의 나날들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빨리 부산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랄까!
그런데 이날 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진 것이다. 엄마가 갑자기 오른 다리가 아프다며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건강하기만 했던 엄마가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참 많이 낯설었다. 걱정하는 나에게 엄마는 "늙으면 가끔 이런다~ 파스 붙이고 자면 내일은 괜찮아질끼다~!"하며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엄마는 절뚝이고 있었다. 엄마는 어제보다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켰고 우리는 또 발품을 팔러 길을 나섰다. 다행히도 시간이 갈수록 엄마는 서서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내 마음에는 집 구하는 것은 없고 엄마의 다리에 대한 걱정이 가득해졌다. 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 엄마도 50대 후반이었지.. 그렇구나..' 여태껏 나에게 엄마는 언제나 40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만큼 동안이기도 하고,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유쾌하며 밝은 우리 엄마이었기에. 그런데, 엄마도 나이가 들고 있었다...
포항에서의 2박 3일 후, 나는 다시 서울로, 엄마는 부산으로 돌아갔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까지 고민했다. 서울로 가는 표를 취소하고 같이 부산으로 내려갈까. 그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하고 서울행 기차를 타서 올라오는 길, 오로지 나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야 더 늦기 전에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만이 있었다. '포항이 아니라 부산으로 이사를 가서 통학을 해?'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 내 앞에서는 쑥스러운 듯, 하지 않으시지만 치매 방지라며 매일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니 '지금 바로 유럽행 티켓을 끊어버릴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매번 그랬듯이 마음속에 있는 것은 많은데 실행력이 없는 나는 아무것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엄마의 다리는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한다.(엄마가 전화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마음의 꽤나 달라졌다.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 거지? 내가 지금 바라는 행복한 삶이란, 엄마와 함께 아늑한 곳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그리고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인데, 그날.. 언제 올 수 있는 걸까..?' 고민이 많아지고 마음이 아파오는 밤이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 엄마와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