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류지 Jun 29. 2024

엄마의 생일

글에 들어가기 앞서, 두 달이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예고도 없이 휴재를 하게 된 점 죄송합니다. 시작은 '일주일만 쉬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주, 삼주, 그리고 한 달이 훌쩍 넘어버렸네요. '이렇게 작은 작가인 내가 휴재를 한 것을 누가 알까..? 괜찮겠지.' 하는 책임감이 없는 마음도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작은 작가라도, 초보 작가라도 작가이니까.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작가로서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어요. 늦었지만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또한, 이번 글을 끝으로 저의 <엄마와 나>의 연재북은 주기적인 연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까지 이 책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에게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또 다른 글로 찾아뵐게요. 




    양력으로는 6월 4일이 우리 엄마의 생일이다. 생일을 맞이하여 언니야가 엄마를 서울로 불렀다. 호캉스를 시켜준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호캉스를 함께할 수 없었다. 아니, 함께하지 않은 것이 맞을 지도. 당장 다음주가 기말고사이기도 했고, 서울에 내 집이 있는데 비싼 호텔을 가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이곳에 쓸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내가 호캉스를 함께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저녁 10시에 잠들어 새벽 4시 30분이면 눈을 뜨는 나는, 나만의 하루 루틴이 너무나 명확하고, 또 이것을 단 하루라도 깨뜨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언니야, 엄마와 함께 더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에 비해 유동적이며 느슨한 생활 패턴에 익숙한 언니와 엄마랑 한 방에 있는 것이 솔직히 다소 두려웠다. 이런 나의 모습이 어쩌면 융통성이 없거나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고 또 그만큼 나는 나의 하루하루에 진심이구나, 주체성이 참 뚜렷하구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지금은 나 자신이 가장 우선인 나이지만, 뭐 살다가 보면 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니까. 지금 이러한 나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한다. 무튼, 나는 그렇게 일요일 하루만 엄마 언니와 함께하게 되었다.


    엄마가 오후 12시에 서울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생일상을 차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일상하면 미역국이 빠질 수 없지. 엄마가 끓인 국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미역국인데, 나는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참 미안했고 또 그만큼 이번에 정말 맛있는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었다. 혼자 밥을 해 먹을 때는 주로 프라이팬을 사용한 요리를 하기에 국은 거의 만들어 먹지 않아서 국물 요리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며 그 어떤 다른 요리보다 신중하게 만들었다. 당일에 끓인 국보다 전날 끓였던 국을 다시 데워 먹는 것이 간이 더 잘 베여있기에, 생일 전날 밤에 보글보글 맛있게 끓여놓았다. 아마 재료들도 서로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해서이지 않을까? 무튼, 나는 미역과 표고버섯 가득 넣어 아주 맛있고 고소한 미역국을 완성했다! 


     또, 엄마의 생일 파티이자 우리 집 집들이이기도 하니까, 나에게 집들이하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그래서 잘게 썬 당근과 애호박을 노릇노릇 구워서 밥과 섞어 유부 주머니에 조심스레 담았다. 6개의 투박한 유부초밥이 아주 다정히 나무그릇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니, 그리고 이것을 엄마랑 나랑 사이좋게 3개씩 나눠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따스워졌다. 다른 반찬으로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요리, 그리고 참 맛있었다고 기억이 되는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에게 실패작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제일 맛있는 요리를 맛 보여주고 싶었기에 실험정신을 잠시 거두었다. 기름이 잘 베이도록 칼집을 내어준 가지에 소량의 간장을 묻혀 노릇노릇 구워주고, 최근에 참 맛있게 먹었던 노루궁둥이 버섯도 같이 구웠다. 또, 빠질 수 없는 팽이버섯, 감자 그리고 두부 이렇게 삼총사로 이루어진 에어프라이어 구이까지. 이때까지 혼자 먹으면서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맛이네, 엄마랑 먹으면 맛있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던 요리들을 가득했다. 뿌듯하고 기분이 참 좋았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를 동시에 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우당탕탕 소리가 끊이지 않은 오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이것들을 먹을 생각에 설레기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초인종이 울렸다!

내가 처음 차린 엄마의 생일상

    

    출입문 바로 앞에 주방이 있는 원룸이기에 나는 엄마가 들어오자마자, "여기는 보지 말고 손 씻고 저기 앉아있으셔!" 했다. 엄마가 최대한 주방에 눈길을 두려 하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괜히 우리 집으로 오는 길에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마구마구 이야기 하며 창가 쪽에서 땀을 식히고 계셨다. 엄마는 센스쟁이가 맞는 것 같다. 마침내, 나는 엄마를 위한 생일상을 엄마 앞에 멋지게 차렸다. 좋을 때나 행복할 때나 그 감정을 괜히 멋쩍은 듯 표현하는 엄마의 입에서 작은 감탄이 나왔다. 대성공이다!


    아참, 언니는 서울 외곽이 살기에 따로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하여 같이 먹지 못했다. 사실, 언니야는 편식하는 야채가 너무 많아서 딱히 나의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튼, 그래서 언니는 케이크 컷팅식에 맞춰서 오기로 했다. 그래! 이제 생일파티의 하이라이트, 케이크의 컷팅식이 이어질 차례이다. 


    이번 엄마 생일의 케이크라고 말할 것 같으면, 케이크 순이(?)인 내가 살면서 가장 신중히 결정한 것이다. 바로, 내가 만든 케이크! 엄마에게 맛있고 건강한 케이크를 선물하고파서 내가 만들기로 결정했다. 서울에서의 자취방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부산에 살 때 홈 베이킹을 즐겼던 나였기에, 그리고 그때 내가 만들었던 것들이 꽤나 성공적이었기에! 과감히 그렇게 결정을 해버렸다. 우당탕탕 끝판왕이었던 나의 케이크 제작 이야기는, 아무래도 나의 두 번째 연재북 <오늘도 삼시 세끼를 잘해 먹어요.>에서 다루는 것이 좋겠다. 사실, 금방 여기 써보니 할 말이 너무나 많아서 이 글의 주인공이 케이크로 바뀌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케이크 순이, 정말 못 말린다! 

내가 만든 엄마 생일 케이크


   그렇게 나의 자취방에서 언니, 나 그리고 엄마가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참 기분이 묘했다. 꽤나 짧은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27년 동안 엄마의 딸이면서, 이렇게 제대로 생일 파티를 해준 적은 몇번 없었던 것 같았다. 심지어 작년에는 엄마 생일을 잊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참 미안하기도 했고, 또 지금 이렇게 셋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기도 했다. 초를 불기 전에 엄마에게 소원을 빌라고 하면서 나도 같이 소원을 빌었다. 앞으로의 엄마 생일에는 꼭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케이크 위에 예쁜 초를 꼽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우리 엄마가 그날 아주 행복할 수 있도록.




엄마, 시간이 꽤나 흘렀지만 엄마의 생일 무척이나 축하해요.
엄마가 이렇게 태어나주어서, 그리고 지금 나의 엄마이어 줘서 고마워.
사랑해요. 

이전 13화 엄마에게 하기 어려운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