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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May 04. 2024

번외 편: 우리 엄마의 아빠. 나의 외할아버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 

    내가 이 세상에서 나를 제외하고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우리 엄마라면, 가장 사랑하는 남자는 엄마의 아빠. 즉, 나의 외할아버지이다. 오늘은 번외 편으로 우리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할아버지를 생각하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억들이 너무나도 많다. 

    누가 나에게 이상형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외할아버지라고 말한다. 정말이지 자상하고 푸근한 우리 할부지. 나에게는 따스하고 다정한 미소만을 보여주신 우리 할부지이다. 지금은 부산에서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우리 외할머니와 함께, 엄마와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계신다. 연세는 어느덧 82세. 할아버지의 연세를 계산해 본 것이 참 오랜만인데, 정말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싶다. 



    

    내가 상경을 한 후, 오랜만에 고향인 부산으로 가면 꼭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에 들린다. 나를 보면 할아버지는 항상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절대 밥 굶으면 안 된다, 사람 조심해야 한다."

하시며 나의 손을 꼬오옥 잡고 따스한 눈으로,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특히, 겨울에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으실 때면

"아이고 야(얘) 손이 와이래 차노... 우리 손녀 밥은 잘 먹고 다니나" 하신다.  

    또, 여름에 반팔을 입고 가면 

"아이고 야(얘) 손목이 와이래 가는기고.. 우리 손녀 밥은 잘 먹고 다니나" 하신다. 

     할아버지는 평소에 가족들 중에 내가 제일 걱정된다고, 생각난다고 하셨다. 가장 늦게 가족의 품에서 나가 홀로서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 싶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 내 마음속에서는 눈물이 나온다. 물론, 그 눈물이 마음속에서만 흐르게 하기 위해 꾹 참는다. 그리고 최대한 씩씩하게 대답한다. 

"할부지~ 나 무슨 일이 있어도 삼시 세 끼는 꼭 잘 챙기묵는다 아이가~ 내가 누구 손녀인데! 그러니까 할부지도 걱정 말고 맛있고 좋은 것 잘 묵고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해~"

    할아버지의 다정한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히도 떠오르고, 또 그리운 지금이다. 



   

     내가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일 때까지, 우리 외가 가족들에게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마다 즐거운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서울에 사는 우리 외삼촌, 즉, 엄마의 남동생의 가족이 부산의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에 3일 정도 머무는 기간이다. 어린 나에게는 이 시간이 방학 전체 중에 가장 기다려졌던 순간이었다. 외삼촌에게는 3명의 자녀가 있다. 나와 1살 차이인 여동생, 2살 차이인 남동생, 그리고 8살 차이 나는 늦둥이 여동생까지. 특히나 언니야와 나, 그리고 삼촌네의 첫째 둘째 이렇게 '쪼로미 4인방'은 신기하게 순서대로 딱 한 살씩 차이가 났다. 그래서 외삼촌네가 부산으로 내려오면, 나는 엄청 많은 친구가 생기게 되었고, 나이 터울이 있는 또 다른 사촌동생들이 어느 정도 크기 전에는 우리 4명이서 참 즐겁게 잘 어울려 다녔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의 꿈이 커다란 대저택에서 이들과 함께 살고, 커다란 리무진을 타고 다 같이 등교를 하는 것이었을 정도이다. 무튼, 이렇게 삼촌네가 방학 때 내려오면, 나와 언니 또한 외할머니 댁에서 이들과 함께 지냈다. 우리 집이 걸어서 3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었지만, 마치 여행을 간 것 마냥 잠도 할머니댁에서 잤다. 이렇게 할머니댁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의 머리맡에는 사람수의 밥그릇에 다홍빛의 토마토 주스가 참 다정히도 담겨있었다. 바로 할아버지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셔서 만들어 놓으신 토마토 주스이다. 나는 지금도 그 토마토 주스를 잊을 수가 없다. 채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어린 나였음에도, 설탕도 조금 안 들어간 그 토마토 주스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사실, 어른이 되고 토마토가 빈 속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 외할아버지의 아침 토마토 주스는 나에게 가장 건강한 토마토 섭취 방법이 아닐까 싶다. 행복만큼 건강에 좋은 것은 없으니. 



