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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Mar 23. 2024

엄마의 곱디고운 손

    엄마의 손은 참 곱다.    


    우리 엄마는 손재주가 좋기도 하지만, 손 자체가 무척이나 예쁘다. 엄마가 20대 때는 네일아트를 하는 친구가 자격증 시험에서 손 모델이 필요해서 엄마를 데려갔다고 할 정도이다! 그야말로 섬섬옥수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손을 쏙 빼닮은 나의 손도 참 예쁘다. 그래서 참 좋다. 무튼, 지금도 엄마가 동창회에 나가면, 친구들이 엄마에게 "니는 집안일 하나도 안하제? 손이 어째 그래 곱노!"라고 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꼭 닮은 엄마 손과 내 손. 그래서 내 손도 참 예쁘다.

우리 엄마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부로 있으면서 집안일로 참 손을 많이 썼다. 그래서 요즘, 엄마는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파스를 붙이고 계실 때가 많고, 손 끝 부분이 항상 빨갛다. 많은 주부들이 일을 하느라 손을 참 많이 쓰겠지만, 짐작하건대 우리 엄마는 평균 이상으로 집안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여하튼, 지금 엄마의 손은 내가 보기에도 참 곱디곱지만, 엄마는 이제는 본인의 손이 겉으로도, 속으로도 많이 상해 슬퍼하시는 눈치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가끔 네일아트를 받는 것을 좋아한다. 손톱까지 예쁘게 색칠된 엄마의 손은 마치 아주 예쁜 그림 한 폭을 보는 것 같다. 

네일아트를 받은 염마의 곱디고운 손




    엄마는 유난히도 손빨래를 많이 했다. 거기에 내가 아주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어릴 때는 사고뭉치여서 옷을 참 많이 더럽혀서 빨래 거리를 많이 만들고, 커서는 깔끔을 정말 많이 부려서 안 빨아도 되는 것까지 빨래 바구니에 넣어 놓아 빨래 거리를 늘렸다. 고백하자면, 난 지금도 가끔 부산에 내려갈 때면, 계절에 상관하지 않고 매일 샤워를 두 번 해서 옷이고 수건이고 참 많이 내어놓는다. 참 부끄럽지만.. 나는 20대가 될 때까지 거의 빨래를 해보지 않아서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은 몰랐다. 심지어 세탁기를 직접 돌려보지도 않았다. 손빨래를 하고 물기를 짜는 것이 손을 아프게 하는지도, 또 추운 겨울날의 손빨래는 정말이지 고통스럽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참 못된 딸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몇 없는 나의 유치원생 때의 기억 중, 다용도실에서 쭈그려 앉아 열심히 손빨래를 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그 장면 속에서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다. 

  


    

    항상 우리에게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해주었던 우리 엄마는 많은 시간을 부엌에 있었다. 그러니 당연, 손에서 물기가 마르는 날이 없었다. 요리도, 설거지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엄마의 몫이었다. 지금 이 순간,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던 그때의 내가 참 원망스럽다! 

    엄마를 닮아서일까, 요리가 취미인 나도 자취방의 작은 부엌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나도 손이 참 저렸다. 그 순간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고작 1인분을 차리면서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4인분을 매일 준비하며 손이 얼마나 저리고 아팠을까..'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에게 "엄마는 괜찮았어..? 많이 안 아팠어?"라고 물었다. 그때 엄마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아파도 뭐.. 그냥 하는 거지~. 하다 보면 그냥 하게 된다능~^^"이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엄마라는 존재는.. 참으로 강하다. 그리고 또 한 번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이곳 자취방에서 혼자 밥상을 차릴 때면, 최소한의 그릇을 사용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설거지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접시에 여러 가지 반찬을 한 번에 담아서 때때로 반찬의 맛이 조금 섞이는 일도 발생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반찬들이 조금이라도 섞여서 우리 가족이 더 맛있게 먹지 못할까 봐, 엄마는 모든 반찬을 다른 그릇에 담으셨다. 내가 직접 차려보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런 정성과 세심함 덕분일까. 나는 참 맛있는 것을 맛있게 잘 먹고 큰 것 같다. 

엄마가 차려준 푸짐하고 맛있고 건강한, 그리고 참으로 그리운 밥상

    내가 상경을 한 후, 가끔 부산에 내려가서 엄마의 밥을 먹을 때, 나 한 명을 위한 밥상에  많은 그릇이 있는 것을 보면 참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중에 설거지가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부엌에서 나오게 하신다.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지만, 이제 조금 철이든 나는 엄마 손이 아픈 게 더 싫다! 

    가끔 엄마에게 "뭐 먹고 싶어~?"라고 물으면 "남이 해준 거는 다 좋다!"라고 하신다. 어렸을 때의 나는 '엄마는 그렇게 요리를 잘하면서 왜 남이 해준 것을 먹고 싶은 걸까' 하며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뼛속까지 와닿는다.

    "엄마, 내가 이제 맨날 맛있는 거 많~이 해줄 테니까 엄마가 서울로 와서 우리 같이 살면 안 돼?"라고 통화로 자주 말하는, 난 엄마가 참 보고 싶은 막내딸이다. 




    엄마는 가끔 우리 가족의 마사지도 담당하셨다. 내가 아마 중학생이었을 때의 어느 날 저녁에, 아빠, 언니 그리고 나의 발을 모두 엄마가 마사지를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 시원함을 느끼고 싶어서 '내가 먼저 할래!' 하는 어린 마음만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 당시 엄마의 발은, 그리고 그 손은 괜찮았을까 싶다. 엄마의 발이 아팠어도 손에 더 이상 힘이 남지 않아 엄마는 셀프 발마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날 밤으로 시간여행을 가서 자고 있는 엄마의 발을 몰래 문질러주고 싶다. "오늘 너무나 고생 많았어 엄마. 오늘도 엄마 덕분에 우리 가족이 참 행복하고 따뜻한 저녁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마사지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지금과 정반대로 자극적인 음식만을 찾았던 고등학생의 나는 당연히 살이 많이 쪘었다. 그래서 나의 교복 마이의 팔 부분이 나의 팔뚝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터져버렸다..! 그래서 엄마의 특단의 조치가 들어갔다! 두둥! 저녁마다 나의 팔을 아주 열심히 주물러주셨다. 얼마나 열심히 주물러주셨는지, 지방이 찝히는 고통으로 아파하는 나를 보고 우리 가족이 참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도 아파하면서도 참 많이 웃었다. 그 결과 나의 팔이 눈에 띄게 얇아진 것은 아니지만, 아주 미세하더라도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무튼, 그때의 나는 엄마 손이 무슨 강철인 줄 알았나 보다. 아무리 써도 이상이 없는, 강하디 강한 손이라고 믿었나 보다. 그 시절 나의 옆으로 가서 따끔히 한마디를 해주고프다. "살은 네가 빼는 거야!"



     엄마의 곱디고운 손에 대해 많은 일화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를 생각할 때마다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에 마음이 따스워지다가 결국에는 고맙고 미안한 감정이 참으로 크게 밀려온다. 또, 그런 엄마의 손이 참 그립다. 같이 산책하며 엄마의 주머니에서 꼭 잡는 엄마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이 참으로 그립다. 




엄마, 엄마의 고운 그 손, 이제는 더 고와지게만 해줄게.
예쁜 것만, 좋은 것만 만지게 내가 그렇게 해줄게.
미안했고 고마웠고 또 그보다 더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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