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류지 Apr 13. 2024

엄마랑 아무거나.

엄마는 행복을 주었다.

      연년생의 꼬마 자매가 있었던 우리 집. 우리 엄마는 우리랑 놀아주느라 무척이나 바빴다. 






    내가 10대가 되기 전의 어린 시절이라 정확히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옛날 사진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려보면, 우리 자매는 엄마와 참 재미있게 잘 놀았던 것 같다. 엄마와 영화관, 미술관 그리고 자연 속으로 놀러 갔던 추억도 있지만, 따뜻한 집에서 엄마와 함께 색종이 접기, 점토로 아무거나 만들어보기, 아무거나 그려보기, 레시피 책 없이 엄마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엄마의 요리 교실, 우리에겐 무지 컸던 엄마 옷으로 하는 집 패션쇼,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없는 역할놀이 등의 재미났던 시간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렇게 어떤 틀이나 규칙 없이 자유롭게 '아무거나' 해보는 시간들이 참 많았다. 

      

    또, 가끔 이렇게 어릴 시절 사진들을 보며 추억 여행을 할 때, 알아볼 수 없는 낙서와 아기자기한 스티커가 가득한 우리 집 벽을 볼 수 있었다. 깨끗한 벽에서 찍은 사진을 구경하지 못할 정도이다. 

아주 큰 스케치북 위에서 뛰어 놀 수 있었던 우리 자매.

언제 한번, 엄마에게 내가 

    "벽이 이 상태가 되도록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었던 거야?"    

    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 엄마의 대답이 '조금이라도 야단을 쳤지만 말릴 수가 없더라~'와 같은 것일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냥 잘했다면서 열심히 그리게 내버려 두었다! ㅎㅎ 그래서 느그가 창의력이 좋아서 공부도 꽤 한 거 아니겠냐!" 

    라며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사실 나는 학창 시절에 그리 공부를 잘한 것을 아니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 언니와 비교하면 그렇다. 우리 언니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아주 소문난 똑순이였고 공부뿐만이 아니라 음악과 미술까지도 정말이지 못하는 것이 없는 다재다능의 표본이었다. 그래서 그런 언니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어린 나였지만, 그 비교를 한 것은 나 스스로이거나 나의 상상 속의 다른 사람들이었지 엄마는 아니었다. 이 말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이지 엄마는 공부나 다른 재능으로 나를 언니와 비교한 적이 없었다. 또 한 번 참으로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여하튼, 언니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했을지 몰라도, 사실 내가 그리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신기하게도 수학만큼은 잘했다는 것. 그리고 난 그 이유를 안다. 나는 호기심이 참 많은 사람이다. 다른 과목은 모르겠으나 수학 공부를 할 때만큼은 난 친구들이 가지지 않는 궁금증이 꽤 많았다. 뭐랄까, 수학의 세상에서 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훨훨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왜 다른 과목에서 그러지 못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학교 시험과 수능을 잘 치는 것이 주 목표였던 학창 시절에, 그런 나의 호기심은 쓸데없었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특별히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이어 대학원에서 수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는 나는 이제 그 무궁무진한 호기심이 나의 가장 큰 보물이라는 것을 안다. (물론, 솔직히 그렇다고 내가 지금 아주 우수한 대학원생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반대일지도.. )

    

     무튼 이렇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엄마는 '아무거나'를 통해 언니와 나에게 생각의 자유를, 그래서 결국에는 호기심 그리고 창의력이라는 크나 큰 선물을 주었다. 내가 수학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하나하나에 참 많고 재미난 궁금증과 관심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학교 가는 길에 본 나무의 가지가 쭉쭉 뻗어있는 모습이 흥미롭고 멋져서 '어떻게 쟤네는 저렇게 자랐을까' 하며 미소가 지어졌고, 같은 벚꽃이라도 꽃잎 하나하나가, 그리고 꽃 식구들이 뭉쳐있는 모양새가 모두 아름답고 또 가지각색으로 다른 것을 보며 '자연의 신비란 참 대단한 것이구나~'라고 느끼며 행복해질 수 있었다. 

신기할 만큼 멋지게 가지를 쭉쭉 뻗어내고 있는 나무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새로 가지각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벚꽃과 옹기종기 참 다정하게 모여있는 벚꽃 식구들
그렇구나. 엄마는 나에게 행복을 선물한 것이구나. 




    요즘따라 그 아무거나의 시간들이 그립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한적하고 조용한 어느 마을에서, 엄마랑 아무거나 하면서 지내는 일상은 어떨까.'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생각나는 아침을 만들어 먹고, 아무 데나 산책하다가 꽃, 나무를 구경하며 아무 얘기나 하고, 또 집에서 '아무거나'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아무거나 만들어 먹으며 느릿느릿 보내는 그런 하루. 박장대소하며 웃지 않아도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을 수 있는 그런 하루. 단 하루만이라도 그런 날이 있으면 좋겠다. 바쁘게, 그리고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무척이나 예쁘게 피어있는 봄의 꽃과 나무를 많이 보며 봄바람을 만끽해서 그런가. 최근 들어서 이러한 소망이 자꾸만 커지는 것 같다. 




    엄마, 내가 이렇게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게,
그래서 내가 만든 나의 세상 속에서 훨훨 날아다닐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워.
나, 그 자유 속에서 한번 잘 살아보도록 할게.
나는 엄마 딸이니까. 예쁘고 당당하고 멋지게 잘 살아볼게.
사랑해요.

이전 08화 엄마의 "괜찮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