    외삼촌네가 설날을 맞이하여 부산에 내려왔던 어느 겨울이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의 생신이 음력으로 1월 2일. 즉, 설날 바로 다음 날이기에 할아버지의 생신 잔치는 온 가족이 모여서 할 수 있었다.  내가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마트에서 혼자 무언가를 사본적이 없는, 엄마 없이 마트에 가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은 그런 어린 나이'였다. 그러니 우리 '쪼로미 4인방' 모두가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어른들 몰래 비밀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되었다..! 목표는 바로, 할머니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가 걸리는 대형마트에 가서 선물을 사 오는 것이었다. 이 귀여운 목표를 이렇게 비장하게 말하는 것이 지금은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대단한 도전이었던 것 같다. 무튼, 우리는 어른들에게 집 앞 공원에서 놀고 오겠다는 거짓말을 한채, 세뱃돈을 소중히 들고 집을 나왔다! 결론을 바로 말하자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다. 길도 잃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가서 겨울 장갑 한 켤레를 신중히 골라왔으니 말이다. 물론, 너무 늦게 귀가한 나머지 어른들을 다소 걱정시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할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였다. 우리의 선물을 개봉박두! 하였고 오늘 우리의 비밀 프로젝트를 신나게, 또 뿌듯하게 다 말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정말이지 기뻐하고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장갑을 꼭 쥐시며 우리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시던 할아버지의 따스한 얼굴이 생생히도 떠오른다. 그 후, 겨울에 종종 할머니댁에 가면 그 장갑을 볼 수 있었지만, 10년 전쯤부터는 난 그 장갑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거의 20년의 세월이 지난, 이번 겨울이었다. 아직 학생인 나는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할머니댁을 방문했다. 내가 할머니댁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계셨지만 할아버지는 잠시 앞에 외출을 하셨다고, 곧 돌아오실 것이라 하셨다. 잠시 후 현관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버선발로 얼른 마중을 나간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따스히 감싸고 있는 장갑을 보았다. 바로 20년 전, 우리 쪼로미 4인방이 선물한 그 장갑이었다. 이때까지는 왜 못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장갑이 틀림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수많은 장갑 중 그 디자인의 장갑을 선택한 것이 바로 나였기 때문에 나는 확신한다...! 그 순간, 내 마음속의 모든 움직임이 잠시 멈추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 꾹 참았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흐른 만큼, 그 장갑은 많이 닳아있었다. 브랜드도 아니고, 그리 비싸지도 않았던, 대형마트에서 산 장갑이지만, 그때의 할아버지는 세상 최고의 장갑을 선물 받은 사람처럼 보였고, 할아버지 본인은 정말 그렇게 느끼셨나 보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할아버지에게 참 고맙기도 하고, 이때까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새 장갑을 사드리지 못한 것이 참 후회스럽기도 하다. 다가오는 이번 겨울에는 꼭 좋은 장갑 한 켤레 사드리고 싶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평생 잊을 수 없는 한순간이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어린 내가, '아, 우리 할아버지가 나를 엄청 사랑하는구나. 나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느낀 순간이다. 

할아버지와 나

내가 10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언니야와 나, 그리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렇게 4명이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외삼촌 댁으로 놀러 갔다. 그리고 우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다 같이 한국 민속촌을 방문했다. 우연히 나는 할아버지와 둘이 우산을 쓰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우산을 들어주셨고 나는 그 따스하고 듬직한 우산 아래에서 비를 거의 맞지 않으며 즐거운 민속촌 나들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후, 나는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 본인은 우산을 반 밖에 쓰지 못해 한쪽 어깨가 다 젖었다는 것을. 참 축축하게 젖은 그 어깨를 본 어린이는 감동을 받았고,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다. 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무척이나 어렸던 그날의 나의 감정이 생생히도 기억이 난다. 그만큼 진실되고 큰 사랑을 느꼈나 보다. 




    할아버지~ 우리 할부지~ 
나는 이곳에서 씩씩하게, 예쁘게, 열심히, 그리고 밥 굶지 않고 살아가고 있어.
 나는 우리 할아버지 손녀이니까! 
그러니 우리 할부지도 항상 건강히 잘 있으셔야 해~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어 고마워요.
나도 우리 할아버지 정말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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