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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May 11. 2024

엄마에게 하기 어려운 말.

나 그만둘래.

    엄마에게 차마 하지 못하겠는 말이 있다.


    "엄마, 나 이제 그만두고 싶어. 그만둬볼래."


    이 말을 엄마에게 언제 진지하게 할 수 있을까. 저번에 내가 "엄마, 나 그만두어도 될까..?"라고 물었을 때, 엄마는 언제든지 그만두어도 된다고 말했었다. 나에게는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렇기에 다시 "그만두고 싶어."까지만 말하면, 엄마는 이전처럼

    "그래. 괜찮아. 잠깐 쉬어도 괜찮아." 

    라고 할 것 같지만, "그만둬볼래."까지 말하면, 엄마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물론, 내가 지금 이 공부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면 고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까지 엄마의 품, 학교의 든든한 지붕처럼 따뜻한 둥지 안에서만 있었던, 바깥세상에는 나가보지 않은, 그렇기에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 모르는 나니까. 내가 지금처럼 더울 때는 시원한 곳에서, 추울 때는 따뜻한 곳에서 그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엄마, 이것들이 지금 내 몸과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하는 것 같아..'



    

    나는 대학교에서 4년, 그리고 대학원에서 대략 3년의 시간 동안 학문에 전념해 왔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공부를 즐기며 할 때도 있었으며, 나는 분명히 최선을 다해 쉬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잘 들어주지 않았다. 특히나, 4년의 학부생 시절에는, 나의 마음을 듣는 것이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것은 물론, 이러한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원을 위해 상경을 한 후, 홀로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조금씩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이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  끊임없이 의심을 전달하려 했다. 또, 학문에 진심을 다해 전념하는 동료들 곁에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것 같았던 나는,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했다. 이러한 느낌과 생각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졌고 더 자주 나에게 찾아왔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이 길을 열심히 달렸다. 


    그저 위험을 감수하기가 싫었다. 내 앞에 펼쳐진 직선 도로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옆길로 새면 어디로 갈지 모르기에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엄마가 걱정하실 것이 싫었다. 엄마에게는 힘듦 없이, 어려움 없이 잘 사는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두려움을 맞서보려고 한다. 그 이유는, 나의 몸이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번 연도에 논문을 쓸 때처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 수강하는 수업들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딱 내가 할 만큼만 하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학교를 나선다. 그렇지만, 나는 매일 밤 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그저 학교에 있는 시간을 버티지 못하겠으며, 학문 앞에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나의 학문의 길은 항상 엄마와 함께했다. 나의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배우고 공부하려 했던 나였다. 그런 나를 위해 항상 건강한 음식을 해주셨고, 가끔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처럼 대학생인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시거나 데리러 오시기도 했다. 또, 엄마 자신에게 쓰는 돈은 최대한 아끼시고, 나에게 쓰는 돈은 절대 아끼지 않으셨다. 내 건강을 위해서는 비싼 한약도 몇 제나 지어주시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한약은커녕, 병원이나 약국도 잘 가지 않으셨다. 사실 꽤나 큰 금액인 나의 대학원 등록금도 모두 엄마가 지원해 주셨고, 올해 3월 전까지는 적지 않은 나의 오피스텔 월세, 그리고 생활비까지 모두 지원해 주셨다. 경제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엄마는 엄마의 하루를 나의 시간에 맞추었다. 이렇게 나의 학업 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모두 해결해서 내가 쾌적한 환경에서 물질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풍족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이렇게 27년의 세월 동안, 나에게 정말이지 아낌없이 주던 든든한 나무였던 우리 엄마이기에,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말해야 한다. 진지하게. 이번 학기가 끝나고 엄마에게 말하려 한다. 

    "엄마, 나 그만두어볼래. 그리고 더 행복해질래. 나 한 번만 믿어줘."


엄마, 미안해. 
하지만 말이야,
나 세상 밖으로 나가보아서 더 빛나게 잘 살아볼래. 
더 많이 웃으면서 건강하게 그렇게 살아볼래.
그래서 엄마랑 더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도록. 
나 엄마 딸이니까, 멋지게 잘 해낼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 말아 엄마. 
나를 한번 믿어줘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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