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류지 Apr 20. 2024

엄마와 함께하는 하굣길.

그래서 길에도, 내 마음에도 꽃이 한가득 피는 하굣길.

     대학원생인 나는 요즘 등하교를 걸어서 한다. 네이버 지도상으로는 도보로 50분이 걸린다는 길이지만, 나는 등교를 할 때면 아무래도 마음이 급해져서인지 항상 30분 정도만이 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조금이라도 마음에 여유가 찾아오는지 40분에서 길게는 50분까지 걸릴 때도 있다. 그리고 나의 하굣길은 항상 엄마와 함께한다. 

    하루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면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돼지야~ 뭐 해~?"

    그때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누군가와 같이 있어 전화를 오래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등굣길에서처럼 후다닥 집으로 간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엄마와 함께하는 이 하굣길을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지,  거의 항상 전화를 잘 받아주신다. '따르릉'을 한번 듣기도 전에 받아주는 우리 엄마이다. 그렇게 엄마와의 수다스럽고 즐거운 하굣길이 시작된다. 생각해 보니 참 신기하다. 엄마를 본 지도 참 오래되었고 내 일상은 특별한 것이 없는, 반복되는 것들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엄마에게 하고픈 이야기는 넘쳐난다. 특히 여기저기 꽃이 방긋방긋 피어있는 봄인 요즘은 꽃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헉 엄마! 지금 내 옆에 있는 꽃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예쁘다~ 사진 찍어줄 테니까 뭔지 알려줘!" 

    하면서 사진을 찍어 바로 엄마한테 보낸다. 그러면 화훼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꽃박사 우리 엄마는 바로 그 꽃의 이름을 이야기해 주신다. 역시, 꽃 척척박사가 맞는구나 우리 엄마. 그 덕분에 이번 봄, 나도 엄마를 따라 꽃 박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현실은 꽃 학사도 안될 것 같지만.. 그래도 꽃과 아주 친해진 것은 분명하다. )




    먼저, 이번 봄에 나는 개나리와 단짝 친구가 되었다. 개나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너무나 기본적인 상식 같지만,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저 키 큰 개나리였던 것이 알고 보니 산수유라는 것. 


    "엄마, 저기 키 큰 나무에 개나리가 잔뜩 있는데 진짜 예쁘네!"

    "바보야. 그건 개나리가 아니라 산수유다! 개나리가 나무에서 피는 거 봤냐? 그리고 산수유는 쪼매 연한 노란색이고 개나리는 쨍~한 노란색이다! 잘 봐봐라. 바보~ 산수유랑 개나리도 구분 못하다니!"


    정말 그랬다. 자세히 보니 내가 말한 '키 큰 개나리'는 길가에 피어있는 진짜 개나리보다 색이 연했다. 둘 다 각자 나름 무척이나 예뻤다. 엄마는 이 날, 나의 세상에 두 가지 노란색을 만들어주었다. 은은하게 빛나며 순진함을 담고 있는 산수유색. 그리고 자신의 꽃말처럼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연상 짓게 하는,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게 힘을 주는, 진하게 빛나는 개나리색.


    또, 개나리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능수버들처럼 멋지고 화려하게 휘어진 모습을 자랑하는 수양개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 지금 내 옆에 있는 개나리는 버들나무처럼 막 멋!지게 휘어져 나있다. 내가 지금 걷는 길 따라서 이 개나리가 노오랗게 너무 예쁘게 피어있다!"

     "그게 그냥 개나리가 아니라 수양개나리라고 있다!  그것도 억수로 멋지지~. " 

나의 등하굣길을 비추어준 멋진 자태의 수양개나리.

    나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작고 어여쁜 초롱들을 주렁주렁 달아서 나의 등하굣길을 샛노란 빛으로 비추어준다. 가끔은 마치 내가 너무나 예쁜 어사화를 쓴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 노오란 빛나는 길을 씩씩하고 힘차게 걸으며 학교로 갈 때, 나의 마음속에 용기와 힘이 한 움큼씩 들어왔다. 그리고 하굣길에는 오늘 고생했다며 다정하고 따스한 노오란 빛의 미소를 띠어주는 것 같았다. 또한, 담장 벽에 길게 내려와 있는 수양개나리는 한 폭의 그림처럼 예술적인 분위기까지 담고 있다. 사실 이 길을 지나려면 지름길이 아니라 학교 정문을 정직하게 통과하는 길로 가야 하지만 나는 이 개나리를 보기 위해서라도 항상 이 길로 갔다.




    다소 부끄럽지만, 나는 라일락이 정확히 어떤 모습을 한지 이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존재가 세상에 있었는데 그것을 27년 동안 몰랐다니' 하며 충격을 꽤나 먹었을 정도로 라일락은 무척이나 고운 자태를 자랑했다. 사실, 라일락이 라일락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다른 꽃 사진을 엄마에게 찍어 보냈는데 저 멀리 숨어있던 연보랏빛의 꽃을 발견한 엄마 덕분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 뒤에 자(쟤)는 라일락인가?"

