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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Mar 09. 2024

엄마의 걱정

그리고 엄마가 만들어준 소중한 나의 몸

    우리 엄마는 나의 건강, 식습관에 대해 걱정이 참 많으시다. 그럴 만도 하지.


    나의 건강에 대해서라면, 이전에 브런치의 다른 글에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글을 쓴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져있을 것 같아 다시 써보려고 한다.  


    2017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나는 1학기에 새내기의 '캠퍼스라이프'를 맘껏 즐겨서였을까, 살이 조금 쪘었다. 사실 그래도 정상 체중이었지만, 나는 '여리여리하고 마른' 몸을 원했었다. 그렇게 그 해 여름방학,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다이어트를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여름방학인 2달 만에 10kg 정도를 감량하여 난 내가 그토록 바라던 '여리여리하고 마른 몸'을 가지게 되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친구들과 선배들이 나를 볼 때마다 '살 엄청 빠졌네!'라고 했었고, 그럴 때마다 무척이나 뿌듯하고 좋았다.

    하지만, 2달 만에 10kg 감량은 역시 무리였나 보다. 게다가 그때의 나는 169cm라는 키에 45kg의 심각한 저체중이었으니 몸이 당연  정상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난 후이면 체력이 다 소진되어 집으로 가기 바빴다. 이렇게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심리적인 문제였다. 이제는 샐러드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고 그저 평범한 식사를 해도 괜찮은 것을 머릿속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말라갔다. 그리고 몸에 적신호가 왔다. 호르몬 체계가 이상해졌다. 보다 못한 우리 엄마는 나를 데리고 한의원에 가서 비싼 한약을 몇 개월치를 지어주셨다. 내가 이때까지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인해 먹은 한약이 적어도 200만 원은 될 것 같다.. 또, 가끔 인당 5만 원이 넘는 뷔페에 데려가서 내가 마음껏 맛있는 것을 먹게 해 주셨다. 그 당시에는 경제관념이 많이 부족했던지라 그 돈이 그렇게나 크고 소중한 것인지 몰랐다. 엄마가 나의 건강 회복을 위해 돈은 아예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무튼, 그렇게 1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엄마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의 몸은 천천히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내가 만든 그 '여리여리 마른 몸의 세계'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 세계는 너무나 깊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일탈'이라고 생각되는 음식들을 볼 때면 생각이 참 많아졌다. 빵, 케이크, 단 음료, 아이스크림, 그리고 심지어 잡채, 생선구이, 생선 조림 등등까지도. 달달한 디저트는 과하면 몸에 안 좋은 것이 맞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저 영양가가 풍부하고 맛있는 반찬들에 대해서도 겁이 났다. 저것은 탄수화물이 너무 많은데, 지방이 너무 많은데, 나트륨이 너무 많은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너무 많아'보였고 과하다고 여겨졌다. 당연 나의 이런 마음이 눈치 백단인 우리 엄마에게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강박관념 속에 갇혀 사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착잡한 마음이 나도 느껴졌었다. 하지만, 나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속에서 나올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당시 나보다 엄마가 더 맘고생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하루가 떠오른다. 엄마는 계란말이를 할 때 다양한 재료를 넣는 것을 좋아한다. 시금치나 매생이를 넣어 초록 빛깔을 띈, 건강하고 먹음직스러운 엄마의 계란말이는 참으로 맛있다. 이 날은 명란을 넣으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계란말이에 명란까지 들은 것은...'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의 의견을 최대한 피력하고자 하다 보니 순간 명란을 넣지 말자고 다소 큰 소리로 떼를 써버렸다. 그 순간, 우리 엄마가 무척이나 서러웠나 보다.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으시더니 까던 명란을 그대로 버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너무나 후회스러웠지만 시간은 돌릴 수 없는 것. 그제야 절대 과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게 뭐가 그리 큰 문제라고 나의 고집을 꺾지 못했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엄마는 방에서 나오지 않으셨고, 그날 저녁 내가 사과를 하고 엄마와 같이 펑펑 울며 이야기를 한 후, 그 일은 지나갔다. 그날 이후, 우리 엄마는 나에게 명란을 먹자고 하지 않으셨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3년, 4년 그리고 어느덧 대학교 졸업까지. 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다행히도 나의 마음은 그 어둡고 깊은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실, 그 세계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다. 마치 바로 옆동네에 사는 기분이랄까. 지금도 여전히 저체중이고 강박관념이 조금 있는 것을 이제는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에 의해서 이전만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히려 먹고 운동하는 것을 정-말 진심으로 즐긴다.


