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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Mar 16. 2024

엄마는 유치해

그래서 엄마랑 있는 것이 무척이나 좋아.

    

    우리 엄마는 유치하다. 그런 엄마가 너무나도 좋은 엄마 바라기인 나도,
 그래서 참 유치하다. 유치한 우리 둘이 놀면 참 재미있다! 
    

    엄마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전 채널은 바로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채널이다. 투니버스, 카툰 네트워크 등. 우리는 <짱구는 못 말려>, <도라에몽>, <키테레츠 대백과>, <꾸러기 닌자 토리>, <안녕 자두야> 그리고 <마루코는 아홉 살> 등의 애니메이션을 즐겨본다.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요즘도 내가 집에 내려가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며 밥을 먹을 때, 항상 이 애니메이션들이 하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주제와 이야기에 대해서 열심히 수다를 떨며 밥을 먹는다! 그 시간이 참으로 재미있고 편안하다. 


문만 열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어디로든 문', 그리고 팥빵을 가득 들고 행복한 도라에몽

   

 언젠가 도라에몽을 같이 보다가 내가 "엄마.. 나도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으로 맨날 집으로 올래~ 하나 사줘!"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내는 도라에몽 한 명 데꼬온나! 동글동글하니 얼마나 귀엽노" 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또 가끔 도라에몽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팥빵을 먹는 장면이 나오면 엄마는 "헐~ 자는(쟤는의 사투리) 저걸 혼자 저래 다 묵나! 좀 나눠달라 해라~" 하신다. 대략 10분쯤 되는 에피소드 하나를 보며 참 재미난 얘기를 많이 나누는 우리이다. 항상 서로 유치하다고 놀리기도 한다. 내가 "내가 엄마 때문에 이렇게 유치해졌잖아~"라고 하면 엄마는 "헐~ 내가 할 소리이거덩~" 하신다. 이렇게 엄마랑 애니메이션을 볼 때면 다른 걱정들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현실에서 벗어나 동심의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 더구나 그 여행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랑 하는 그 시간이 난 너무나도 좋다. 서울에 혼자 있을 때 가장 많이 그리운 순간들 중 하나이다. 

    

모래요정 바람돌이 

    또 언니와 내가 어릴 때, 가끔 엄마는 기상곡을 틀어주셨다. 아마 지금 나처럼 20대인 사람들은 이 노래를 모를지도 모르겠다. "일어나요~ 바람돌이 모래의 요정~ ". 바로, 엄마가 어린 시절 즐겨보았다는 애니메이션인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만화주제곡이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바람돌이가 너무나 친숙하다. 그리고 이 만화주제곡이 참 좋다. 내일 알람 음악을 이 노래로 바꿔볼까 하는 재미난 생각이 든다! 무튼, 이렇게 우리 엄마는 때때로 <로봇 태권브이>, <은하철도 999> 등 엄마의 어린 시절의 만화들에 대해 얘기하신다. 그럴 때면 엄마의 맑고 순수한 눈동자가 반짝반짝 참 예쁘게도 빛난다. 무척이나 행복했고 즐거웠다던 엄마의 어린 시절로 빠져드는 엄마를 볼 때면 나도 참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는 인형이 많았다. 어린 나는 인형을 참 좋아했고, 요즘과 달리 상대적으로 인형이 비쌌던 옛날, 우리 집이 그리 부자가 아니었지만 엄마는 인형을 가끔 사주시고는 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그 인형들에게 항상 이름을 붙여주셨다. 나의 첫 대왕 곰인형은 다소 단순하지만, 이름이 '곰순이'이다. 곰순이가 언제 우리 집에 온 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적어도 15년은 된 것 같다. 이 노란 곰인형에게 '곰순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우리는 '곰순아~'하며 많이도 불러댔다. 그래서일까, 어린 나에게 곰순이는 단순한 곰인형이 아니었다. 감정을 가진 소중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잠을 잘 때도 그 커다란 곰순이를 항상 꼭 껴안고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그래서 침대가 꽉 차고 내가 이불을 다 덮지 못해도 괜찮았다 

    곰순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무슨 이유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가 장난으로 나 대신 곰순이를 꾸짖고 있었다. 그때 나는 곰순이가 너무나 불쌍해서 막 울면서 엄마보고 "그러지 마! 왜 그래!"라고 소리치며 곰순이를 번쩍 안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 떠올리니 참으로 웃기다. 

내 책상에서 수학을 공부하는 무럭이

    곰순이가 우리 집에 온 5년쯤 후, 더 큰 곰돌이가 우리 집에 왔다. 이 하얀 곰돌이의 이름은 '무럭이'가 되었다. 무럭이도 우리 집에서 참으로 많이 불리는 이름이다. 엄마는 가끔, 내 방에 있는 무럭이를 보고 "아이고~ 무럭아~ 네가 주인을 잘못 만나서 깨끗한 방에 못 있네~"라고 하시며 장난을 치신다. 요즘은, 무럭이가 나 대신 본가에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내 책상 의자가 무럭이의 자리가 된 것이다. 엄마는 전화로 "야야~ 요새 무럭이가 얼마나 바쁘지 아나! 의대를 가겠다고 하루종일 책상에서 일어나지를 않아서 걱정이다!"라고 하신다. 


    


     또, 나의 대학교 졸업장을 받은 것도 바로 내가 아니라 곰순이와 무럭이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는 2021년도에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서울에 있는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그 당시 코로나가 한참 기승일 때라 졸업식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여름학기 졸업이라 그런지 같이 졸업하는 친구들도 많이 없었다. 사실, 무엇보다 얼른 서울에서의 삶을 시작해보고 싶은 설렘이 앞서서 나는 졸업장을 찾으러 가지도 못하고 일찍 상경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나 대신 학교에서 졸업장을 찾아와서 서울에 먼저 올라간 나에게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사진 속에서는 내가 아닌 곰순이와 무럭이가 나의 졸업장을 잘 들고 있었다. 사진을 보고 우리 엄마의 기발한 발상에 감탄하기도 했고, 엄마가 참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대학 졸업장을 대신 받아준 엄마, 아니 곰순이와 무럭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엄마의 유머 감각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유치한 우리 엄마랑 있으면 너무나도 행복한, 유치한 막내딸이다.   


    엄마, 너무나 유치한 우리 엄마~! 난 그런 우리 엄마가 무척이나 좋으다 히히. 우리 앞으로도 계속 유치하고 어린 이 마음 잘 간직하며 그렇게 재미나게 살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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