   

    그렇게 라일락이라는, 이름만은 너무나 친근한 그 꽃의 실체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말을 듣고 가까이 가보니 수려한 자태 만큼이나 아름다운 향기를 마구 내뿜고 있었다. 쉼, 그리고 정지가 익숙하지 않은 내가 잠시 걸음을 멈출 만큼. 라일락이 선사한 아름다운 보랏빛의 세상에 들어간 그때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떠도는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여 그것을 나에게 선물해 주는 우리 엄마에게 고마웠고, 나는 그런 우리 엄마가 참 좋다.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돼지야~ 라일락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이래~ 돼지는 내랑 함께한 추억 중에 제일 기억나는 게 뭐냥~"


    물론,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다. 이렇게 조금은 간지럽기도 하고, 애정이 바로 드러나는 대화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음을, 엄마는 이런 것을 민망해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역시나, 엄마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헐~ 몰라~ 내는 그런 거는 모르겠다~."


    이제는 이렇게 대답하는 엄마가 그저 귀엽게 느껴지는 것은 나도 철이 들었다는 것일까. 무튼, 그런 반응에도 기죽지 않는 나, 애교쟁이 막내인 나는 


    "나는 너무 생각나는 게 많은데~ 생각해 보니까 돼지랑 신나게 같이 논 게 진짜 많네~."

 

라고 하면서 옛 추억들을 또 신나게 얘기한다. 엄마와의 전화 속 추억 여행이란, 행복한 순간은 더 좋았던 기억으로 다가오고, 또 그 어떠한 갈등의 순간도 아름답고 재미있는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금은 내가 엄마와 한 장면 속에 담긴 추억을 만들지 못하고 있음에 다소 애석해지기도 하는, 그런 여행이다. 




    4월의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요즘은 거리에서 벚꽃을 거의 볼 수 없다. 이번주 초반쯤까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달려있던 조금 남아있는 벚꽃마저 봄비에 흘러가버렸다. 


    "이제 벚꽃이 거의 없어. 벌써 봄이 끝난 건가.."


하며 분홍빛의 세상이 끝난 것에 아쉬워만 하던 나였다. 이 아쉬움을 들은 엄마는 말씀하셨다.


    "근데 나는 꽃들 중에 벚꽃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제일 예쁜 꽃인 것 같다. 떨어져도 얼마나 예쁘노. 길바닥이 분홍분홍 해진다 아이가~" 

    그 말을 듣고 길바닥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연분홍 잎이 보도블록 사이사이를 가득히 예쁘게 채우고 있었다. 마치 거기서 새로운 꽃이 핀 것 마냥. 떨어진 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우리 엄마가 나의 엄마라서 참 좋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면 분홍빛이 없지만 길바닥의 꽃이 다 사라질 때까지 나는 여전히 분홍빛 봄의 세상에 살고 있었다. 엄마는 덧붙여 말했다. 


    "근데 그거 아나? 벚꽃은 그래(그렇게) 입 하나하나가 살~살~ 천천히 떨어져 가지고 예쁜데 동백꽃은 한송이가 툭툭 한 번에 떨어진디. 내는 그래서인지 동백꽃이 떨어져 있는 걸 보면 그래 애잔하고 슬프더라."


    떨어진 동백꽃을 보았을 때 엄마가 느낀 슬픔은 어떤 슬픔이었을까. 물론 열심히 꽃을 피웠는데 그렇게 '툭.'하고 떨어져 버린 동백꽃에 대한 순수한 연민에서 온 슬픔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슬픔이 엄마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자신에 대한 슬픔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참 힘든 일을 많이 겪었던, 그리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우리 엄마임을, 또한 언니와 나에게는 들키려 하지 않았지만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던 우리 엄마임을 나는 알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엄마에게 직접 말은 못 했지만, 우리 엄마가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던, 그래서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하루였다.




    바로 어제였다. 내가 말했다. 

    "돼지야~. 요즘 민들레가 너무 예쁘더라. 뜬금없는 곳에 뜨문뜨문 하나씩 나 있던데. 후~ 불고 싶었는데 그냥 내버려 두었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살포시 앉아 꽃을 피운 민들레.

    엄마가 답했다. 

    "민들레 홀씨가 날아다니면서 아무 데나 앉았나 보네~. 자유로운 영혼이군! 옛날에 '민들레 홀씨되어'라는 노래도 있었는데..."

    "엄마! 내도 그럼 이제 인간 민들레 해야겠다! 내가 자유로운 영혼의 끝판왕이잖슈~!"

   그리고 지금, 엄마가 말씀하셨던 가수 박미경 님의 노래인 '민들레 홀씨되어'를 들으며 글을 쓰는 중이다. 후렴구의 가사가 참 마음이 와닿는다.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엄마, 나의 하굣길을 멀리서도 함께 해주어서,
그로써 내가 웃을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워.
오늘만큼은 민들레 홀씨가 되어 살랑살랑 날아가서
 엄마랑 같이 하루를 보내고 싶다.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꽃인 우리 엄마.
내가 많이 사랑해.



이전 09화 엄마랑 아무거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