    하지만, 최근 두 달 쯔음부터 나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진로 고민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두 먹는 것으로 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 식사 후에 달달한 디저트를 먹는 것에 중독이 되었고, 그 열량을 소모하기 위해 나의 몸에게는 아주 무리가 되는 정도의 운동을 하였다. 여전히 저체중인 지금의 상태에서 공복 12시간쯤인 새벽에 2시간 정도의 고강도 근육 운동을 했으니 말이다. 그랬더니 살이 더 빠졌고 기력조차 잃어갔다. 하지만 그날 또 열심히 먹기 위해서는 운동을 쉴 수 없었고, 반복되는 이 벅찬 하루하루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롤러코스터 같았다.

     

    최근에 있었던 나의 석사 졸업식을 위해서 엄마가 서울에 오신 날, 나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때 나의 앙상한 다리를 보고 엄마가 많이 놀라셨나 보다.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엄마의 걱정을 듣고 나의 다리를 주의 깊게 보니, 지방은커녕 근육도 거의 없이 너무나 말라있었다. 그렇게 졸업식 1주일 후, 나의 몸은 병이 나고 말았다.  그날도 먹는 것과 운동으로만 가득 찰 벅찬 하루가 주는 두려움과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딱히 잘못 먹은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아침부터 계속 구토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다리에 근육이 없음을 체감하고는 너무나 무서웠다. '이러다가 혼자 있다가 쓰러지거나 앞으로도 이렇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쩌나.. 나 멋지고 예쁘게 살아가고 싶은데..' 싶었다. 고민하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놀란 것 같았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예쁘고 젊은 나이에 몸이 그게 뭐야..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난다 야.. 뭐가 그리 겁나서 혼자 맨날 그래 있노..".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아픈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아 잠시 엄마가 미웠지만, 곧바로 미안한 감정이 크게 밀려왔다. 엄마가 배 아파하며 건강하게 나아주고 또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렇게 정성을 들여 곱게 잘 키워주었는데, 나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이 소중한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구나 싶었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엄마가 더 슬프구나 싶었다. 나의 중독적인 일상을 참음으로써 잠시 그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슬픔보다, 당연 엄마의 슬픔이 나에게는 더욱 큰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왜 이제야 이것을 알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였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이것을 강제로라도 알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여하튼, 그렇게 그날은 하루종일 잠만 잤다. 다음 날, 나는 평소 기상 시간인 4시 40분에서 대략 4시간이나 더해진 오전 9시에 기상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회복을 하였다. 


  

    나는 해산물과 계란은 아주 가끔 먹는, 예를 들어 회식이나 가족 모임이 있을 때에만 먹는, 채식 지향인이다. 하지만, 자취방에서는 거의 완벽한 채식을 한다. 엄마는 이전부터 이런 나에게 가끔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고기는 먹으라고 안 할 테니까, 계란은 매일 챙겨 묵어라. 니 그래 먹어가지고 안된다.." 물론, 계란도 먹지 않는 채식을 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은 참 많다. 하지만, 나의 몸은 지금 계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것 같다. 이때까지는 엄마의 부탁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이~ 나 다른 것들 너~무 잘 먹어서 계란 안 먹어도 괜찮아유~"하면서. 하지만, 이번 기회에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지금은 나의 몸의 외침을 들어주자. 다리에 어느 정도 힘이 생기고 기력을 찾을 때까지라도 나의 생활을 조금 바꾸어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난, 자취 2년 만에 처음으로 계란을 샀다. 

이제는 계란 프라이가 있는 나의 푸짐한 밥상들

계란을 산 날의 저녁, 무지 오랜만에 구워본 계란 프라이는 참 맛있었다. 나의 밥상 사진을 뿌듯하게 엄마에게 마구마구 보냈다. "엄마도 계란 프라이 묵고프면 오셔~ 여기 맛집이야 맛집!" 하면서. 또, 처음으로 생선을 사서 구워보았다. 

내가 만든 고등어구이

고등어구이라고 하면, 엄마가 구워주는 것만 먹어보았는데, 이것을 내가 자취방에서 직접 해보다니. 정말로 뿌듯했고, 또 맛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식후에 단 것을 먹지 않는다. 밥을 더 든든히 먹으려 한다. 요즘 중독적으로 후식을 먹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면 참 뿌듯하고 대견하다. 그렇게 나는 지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중이다. 











    엄마, 엄마가 나에게 준 이 소중한 몸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볼게. 이때까지 혹사시킨 것에 사과하는 의미로 더 많이 아낄게. 엄마가 이제 내 건강 때문에 슬프지 않도록 할게. 그리고 엄마도 꼭 그렇게 오래오래 건강해서 우리 재미있게 예쁘게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자. 사랑하고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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