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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Mar 30. 2024

엄마의 향기

그리고 향수병

향수병(鄕시골 향, 愁 근심 수, 病 병 병).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온 마음의 병. 




    나는 향수(香 향기 향, 水 물 수) 때문에 향수병을 앓은 적이 있다. 

내가 엄마와 한 집에서 함께 살았던 5년 전쯤, 언젠가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나들이를 간 적이 있다. 그날 우리는 우연히 입생로랑 매장에서 시향을 하게 되었는데, 그 향이 엄마의 마음에 쏙 들었는지 엄마는 아주 오랜만에 향수를 하나 구매하셨다. 그 뒤로 매일은 아니지만, 엄마는 종종 약속이 있거나 기분을 내고 싶을 때 그 향수를 뿌리셨다. 가끔 엄마랑 둘이 나들이를 갈 때, 나도 엄마를 따라 그 향수를 뿌리고 나가면 엄마랑 같은 향을 내뿜고 있다는 것에 좋아했던 엄마 바라기였다. 따로 걸어도 딱 붙어서 같이 걷는 기분이랄까. 그 향이 주는, 나만 보이는 몽글몽글한 솜 안에 우리 둘이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무튼, 그렇게 그 향은 나에게 있어, 멋을 부린 우리 엄마의 향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21년도부터 내가 상경을 하고 혼자 살기 시작한 후, 난 그 향을 꽤 오랫동안 맡지 못했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서울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가던 작년 나의 생일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20년 평생 생일날에는 엄마와 함께 보내며 엄마의 팥밥, 미역국 그리고 조기 구이를 먹었던 나는, 자취를 시작한 후 엄마의 미역국이 없는 생일을 보내야 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허전했지만, 두 번째 생일에는 그저 미역국 대신.. 김을 꼭 먹어야지! 하는 재미난 생각으로 바뀌었다랄까. (요리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상하게도 국은 잘 끓여 먹지 않는 것 같다.) 무튼, 이곳에서 가족들 없이 맞이하는 생일이지만 참 감사하게도, 나를 멀리서도 생각해 주는 많은 친구들이 생일 축하 연락을 주었고,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선물까지 보내주었다. 그중,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입생로랑의 헤어 미스트를 선물로 주었다.

 엄마의 향수와 같은 향을 가진, 친구가 생일 선물로 나에게 준 입생로랑 헤어 미스트

 "우와.. 내가 친구 덕분에 명품 헤어 미스트를 써본다니!" 하며 고맙게 받았다. 택배가 온 즉시 바로 개봉을 하고 칙칙 뿌려보았다. 그 순간, "앗, 이 향은...!" 하며 나는 잠시 정지되었다. 바로 엄마의 향수와 같은 향의 미스트였던 것이다. 잊고 있던 엄마의 향을 생각지도 못했을 때 맡은 그 순간은 정말이지 엄마가 아주 그리워질 수밖에. 그렇게 얼마동안 나는 향수로 향수병을 앓았다. 그리고 그 미스트를 쓰는 것이 가끔은 망설여질 정도였다. 안 그래도 엄마가 보고픈 날,  더더욱 보고파질까 봐. 그래서 마음이 힘들어질까 봐.. 당시 엄마랑 전화를 할 때마다 "엄마.. 나 집 내려갈까? 이틀이라도 좋으니까 후다닥 다녀올까..? 도야지가 너무나 보고 싶다~" 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미스트를 한 번 뿌려본다. 오늘 약속이 있어 설레어하며 한껏 멋을 내는 중인 엄마가 내 옆에 있는 것 같다. 


    



    나에게 군고구마란, 군고구마 굽는 냄새란, 엄마의 냄새이다. 

언젠가 하나의 혁신적인 주방기기가 세상에 나왔다. 그것은 바로 '에어프라이어'.  이 마법의 통에 재료들을 잘 준비해 넣으면 노릇노릇 바삭바삭한 요리가 완성되어 나온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엄마와 내가 그 마술 도구를 사지 않을 리가! 그렇게 우리 집에도 멋진 에어프라이어가 하나가 떡하니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주로 빵을 데워 바삭바삭하게 먹는 용도로만 에어프라이어를 쓴 반면, 엄마는 다양한 요리를 하셨다. 피자도 만들어 주시고, 바삭한 전이나 야채 구이도 해주셨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 집에 고구마가 한 박스 도착했다! 처음에는 그저 전통 방식으로 가스레인지에서 끓는 물에 고구마를 삶던 엄마는 얼마 후 에어프라이어로도 고구마를 삶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바로 실행하셨다. 그렇게 엄마의 에어프라이어 군고구마 사랑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최적의 온도와 시간을 발견하셨다. 참고로 그것은 160도에 20분쯤, 170~180도에서 10분쯤을 추가로 돌리는 것. (물론 고구마의 크기나 에어프라이어의 기종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마법의 통에 들어갔다가 나온 고구마는, 마치 손이 꽁꽁 얼 것만 같은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먹는 군고구마 같았다. 무척이나 노릇노릇하고 달달했다. 특히, 꿀고구마를 넣으면 실제로 꿀이 흘러나와 달고나가 되었다. 그것을 떼어먹는 것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리고 고구마를 이렇게 에어프라이어로 삶을 때에는 집안에 군고구마 냄새가 가~득 퍼졌다. 겨울마다 이 군고구마와 사랑에 빠진 우리 엄마 덕분에,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노릇노릇하고 따스운 군고구마 냄새로 기분이 포-근해졌다. 

    하지만 이 냄새 또한, 내가 상경을 하고 혼자 산 이후에는 맡지 못했다. 가끔 부산에 내려가면 엄마는 나에게 더 맛있고 다양한 요리를 해주시느라 고구마를 굽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군고구마 냄새는 기억 저편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일주일 전이었다. 학교에 가져갈 도시락에 넣어가기 위해서, 얼마 전 자취방에 들여놓은 에어프라이어로 새벽에 군고구마를 구워보기로 했다. 

내가 구운 군고구마로 차린 밥상. 너무나 아쉽게도 엄마가 구운 군고구마의 사진은 찍지 않은 것 같다. 찍어둘걸..

엄마가 했던 대로 고구마의 양끝을 조금 자르고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작동을 시킨 후, 새벽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군고구마 냄새가 조금씩 내 코로 다가왔다. 순간, 본가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옆에 군고구마를 기다리는 재미나고 설레는 표정을 한 엄마가 있는 듯하였다. 군고구마가 완성되었다는 '띵!' 소리가 들리고, 제일 꿀이 많이 나와서 맛있어 보이는 것을 골라 뜨거움을 참고 정성스레 껍질을 까서 "아나! 묵으라!" 하며 나에게 제일 먼저 건네주었던 엄마가 생각이 난다. 






엄마, 엄마의 냄새가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오늘이야. 엄마의 향수, 엄마가 구운 군고구마, 그리고 엄마 방, 엄마 침대에서 나던 모든 향이 생각이 나네.  내가 불안에 떨며 잠도 못 자는 하루하루를 보낼 때, 엄마 방 침대에 누워 포근한 향을 맡으면 곧바로 꿈나라로 가게 해주었던 엄마의 마법을 또 느끼고파.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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